KTN 칼럼
[박인애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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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엘에이 ‘미주한국문인협회’에서 주최하는 여름문학캠프에 다녀왔다. 캠프 후엔 강사들과 함께 문학기행을 가는데, 여행지가4대 캐년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딸이 가보고 싶다 하여 데라고 갔다. 달라스에서 엘에이행 첫 비행기를 타면 2시간 시차가 있기 때문에 아침 일찍 도착하게 되니 하루를 알차게 쓸 수 있다. 체크인이 오후 3시여서 가방을 호텔에 맡기고 갈비찜 잘하는 식당에 갔다. 멀어서 포장을 해갈 수도 없고, 혼자 먹을 때마다 갈비찜 좋아하는 딸이 목에 걸렸는데, 사줄 수 있게 되었다. 식사 후 CGV 영화관에서 조정석이 1인 2역을 한 영화 ‘파일럿’을 보았다. 나이가 드는지 요즘은 영화를 보다가 병든 닭처럼 졸거나 잔다. 지난번에 ‘인사이드 아웃2’는 시작할 때 잠들어서 끝날 때 일어나는 바람에 딸에게 눈 흘김을 당했다. 영화광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이번에도 십여 분 졸았으나 다행히 잘 보았다. 주인공이 하이재킹 상황에서 기장을 대신해 비상 착륙에 성공하여 승객들의 목숨을 구한 장면이 인상 깊었다. 재난 영화임에도 코믹 요소가 가미되어 웃음을 선사했다. 항공기가 배경인 영화를 좋아해서 오래된 외국 영화까지 찾아본다. 최근에 본 영화가 탑건: 매버릭과 하정우 주연의 하이재킹, 조정석 주연의 파일럿이다. 탑건 후편에서 톰 크루즈를 보며 세월의 흐름을 실감했다. 그도 늙고 나도 늙었다. 하지만 마음은 청춘이어서 패치가 더덕더덕 붙은 국방색 항공 잠바와 검은색 부츠를 여전히 즐겨 입는다.
어릴 때부터 비행기를 좋아했다. 비행기가 지나갈 때마다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비행기에 탄 사람은 누구일까, 얼마가 있어야 비행기를 타는 걸까, 이담에 어른이 되면 내게도 비행기 탈 기회가 올까 등을 상상하며 부러워했다. 다 쓴 공책이나 신문지를 잘라 종이비행기를 접어 수도 없이 하늘에 날렸다. 국군의 날 행사 때 펼치는 에어쇼는 최고의 볼거리였다. 색색의 연기를 뿜으며 묘기를 펼치는 비행기를 보며 비행하는 꿈을 꾸곤 했다.
미국에 오니 비행기는 에어 버스라고 불릴 만큼 흔한 대중교통 수단 중 하나였다. 비행기를 타고 싶어 했던 꼬마는 비행기를 자주 타는 어른이 되었다. 공군사관학교 생도와 미팅을 하기로 했는데 일이 꼬여 깨진 일이 있었다. 파일럿과 결혼할 팔자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업하는 남편이 마일리지를 모아주는 덕분에 누워 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비행기를 타면 창밖으로 보이는 비행기 사진을 찍는다. 그래서 창가 자리를 예약한다. 가족과 타면 그 자라를 내게 양보한다. 비행기 사진 파일에 새로운 비행기가 추가될 때마다 흐뭇하다. 이번엔 꼬리를 새로 단장한 프런티어 항공(Frontier Airlines)을 찍었다. 옆으로 지나가거나 활주로에 섰을 때 좋은 샷이 나온다. 프런티어는 저가 항공이다. 미국 국내선과 멕시코를 중심으로 운영하는데, 모든 기종마다 꼬리에 동물이 그려져 있다. Tail Logo 중에서 Axl the Axolotl, Wylie the Coati, Grace the Oncilla, Hops the Rabbit사진이 추가되었다. 항공사 홈페이지에 가면 동물 이름을 알 수 있다. 새 동물을 만날 때마다 기쁘다.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보다 내가 찍은 사진이 좋다. 핸드폰 사진기 성능이 좋아져서 비행기 창문에서 찍어도 잘 나온다. 터키항공(Turkish Airlines)도 찍었다. 내 눈엔 미국의 저가 항공사인 스피릿 항공(Spirit Airlines)이 제일 예쁘다. 노란 비행기를 타면 왠지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줄 것 같다.
화물기도 예쁘다. 주로 공항 끝 쪽에 세워져 있는데, 노랑 빨강 회색 군청으로 꼬리를 단장한 아시아나 항공화물기(Asiana Cargo), 태극마크가 그려진 대한항공 화물(Korean Air Cargo), 미국 대표 항공화물인 UPS 항공, 주황과 군청이 잘 어우러진 FedEx, 꼬리에 박스 모형이 세 개 그려진 룩셈부르크 화물 항공 카고룩스 (cargolux), 미국 화물 항공 ABX Air 등 새로운 비행기를 볼 때마다 보물을 찾은 듯하다. 공항 안에는 수많은 종류의 차들이 있다. 청소, 음식, 기름, 가방 운반 등 각기 맡은 일이 다르다. 비행기 한 대를 띄우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자기 분야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볼 때면 정신줄을 다잡게 된다.
상공에서 다른 비행기를 만날 확률은 높지 않다. 이륙하면 볼일이 거의 없는데, 햇빛을 받아 은색으로 빛나는 비행기가 지나가는 걸 보았다. 두 번째다. 가는 방향은 다르지만, 상공에서 다른 비행기를 만나면 반갑다. 창밖으로 보이는 구름도 신기하다. 오만가지 모양의 구름이 앞에서 와서 뒤로 흘러가는데 눈을 뗄 수가 없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하늘색과 운하는 가히 아름답다. 상공에서 산과 바다, 추상화와 수묵화를 그려 놓은 듯한 대지를 내려다보면 세상 만물을 지으신 분께 감사하게 된다. 비행기 사고를 접할 때마다 심장이 벌렁거리기도 하지만, 여전히 비행기가 좋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의 비행기 사진을 찍을 때까지 여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벌써부터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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