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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전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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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전개도
“나를 믿고 다 풀어 놓으라고!” 도대체 어떻게 풀어놓아야 다 푸는 것이란 말인가. 반듯이 누워 오른쪽 다리를 위로 들어 쭉 핀 상태에서 왼쪽다리 위를 지나 사선으로 틀어 곧게 뻗는다.
오른쪽 팔도 사선으로 반듯하게 뻗어 숨을 깊게 뱉어내며 오른쪽 발끝과 오른쪽 손끝을 있는 힘껏 편다.
이때 골반과 왼쪽다리가 축이 되며 등은 바닥에 고정하고 오른쪽 날개를 완전히 풀어주어야 한다. 비틀린 골반이 위기를 느꼈는지 콕콕 찌르며 신호를 보내는 통에 몸이 더욱 긴장했다.
야단맞았다. “쫌! 겁먹지 말고 나를 믿으라고!” 선생님의 버럭 소리에 움츠러진 어깨가 아예 딱 굳어 풀어질 줄을 모른다. 그렇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니 어깨가 안 아플 수가 없다며 “그냥 다 포기하고 다 내려놓으세요!” 호통을 친다. 그래, 에라 모르겠다.
어깨가 빠져도 나는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숨을 바닥까지 뱉어내며 될 대로 되라고 다 내려놓았다. “그래, 바로 이거라고!” 미쳐 생각지도 않은 탄성을 듣고 나는 놀라고 말았다. 빠져나갈 줄 알았던 팔은 오히려 제자리를 찾았는지 편안해졌다.
오른쪽 팔을 움직일 때마다 어깨에서 나던 뼈 어긋나는 소리가 언제부터인지 나도 모르는 사이 사라졌다. 십 수 년 동안 들었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더는.
힘이 들어가야 할 곳에 힘이 들어가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힘을 주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거라고 한다. 중심을 세우기 위해서는 다 풀어놓을 줄 알아야 한단다. 우리 몸의 중심은 어깨가 아니고 하체에 있다며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즉 골반에 있다고 한다.
골반이 틀어지면 몸 전체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면 된단다. 어정어정 걷는 할머니를 흉내 내며 편안하게 앉을 수도 걸을 수도 없게 된다며 겁을 준다.
틀어진 골반을 바로잡고 다리에 힘을 키우려면 우선 굳어버린 골반을 아작 내서 근육 하나하나를 모두 살려내 모든 근육이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숨을 풀어내면서 몸에 있는 근육 하나하나, 세포 하나하나를 펼쳐놓을 때 몸이 제일 행복해한다고 한다.
내 몸이지만 정말 모르고 사용하고 살았다. 발바닥을 땅에 붙이고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라고 하는데 발가락 전체에 힘이 들어간다. 새끼 발가락에 힘을 주는데 역시 온 발가락이 난리를 치고 있다. 온전한 줄 알았는데 병신이 따로 없다. 내가 바로 장애인이었다.
가만히 두 팔을 앞으로 뻗고 손만 힘껏 쥐었다 폈다 하는데 어깨부터 춤을 추기 시작한다. 몸 어딘가를 움직이려면 어깨부터 앞장을 선다.
이게 무슨 조화일까. 물론 사용 설명서가 있어도 제대로 읽어보지는 않았겠지만, 몰라도 너무 모르고 살았다.
내 의지대로 새끼 발가락 하나 간단히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무엇을 움직이고 무엇을 가지고자 그 많은 날을 쉬지도 않고 달려왔단 말인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낄 데 안 낄 데 구별도 못 하는 어깨처럼 나대고 살지나 않았는지 부끄러워진다.
운동 시작하고 오늘이 다섯 번째 날이었다. 첫날에 비하면 많이 안정된 것 같다. 운동하는 중간중간 에너지가 달려 고꾸라질 것 같은 상황도 많이 줄었다. 식습관에 신경 쓴 것이 효과가 있나 보다. 아직도 겁나고 서툴지만 모든 동작을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큰 발전이다.
일요일이 기다려진다. 토요일 밤마다 넷플릭스를 새벽까지 끼고 살던 내가 에너지 충전을 위해 밤참도 챙겨 먹고 될 수 있으면 일찍 잠자리에 든다.
무엇보다도 일요일의 생활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다. 12시까지 침대에서 뒹굴었는데 7시부터 일어나 운동으로 오전 시간을 다 내어주고 있다.
운동 끝내고 집에 와 남편과 작은 아이를 데리고 공원으로 직행했다. 이왕 걷는 것이니 그냥 무작정 걷지 말자고 운을 떼고는 운동 한다는 생각으로 아랫배에 힘을 주고 등을 펴고 걸어라. 될 수 있으면 고관절을 쫙쫙 펴고 발바닥 전체 근육을 다 사용해서 걸어라.
고작 몇 번 듣고 배운 알량한 지식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두 남자에게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한 바퀴 도는 데 대략 한 시간이 걸렸다.
건강한 삶을 위해 황금 오전을 전부 헌납하고 애쓴 우리 셋은 상으로 월남 국수 한 그릇씩 깨끗이 비웠다. 집에 와 씻고 나니 나른하다.
나른해진 몸 온도는 내 기분을 최대치로 끌어주기에 충분했다. 적당한 습도가 배어있는 몸은 또 한 주를 촉촉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몸의 중심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구겨지고 뭉쳐진 근육을 풀어주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것이다.
엉뚱한 곳에 들어간 힘은 풀고 쉬는지 안 쉬는지 모르는 호흡을 찾아 제자리에서 쉬게 하는 것이다.
거기에 뭉친 마음과 엉키고 꼬여버린 생각까지 하나씩 펼쳐내고 풀어내다 보면 내 몸의 전개도가 완성되지 않을까 싶다.
시작은 걸음부터 걸어야 했다
보폭은 석양과는 무관하니 서둘 일이 아니라는 여유로움을 부려보지만
간격과 배치를 바꿔가며 완벽함을 꿈꾸던 시절은 이미
중력의 힘으로 가라앉았고
군데군데 말라 남은 겉웃음이 우수수
모서리를 잃은 마음에 시니컬 하게 부딪힌다
주름진 목소리가 안간힘을 쓴다
달빛 한 줌이면 덧칠이 아직 가능하다니
그냥 구겨지고 뭉쳐진 그대로 버려두어도
에코는 상관없이 긴 꼬리로 골짜기를 누빌 것이다
힘이 들어간 곳이 제일 먼저 무너지는 법
중심을 세우기 위해서는 마음을 홀랑 뱉어 내 풀어 놓아야 한다
그래야 거울을 흔들며 오르던 상념의 계단이
바람을 따고 바람을 향해 짐을 뿌릴 것이다
얼음 어는 소리가 나면
접혀있던 그림자를 펼쳐 자신 없는 문장부터 덮어버리고
미간에 그려 있는 노란 실선을 넘어
마지막과 마주쳐 보는 거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공기의 변덕이었다고 한 번쯤
소리 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하늘이 맑아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럴 때면 나는 얼른 나른해지는 몸을 입고 일어나야 한다
따뜻한 땀이 비친다
김미희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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