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이타카를 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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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학창 시절 열심히 외웠던 공자의 말씀이 마음에 와닿을 때가 있다. 요즘이 그러하다. 배우고 익히니 기쁘고, 벗들이 찾아와주니 즐겁고,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엽지 않으니 군자는 아니어도 하루가 족하기 때문이다.
지난해는 코로나 시국에 척추 수술까지 하는 바람에 자가격리 하나는 확실하게 한 것 같다. 막막하고 답답했던 시기에 즐거웠던 일이 있었다면, 줌 강의를 듣는 것이었다. 좋아하는 작가와 공부하며 통증을 잊을 수 있었고, 배우고 익힘으로 재충전할 수 있었다. 오래전 문창과 공부를 할 때 온라인 원격 수업을 해 본 경험이 있어서 딱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숙제로 내준 작품과 고전, 책장에 꽂아두고 째려만 보았던 책과 주목받는 젊은 작가의 작품집을 사 읽으며 “독서는 집에서 하는 여행”이라는 말을 체험한 시간이기도 했다.
거동이 불편해서 나가지 못하니 이따금 지인들이 찾아오거나 안부 전화를 하는데, 내가 줌 강의를 듣고 있다고 하면 이구동성 아직도 배울 게 남았냐며 웃곤 했다. 음! 죽을 때까지 배워도 끝이 없는 게 공부고 인생 아니던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까진 재밌다. 전공을 문학으로 갈아탄 것도, 업으로 삼은 것도 후회는 없다.
근간 읽었던 책 중 인상 깊었던 걸 꼽으라 하면 단연 해이수 작품이다. 『기억나지 않아도 유효한』이란 수필집을 읽고 문장에 홀려서 소설집까지 구해 읽었다. 특히 「거대한 곡선의 회항」이란 수필의 울림이 컸다. 거기에 그리스 시인, 콘스탄티노스 카바피의 ‘이타카’라는 시를 인용해 풀어낸 작가의 경험담이 나온다. 오래전, 가수 하현우와 윤도현이 출연했던 “이타카로 가는 길”이라는 방송에 소개된 적 있는 시였다. 소설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아마도 그의 이타카였을 것이다. 악마가 다가와 명작을 쓰게 해주는 대신 수명에서 20년을 떼어가겠다고 속삭이면 기꺼이 바칠 의향이 있노라고 고백할 만큼 창작에 대한 열망이 절절했었다. 소설이 밥이 되지 않는 세상,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난한 습작생의 사계절은 얼마나 춥고 길었을까.
그가 이타카를 처음 읽었던 날, 카바피가 자신의 상황을 미리 알고 낭송해 주는 것 같아 철철 울었고, 나는 그가 쓴 문장을 읽다가 따라 울었다. 창작의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소설이 너를 풍요롭게 해주길 기대하지 말라는 전언이 그를 문학의 이타카를 꿈꾸던 시절로 회항시켜 주었고 그는 자유로워졌다.
얼마 전, 특별강사로 초대된 해이수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는 문학을 과정이라고 말했다. 작은 일을 위대한 사랑으로 꾸준히 해나가는 거라고. 집중해서 한 편 한 편 쓰다 보면 자신이 소망했던 이타카에 언젠가는 도달하게 될 것이라고. 나의 이타카는 문학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노력이 절망이란 이름으로 돌아올 때 가끔 힘이 풀리기도 하겠지만, 괜찮다. 창작의 길 위에서 나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노엽진 않을 것이다.
“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네 목표는 그곳에 이르는 것이니/그러나 서두르지는 마라/비록 네 갈 길이 오래더라도/늙어져서 그 섬에 이르는 것이 더 나으니/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해주길 기대하지 마라/이타카는 너에게 아름다운 여행을 선사했고/이타카가 없었다면 네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았으니/이제 이타카는 너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구나//설령 그 땅이 불모지라 해도 이타카는/너를 속인 적이 없고, 길 위에서 너는 현자가 되었으니/마침내 이타카의 가르침을 이해하리라”
- C. P. Cavafy, Ithaca 중에서
카바피의 시는 자신을 되돌아보고 마음을 다잡아 초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신비한 힘을 지녔다. 100여 년 전, 그가 남긴 전언이 방향을 잃은 이들을 허상 속 유토피아가 아니라, 현실 속 이타카로 인도하는 등대와 나침반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이타카는 그리스 이오니아 제도의 작은 섬마을이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전쟁을 마친 후 아내와 아이들에게 돌아가려 했으나 수많은 난관에 부딪혀 십 년 동안 가지 못했던 그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에게 이타카는 이상향이었고 살아서 돌아가야 할 목적지였다. 목표가 없었다면 끔찍한 시련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목표는 동력이 된다. 지금은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시기지만, 저마다 가슴에 이타카를 품고 목표를 향해 첫발을 내디뎠으면 좋겠다. 조급해하지 말고 성실히, 과정을 소중히 여기며 말이다.
박인애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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