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공원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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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후 주변의 공원들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돈 들이지 않고 운동이 되면서 신선한 공기를 실컷 마실 수 있는 방법으로는 공원산책 만한 것이 없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만보 걷기니 뭐니 해서, 기를 쓰고 운동목적으로 공원을 찾아 다녔지만, 지금은 그냥 야외 나들이 가는 것처럼, 모르는 곳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주변 공원을 탐색하고 다닌다.
사실 우리 집 부근은 컨트리사이드여서 그런지 아주 가까운 주변에 공원은 없다. 차로 10분 거리에 헤슬렛 공원이 있는데, 주위에 나무는 별로 없고 2마일 정도를 걸을 수 있는 트랙과, 농구대, 플라잉 골프 시설, 아이들 놀이터가 두 군데 있다.
그런 연유로, 평일 오전에 가면 그네 타는 아이들과,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산책 길 중앙에는 월남전이나 한국전처럼 남의 나라 전쟁에 가서 희생된 군인들을 위한 작은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성조기와 텍사스 론스타기가 펄럭이고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한낮에 가면, 텍사스 들판처럼 적막하기 그지없고 공원 맞은 편 철로만 왼 종일 바쁘다. 끝이 보이지 않는, 화물칸을 세다가 지칠 정도의 긴 기차가 거의 시간마다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코로나 19 시대에 소비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 덕분이다. 이 공원의 핫 스팟은 대책없이 파아란, 경계가 보이지 않는 텍사스 스타일의 하늘이다.
예전의 살던 동네 부근의 아카디아(Arcadia) 파크는 포트워스에 있는 주택가 공원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고(177.2acers) 조성이 잘 된 공원이다. 파크 글렌 동네를 중심으로 총 세 군데의 공원이 연결되어 있는데, 하루에 다 걷는다면 최소 4-5마일은 될 것이다.
주변에 나무도 많고, 생태계를 보호하는 지역도 좀 있다. 여름이면 프레리 지역처럼 수풀사이에 피어있는 야생화들을 볼 수 있고, 다양한 새들도 만날 수 있다.
한 번은 어떤 할머니가 카메라를 들고 나무아래 서 있기에 뭐 하시냐고 물었더니, 우드펙커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 했다. 새 탐험에 대한 할머니의 열정이 참으로 신선해 보였다. 나이가 들어도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취미가 있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한다.
파크 입구에는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 동네 애들과 자주 낚시를 하던 개울이 있는데, 지금도 개울위 다리를 건너다보면 딱 그 또래의 아이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뭐 좀 잡았니?” 하고 물으면 “아니요” 하면서 바께스 안을 보여주는 데, 예전에 많이 보던 모습이어서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이 개울에는 자라처럼 작은 거북이들이 많이 사는데, 가을이 되면 개울가에 낙엽이 쌓여 운치가 있다.
강아지를 데리고 숲이 우거진 곳으로 들어가 걷다가 보면, 동부의 멋진 숲 못지않다는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한다. 그러다 가끔 부지런히 도토리를 나르고 있는 다람쥐와 잠시 눈이 마주치면, 재는 저렇게 열심히 월동준비를 하고 있는데, 나는 뭐하나 싶어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바빠지기도 한다.
‘천기누설’ 같은 프로에 나오는 겨우살이도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집 근처 공원 중 한 곳은 이글 마운틴 파크이다. 이글 마운틴 호수가 보이는 이 파크는 사슴 같은 야생동물이 사는 숲을 그대로 놔두고 원래 있던 길을 조깅코스로 만들었기 때문에 길이 울퉁불퉁하고 등산하는 것처럼 가파른 코스 투성인데, 북텍사스에서 이만한 코스가 없어 주말이면 차 파킹 할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인근에 사는 주민 뿐 아니라 먼 곳에서도 차를 타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가끔 가는 공원인데, 주로 답답할 때 뻥 뚫린 호수를 보기 위해서다. 가장 긴 C 코스는 한 번도 끝까지 가본 적이 없는데, 등산용 하이킹 스틱을 가져가면 도움이 된다.
어제는 지인이 소개해준 새 주택가 부근에 있는 파크에 다녀왔다. 텍사스 인구가 불어나면서 포트워스 서북쪽 일대에도, 엄청난 수의 주택이 들어섰고 지금도 건설중이다.
요즘 보통 주택은 옆집과의 거리가 5피트 간격인데, 예전에 비해 공원까지 조성된 주택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집장사들이 한 채라도 더 지어서 팔 목적으로 공원은 잘 만들지 않는 것 같다.
이 공원도 개발업자가 일부러 만들었다기 보다 그냥 집 짓고 남은 땅에 산책로를 인심 쓰듯이 시멘트로 발라놓은 것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어디가 공원이 시작되는 점이고 끝나는 지점인지 참으로 헷갈렸다.
살다보면 가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때가 있는데, 딱 그 마음 상태 같은 공원이었다. 마주 오는 가족도 왠지 길을 잃어서 이공원에 들어온 것처럼 허둥지둥해 보였다.
공원은 삶의 쉼표이다. 바쁜 일상 중 자연을 접하며 나를 되돌아보게 만들어주는 회심의 장소이자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시켜 주는 곳이다. 과거에 공원은 귀족들을 위한 특별한 장소로 성이나 궁궐의 한 부분에 속했지만, 지금은 시민을 위한 놀이와 휴식의 장소로 가장 대중적인 공간이다.
일본에선 어린이와 엄마들의 사교모임으로 공원에 처음 나가는 걸 ‘공원데뷔’라고 한다. 뉴욕이나 런던, 서울같은 대도시들은 도시를 대표하는 큰 공원들을 지니고 있는데, 몇 년 전 뉴욕 센트럴 공원엘 갔다가 길을 잃은 적이 있다.
서머셋 모음의 작품에 많이 등장하는 런던 하이디공원 역시 근대공원의 산 역사를 대변한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이번 주말, 높고 푸른 하늘을 벗 삼아 새로운 공원산책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아니면 플라뇌르(도시산책자)라도 되어 가을을 기웃거려 볼 일이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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