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박인애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 미션 클리어
페이지 정보
본문
요즘 가는 곳마다 살 빠졌다는 소리를 듣는다.
잘 지냈냐는 인사보다 그 말 먼저 하는 걸 보면 육안으로도 빠진 게 보이는 모양이다. 몸무게와의 전쟁을 벌였던 시절에도 들어보지 못했던 말을 한 번에 몰아서 들으니 귀가 다 황송하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살 많이 뺀 사람과는 밥도 먹지 말아야 한다고 농담을 했다. 독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뭣보다도 덜 아파서 감사하고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다.
지인들이 궁금해했다. 어떻게 살을 뺐는지. 긴 얘기 짧게 하자면 식이요법을 했다. 밖에 나돌아다닐 형편이 못돼서 식후에 거실 몇 바퀴 도는 게 다니 운동쪽은 아니고, 식습관 바꾼 효과를 보는 것 같다. 노시인이 해준 말씀이 명언이었다. 네 입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지 말고, 네 몸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라던 말이 어느 날 마음에 와닿았다. 몸이 좋아하는 음식은 대부분 맛이 없다. 그리고 식사량을 조절했다. 갑자기 양을 줄이면 몸 상할까 봐 장시간에 걸쳐 한 숟갈씩 줄여나갔다. 지금은 전에 먹던 양의 삼분지 일이면 충분하다. 다이어트를 하다가 방심하면 요요가 와서 더 찌기도 했는데, 서서히 빼서 그런지 어쩌다 소나기 밥을 먹어도 요요가 오진 않는다. 다이어트를 해 본 사람은 안다. 누군가의 성공 사례가 모두에게 적용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자기와 맞아 떨어져야 하는데 내겐 그 방법이 맞았던 것 같다.
잘못된 식생활을 개선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달고 짠 음식에 길들어서 싱거운 음식은 목구멍에서 넘어가질 않았다. 식재료 자체가 지닌 고유의 맛은 무시한 채 자극적인 맛만 좋아해 왔기 때문에 간을 조절하는 것도 어려웠다. 탄수화물 줄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갓 지은 밥을 좋아해서 주걱으로 저으면서도 퍼먹고, 두 번 뜨러 가는 게 귀찮아서 냉면 그릇에 퍼먹기도 했는데 줄이려니 고역이었다. 삶고 무친 것보다는 튀기고 볶은 걸 좋아했고, 과일도 단맛 나는 것만 먹었다. 분식을 좋아해서 삼시 세끼 면이나 만두를 먹어도 괜찮았다. 게다가 빵까지 좋아해서 뉴욕과 엘에이에 사는 조카에게 파리바게뜨 빵을 비행기로 공수해 먹기도 했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 금강산도 식후경. 오늘까지만 먹고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찔려서 그런 말을 앞세우며 먹는 이유를 합리화하곤 했다.
다이어트를 결심한 건 척추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그분이 미션을 주셨다. 살찌면 멀쩡한 사람도 허리가 아픈데 디스크 환자가 살이 찌면 되겠냐며 목숨 걸고 빼라고 했다. 하겠다고 대답한 죄로 목숨을 걸었다. 일 파운드만 몸무게가 늘어도 다리가 아파서 파스로 도배를 해야 자니 뺄 수밖에 없었다. 지난 일 년 반 동안 노력해서 의사가 정해준 무게에 도달했다. 감량에 성공한 것이다. 먹는 게 낙이었던 사람이 30파운드를 뺀 건 인간 승리라고 보아야 한다.
통통녀에서 뚱뚱녀가 된 후부터 다이어트를 멈춘 적은 없었다. 옷 치수는 매년 한 사이즈씩 업그레이드되었다. 한국에서 옷을 보내주던 언니가 어느날 핵폭탄급 발언을 했다. 이제 너한테 맞는 옷은 없다고. ? 사이즈를 입는 건 여자이길 포기한 거라고. 사실이 그랬다. 뭘 입어도 어울리지 않았다. 긴 티셔츠에 고무줄 든 쫄바지가 내 교복이었다. 그놈의 쫄바지가 아직도 깔 별로 있다. 공적인 자리에 갈 땐 에이 라인 원피스를 입었다. 얼굴과 손발이 그나마 작아서 사람들은 원피스 속에 숨겨진 살을 상상하지 못했다.
살을 빼보려고 오만 종류의 다이어트를 시도해 보았다. 물살인지 십 파운드는 정도는 쉽게 빠지고 쉽게 올랐다. 간헐적 다이어트를 마지막으로 했던 것 같다. 실패했던 이유는 명료하다. 나 자신에게 관대했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는 독해야 성공한다. 얼마나 독하면 살 뺀 사람과 밥을 안 먹을까. 먹으면서 살이 빠질 일은 거의 없다.
살이 빠져서 척추가 받는 하중이 줄었다. 다리가 덜 아프니 살 것 같다. 그런데 맞는 옷이 없다. 뚱뚱할 때 입던 옷은 남의 옷 얻어 입은 것 같아서 급한 대로 몇 가지 샀다. 입던 옷을 도네이션 박스에 넣으려고 정리하다 바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맨날 입던 내 바진데 얼마나 크던지 낯설었다. 허리가 아니라 항아리였던 거다. 살이 빠지니 턱살이 터키 목처럼 늘어지고 살 속에 묻혀있던 쇄골뼈가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세상에, 나는 쇄골뼈가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30년 만에 민소매도 입었다. 팔뚝 살이 빠져 덜렁거렸지만, 나쁘지 않았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남동생이 성형외과에서 하안검을 했다며 비디오 콜을 했다. 콤플렉스였던 곳을 고치고 나니 인상이 밝아지고 자신감도 생기더란다. 하는 길에 미간과 이마에 있던 주름도 보톡스를 맞아 쫙 폈더니 17년은 젊어진 것 같다며 환히 웃었다. 누나랑 매형 한국 오면 과부 달라 빚을 내서라도 해야 한다며 강력히 추천했다. 의술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수술하고 일주일 됐다는데 흉터가 없었다. 패인 주름 때문에 화난 것 같던 인상이 다리미로 편 듯 반듯해진 걸 보니 좋아 보였다. 늘어진 살 없애는 건 내가 해야 하는데, 남편이 자기도 하안검을 하겠다고 바람이 잔뜩 들어서 병원 위치를 알아 놓으라고 난리였다. 우리 둘 다 하안검을 하기로 했다. 말 타면 종부리고 싶다더니 사람 심리가 그런 가보다. 살 빠지니 예쁜 옷 사고 싶고, 얼굴에 주름도 지우고 싶고, 늘어진 살도 잘라서 당기고 싶다. 세월의 주름이 지우고나면 나도 17년 젊어지는 걸까?
그 봄이 기다려진다.
박인애
시인, 수필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