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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에세이 ] 천사의 도시에서 천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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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2-09-3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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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자꾸 소심해지는 걸까요. 결정 장애가 생긴 걸까요. 이럴까 저럴까 며칠을 고민하고 결정해도 돌아서면 후회하기 일쑤입니다.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생각해 보면 낯 뜨거운 일들이 떠올라 얼굴 붉힐 때가 많아졌습니다. 혼자라는 것에 익숙해져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나이를 잘못 먹어가는 탓일까요.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도 없고 신나는 일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러니 가고 싶은 곳이 없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당연지사지요. 

 

  2016년에 내가 1회로 받은 동주해외작가상 시상식이 올해로 7회째를 맞았습니다. 매년 한국에서 하던 시상식을 이번에는 엘에이에서 하게 되었다며 참석 여부를 주최 측에서 물어왔습니다. 참석하겠다고 답하고부터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월요일 오후에 행사가 있으니 혼자 월요일 아침 일찍 출발해서 다음 날 첫 비행기로 돌아오면 될 것 같아 그러기로 했던 것입니다. 

 

생각만 하며 며칠을 보내다 결정이란 걸 해야 할 것 같아 비행기표를 사고 호텔 예약을 마쳤습니다. 

그래, 얼마만 인가. 여행이란 걸 한 번 떠나보는 거야. 열심히 일한 자는 떠나도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혼자 일박만 하고 오겠다던 원래 계획과는 다르게 남편과 함께하는 삼박 사일 일정으로 바꾸었습니다.

 “토요일 아침에 출발하면 가족 같은 손용상 선생님 ‘미주 윤동주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해 축하해드리고 일요일에는 둘이서 여행을 하는 거야. 택시로 다니는 것보다 렌터카를 해서 다니는 게 낫겠지? 일단, 당신이 가고 싶어했던 게티 미술관에 들러 고흐를 만나는 거야. 그리고 일몰이 훌륭하다는 라구나 비치에 가는 거지. 멋진 카페에서 칵테일도 한잔하자. 아니, 그러지 말고 차라리 거기에서 일박할까? 일몰이 잘 보이는 바닷가 호텔을 잡아, 베란다에 앉아 럼주 병을 따는 거야. 혹시 알아, 다시 청춘이 될지. 그러다가 너무 좋아서 하루가 일주일이 될지. 어때? 좋지?” 여행 계획이라는 것은 한 번도 세워본 적이 없는지라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기억으로 왜 따라가야 하느냐고, 혼자 다녀오라고 툴툴거리는 남편을 달래 보았지만, 영 내키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나 혼자 택시 타고 움직이다가 내가 하도 이뻐서 누가 붙잡고 집에 영영 안 보내주면 어떡할 거야? 무섭지도 않아?” 한 옥타브 올린 목소리로 조금은 새침하게 속사포로 내질렀더니 남편은 어이가 없는지 잠시 말이 없었습니다. “흐흐 거 봐, 당신도 무섭지? 나 없는 세상에서 산다고 생각해봐, 얼마나 심심하겠어. 안 그래?” 이젠 어이가 없다 못해 기가 막히는 모양입니다. 역시 여행도 다녀본 사람이나 하는 건가 봅니다.

 

며칠이 지나면서 여행은 3박 4일에서 다시 일박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손용상 선생님 수상 축하 모임이 월요일 점심으로 옮겨지면서 두 행사가 같은 날 점심과 저녁으로 정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엘에이 공항에 도착하니 정오가 막 지나고 있었습니다. 두어 번 왔던 기억을 더듬어 택시를 기다렸는데 예전과는 다르게 택시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당황해서 물어보니 셔틀버스를 타면 택시 타는 곳으로 데려다준다는 것이었습니다. 택시를 타고 행사장으로 달려가는데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가슴 속 어딘가에서 자고 있던 나의 천사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헐레벌떡 뛰어 들어가니 식전 행사는 막 끝이 났고 점심 식사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동주해외작가상’을 만들고 시상하기 위해 한국에서 출장 오신 시산맥 대표 문정영 시인, 김영찬 시인 등 손용상 선생님 지인 40여 분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일찍 가서 도와야 할 사람이 맨 끝으로 당도하고 보니 민망했지만, 그래도 참석하게 되어 기뻤습니다. 망설이느라 애썼던 마음을 다독일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함께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면 그게 바로 좋은 인연이겠지요. 점심 식사를 마치고 호텔 체크인을 한 다음 ‘동주해외작가상’ 시상식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 가면 ‘시와 사람들’ 동인들과 보고 싶은 얼굴들이 여럿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또 뛰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올 거라는 걸 알고 작품집을 챙겨와 건네주는 분도 있었습니다. 좋은 평판과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제일 큰 것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니 상을 만들어 주고 또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귀한 자리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 주고 박수를 보낸다는 것이 바로 천사의 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돌아보면 참 많은 것을 분에 넘치게 얻었습니다. 고마운 얼굴도 많습니다. 가을 국화처럼 늦게까지 곁에 남아 내 뜰 안을 향기롭게 해줄 사람도 있어 좋습니다. 

 

   천사의 도시를 떠나기도 전에 역시 후회란 놈이 새벽을 깨우며 나를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조차 내어줄 수 없는 내 옹졸한 삶이 싫었습니다. 

이 가을은 부디 내 안 깊숙이 숨어있는 천사를 찾아 집으로 데리고 오는 계절이 되길 바라봅니다. 망설임도 없고 헤맴도 없는 쉬운 얼굴로 착한 어투로 세상에서 가장 읽히기 쉬운 문장으로 부지런히 달려가는 것 말고 천천히 물방울 튕기며 걷는 걸음으로 감염자가 되어 누군가를 적시며 돌아오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가는 길   / 김미희

 

걸음에 걸음을 보태면

바람이 될까요

몸보다 무거운 마음 버리면

오르게 될까요

 

삼켜온 것들

하고 싶었던 말 한 마디 한 마디

1,442계단 쌓아

부를 수 없는 이름 없는 세상을 위해

오르고 싶습니다

 

눈길 닿기만 해도 금련화는

하늘까지 채우는 별로 뜨는 밤

액정 화면 속에서만 계시는 

백두의 푸르른 암묵을 깨닫기 위해

당신에 스며드는 꿈을 꿉니다

 

김미희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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