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박인애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 검은 독수리, 하늘을 날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4-10-11 09:06

본문

박인애 (시인, 수필가)
박인애 (시인, 수필가)
 한국의 추석을 생각하면 높푸른 하늘, 시원한 바람, 가을꽃과 풍성한 오곡백과, 넉넉하고 둥근 보름달이 연상되었다. 지구도 중증을 앓는지 올 추석엔 폭염주의보를 보내어 그런 가을 풍경은 기대할 수 없었다. 체감온도가 33℃ 이상이다 보니 모든 사람이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텍사스 더위에 단련된 몸이라 더운 건 참을만했으나 문제는 땀이었다. 문밖에만 나가면 땀으로 멱을 감으니 병원 출입하기가 민망했다.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고 많이 걷는 것도 쉽진 않았다. 더운 곳에 살면서도 더위로 인한 불편을 못 느끼고 살았던 미국에서 일상이 새삼 그립고 감사했다. 

  전기톱으로 다리를 자른다면 이렇게 아플까 싶을 정도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다 비행기에 실려 한국에 왔다. 기내까지 들어가는 작은 휠체어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의료 대란으로 병원 방문이 어려운 시기인 데다 추석 연휴까지 겹쳐 의사를 만나는 일이 쉽지 않았으나, 지인의 도움으로 개인병원에서 시술을 받았다. 통증이 감소하니 살 것 같았다. 추석 연휴가 지난 후 MRI를 찍어보니 2020년에 수술했던 척추가 내려앉았다. 같은 뼈, 반대 방향이었다. 영상을 보니 척추에서 다리로 내려가는 통로가 완전히 막혀 불 꺼진 창처럼 캄캄했다. 신경은 눌리고 디스크는 터져서 튀어나오니 아팠던 거다. 충격으로 내려앉은 것 같다고 하는 걸 보니 아마도 두 달 전에 발생한 교통사고 때문인 것 같았다. 수술했던 쪽 신경이 안 돌아와 오른쪽 발끝이 마비된 채 사는데, 이번엔 왼쪽이 무너졌다니 참으로 난감했다. 네 차례에 걸쳐 시술을 받았다. 재발의 소지가 높은 위치이니 시술하고 약 먹으며 최대한 수술을 늦춰보자는 게 의사의 소견이었다. 환자 입장을 배려해 주는 좋은 분 같아 감사했다. 마취를 안 하고 척추에 주사를 맞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린다. 다섯 번째 시술을 앞두고 나는 힘든 가을을 보내는 중이다. 

  시월은 국군의날, 개천절, 한글날까지 징검다리 휴일이 많아 연달아 쉬려고 휴가 낸 사람이 많았다. 우리가 머무는 호텔 근처는 오피스가 빽빽이 들어선 도심의 한복판이라 공휴일이나 국경일엔 식당 문을 닫는다. 한산한 날 운동 삼아 빌딩 숲 사이를 걷다 보면 바람이 너무 차서 몸을 움츠리게 된다. 몸이 아파 그런지 칼바람이 따로 없었다. 
  입국할 때 인천공항에서 휴대 전화에 유심칩을 사 넣었다. 병원에 다니려면 한국 전화번호가 필요하다. 예약 확인부터 검사실 방 번호, 의사가 급한 수술이나 회진으로 진료가 늦어질 시 담당자가 실시간 문자를 보내주기 때문이다. 오픈해 놓았더니 종일 문자가 왔다. 중요한 내용도 있었지만, 대부분 광고였다. 
  한국도 ‘Public safety message’가 온다. 서울에 와서 가장 많이 받은 것은 서울특별시청에서 보낸 “북한이 대남 쓰레기 풍선(추정)을 또다시 부양하고 있음. 적재물 낙하에 주의하시고 발견 시 접근하지 마시고 군부대(1338)나 경찰에 신고 바랍니다”라는 ‘안전안내문자’였다. 간간이 실종신고나 다른 알림이 뜨기도 하지만, 출근길이나 등하굣길에 적재물 낙하를 유의하라는 문자가 자주 뜨니 남북 관계의 심각성이 현실로 다가왔다. 
  다음으로 많이 받은 건 국군의날을 전후하여 뜬 안내 문자였다. 하루는 비행기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깜짝 놀랐다. 전날 “9.30~10.1(2일간) 국군의날 행사 및 준비 관련 비행(훈련 포함)으로 비행음이 발생될 수 있다”라는 서울특별시청의 알림 문자가 떴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창밖을 보니 고층 건물 사이로 노란 비행기들이 지나더니 뒤이어 네 대가 한꺼번에 지나갔다. 비행음이 굉장했다. 그 문자를 못 받았다면 비상사태가 발생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국군의날에 광화문에서 세종대로를 거쳐 남대문까지 ‘국군의날 시가행진’과 ‘블랙이글 에어쇼’를 한다는 공지를 보았을 때, 얼마나 설레던지 잠이 오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한강 에어쇼를 보러 다녔던 생각이 났다. 연막을 뿜으며 창공을 나는 비행기가 얼마나 멋지던지 눈을 떼지 못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환자 걸음이라 느려서 비행기 몇 대는 놓쳤지만, 전투 헬기 아파치의 저공비행과 토네이도 랜딩 기동, 롤백 체인지턴 기동, 구스 기동, 색색의 연막을 뿜으며 하늘을 나는 대한민국 공군의 자랑 ‘블랙 이글스’의 멋진 비행쇼를 보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느라 하마터면 척추디스크에 목디스크를 추가할 뻔했다. 마음이 덜 자라서 환호하며 동영상을 찍고 와서 밤새 앓았다. 하늘을 나는 건 고사하고 두발로 잘 걸었으면 좋겠다. 
  국군의날 행사는 한국군의 위용과 전투력을 국내외에 과시하고 군의 사기 진작에 기여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한다. 국군의날 관련 뉴스를 읽었더니 계속 떠서 여러 개 읽게 되었다. 남과 북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남과 북이 상생할 길은 없는 걸까? 건군 76주년 국군의날을 기해 다시 한번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해 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UT Austin 자동입학 제도 — 이제 상위 5%만 가능!현재 텍사스 하이스쿨 학생들은 비상이 걸렸습니다. UT Austin 의 6% 자동 입학 제도가 2026 년 가을부터는 5% 로 줄어들거라고 UT 어드미션이 몇주 전에 발표 했기 때문입니다. 이 새로운 제도는 현…
    교육 2024-10-11 
    한국의 추석을 생각하면 높푸른 하늘, 시원한 바람, 가을꽃과 풍성한 오곡백과, 넉넉하고 둥근 보름달이 연상되었다. 지구도 중증을 앓는지 올 추석엔 폭염주의보를 보내어 그런 가을 풍경은 기대할 수 없었다. 체감온도가 33℃ 이상이다 보니 모든 사람이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문학 2024-10-11 
    이제 올해도 달력이 두어장 남은 시점이고 오는 10월15일은 개인세무보고 연장 보고의 마감까지도 끼어 있는 달이다. 마지막까지 연장보고로 미루어온 납세자들에게 몇가지 중요한 서류/정보를 나열해 본다. 물론 지난 4월에 이곳에 발생한 천둥번개를 동반한 불손한 날씨로 해당…
    회계 2024-10-11 
    상업용 건물의 보험료 산출기준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집을 위한 집보험이 필수적이듯이 상업용 건물 소유주에게는 상업용 건물보험이 필수적이다. 그러면 이런 상업용 건물의 보험료는 어떤 기준에 의해서보험료가 책정되는 것인지 알아 볼 필요가 있다.기본적인 보험료 산출은…
    리빙 2024-10-04 
    10월의 첫날 축복받은 시간에 콜로라도의 멋진 산길을 원 없이 달려볼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숨을 쉬고 있고 시간을 쫓아 삶의 이상향을 찾아갈 수 낭만이 있어서 입니다. 도로를 따라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가득 메운 10월의 아스펜 단풍 향연에 젖어 시간 가는 줄 모…
    여행 2024-10-04 
    지난번 컬럼에서 2023년도 세금보고를 4월15일전에 IRS에 연기요청을 한분들은 마지막 마감일이 통상 10월15이었는데 달라스,덴톤, 콜린 카운티등에 거주하거나 비즈네스가 있으신분들은 올해에는 최종마감일이 10월15일이 아닌 11월1일이라고 IRS 발표를 설명해드렸다…
    회계 2024-10-04 
    오늘의 주제는 ‘버섯의 종류와 효능’이란 주제로 준비했습니다. 이 세상에 버섯종류는 실제로 약 1만 5천개 정도라고합니다. 그러나 그중에 식용버섯은 불과 1000~2000개라고 하며 이중에 대부분은 야생버섯이며 상업적으로 재배되는 버섯은 30개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리빙 2024-10-04 
    공학박사박우람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석사미국 Johns Hopkins 대학 기계공학 박사UT Dallas 기계공학과 교수재미한인과학기술다 협회 북텍사스 지부장한국에서는 양력 날짜 옆에 음력도 같이 표시해두는 달력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연세가 있으신 어르신의 …
    리빙 2024-10-04 
    ◈ 제주 출신◈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에세이집 <순대와 생…
    문학 2024-10-04 
    조나단김(Johnathan Kim)-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 졸업- 現 핀테크 기업 실리콘밸리 전략운영 이사대학 지원 절차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며 떠오르는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내가 명문 대학에 입학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이다. 특히 아…
    리빙 2024-09-27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오늘은 중국 매운 음식의 대명사인 마라로 만든 음식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마라(麻辣)에서 마(麻)는 마비가 된 것처럼 얼얼한 매운맛을 의미하고 라(辣)는 불을 삼킨 것처럼 뜨거운 매운맛을 의미합니다.마라탕의 뿌리는 중국 사천(四川)에 …
    리빙 2024-09-27 
    지난 밤 늦게 도착하여 머문 콜로라도 스프링스(Colorado Springs)의 밤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호텔 창문을 통해 바라보이는 높이를 알 수 없는 산들이 진하디 진한 하늘의 빛을 삼켜버린 환한 달빛에 반사되어 선명하게 비치는 모습에 이곳이 높은 고지임을 …
    여행 2024-09-27 
    세상에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재테크 책과 자기계발서를 읽는다. 그럼, 그 책을 읽은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다들 알 것이다. 왜일까?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부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보다는…
    부동산 2024-09-27 
    들판에 하얀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하늘이 유난히 푸르고 멀게 느껴지며, 여름내 피고 지던 야생 해바라기가 시들어갈 즈음이면 추석무렵이다. 미국 와서 강산이 몇 번 변할 만큼 살았는데도 난 아직도 한국의 절기를 고집한다. 예전에는 쩔쩔끓는 날씨에 ‘처서’나 ‘백로’를…
    문학 2024-09-27 
    24절기 중 16번째 절기인 추분이 막 지나는 시점이다. 이제부터는 밤이 길어지고 여름의 열기도 식는 계절로 접어드는 때이다. 연방 준비 위원회(연준)이 파격적으로 0.5%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연준의장 파월은 시기적절을 거론하며 금리인하를 이루어 냈다. 연준 회의에…
    회계 2024-09-27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