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모터홈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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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저문화가 발달된 미국에서 RV(Recreational Vehicle)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캠핑카로도 불리는 모터홈과 트레블 트레일러, 그리고 트럭을 개조해서 만든 트럭 캠퍼가 그것이다. 그 중에서 우리 부부는 몇 년 전부터 모터 홈을 하나 장만해 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여행을 다니다 보니 날이 갈수록 숙박비용도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 별이 총총한 빅밴드의 밤하늘처럼, 더 머물고 싶은 장소가 있어도 그럴 수가 없는 것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하여 처음엔 남편이 타고 다니는 트럭 뒤 칸을 캠퍼로 개조하여 다녀보았는데, 문제는 잠자리가 몹시 불편하다는 거였다. 누우면 꼼짝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에어베드를 깔았는데도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쑤시고 결렸다. 게다가 천장이 낮으니 걸핏하면 머리를 찧고, 밤중에 화장실을 가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젊다면 그 정도 불편함은 그냥 재미로 알고 지나가겠지만, 지금은 하루만 잠을 편히 못 자면 다음날 여지없이 컨디션 저하가 와서 여행하는데 지장이 생겼다. 그래서 숙박은 다시 호텔을 이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모터 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시간 날 때마다 검색을 해보았다. 가격은 차 뒤에 매달고 다니는 트레일러가 더 싸지만, 대형 트럭이 필요하고,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떼었다 붙였다 하는 것도 불편하고, 개스비도 많이 드는 것 같아, 일단은 기동성이 좋은 소형 모터홈에 더 관심이 갔다. 그러던 중 얼마 전부터 앞집이 집 앞 드라이브 웨이를 넓히고, 우체통을 옮기는 것이 보였다. 알고 보니, 새로 산 대형 트레일러 때문이었다. 그 집은 스쿨버스만한 모터 홈이 있는데도, 한 채를 더 구입한 것이다.
지난주 그들 부부는 ‘켄터키 더비’ 말경주 경기를 보러 간다며, 집채만한 트레일러를 매달고 길을 떠났다. 확실히 그들은 아메리칸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물론 사람 나름이겠지만, 이곳에 오래 살면서 느낀 미국인들의 특징은 실행력이 우리에 비해 아주 좋다는 것이다. 원하면, 필요하면, 이렇게 저렇게 따지지 않고 Do it! Buy it! 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우리는 너무 생각만 하다가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 사람들은 끊임없이 무슨 공사를 벌린다. 스토로지 빌딩을 짓고, 집을 리모델링하고, 수영장을 만들고, 팬스를 바꾼다. 뭔 돈이 많아 저렇게 하나 싶은데, 이들은 크레딧만 허락된다면, 가만있지 못하고, 뭐든 시작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돈이던 크레딧 이던 써야 내 것이라는 명언(?)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미국인들 평균 기본 저축액은 아주 낮다고 한다. 전쟁과 가난한 시절을 겪으면서 유비무환만이 살길이다 하고 배워온 우리와 달리, 이들의 유전자 안에는 개척과 도전정신이 뿌리 잡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시스템도 한몫을 한다고 본다. 아직도 전 세계 발명품의 상당수가 미국에서 나오고, 전 세계를 선도하는 아이티기업 창업자도 거의 미국인이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테슬라 등등…. 또한 창의적인 인간을 만드는 미국식 교육의 영향도 크다. 이곳 아이들의 초등학교 시절을 보면 공부보다는 뭘 만들고 놀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각종 운동이나 악기를 배우는데 더 치중을 하는 느낌이다. 고학년이 구구단 못 외우는 걸 창피하게 여기지도 않고, 성적이 낮아도 별로 기가 죽거나 하지 않는다. 다양한 인종만큼이나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까닭이다. 그에 비하면 어려 서부터 학원을 뺑뺑이 돌며 각종 공부에 시달리며, 자라는 우리나라 아이들은 창의성이 발현될 틈이 없어 보인다.
얼마 전 RV 딜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편이 찾던 유형의 모터 홈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구경삼아 덴톤까지 갔다. 견물생심이라고 막상 시운전도 해보고 여러 모델들을 보니 사고 싶은 마음이 확 생겼다. 처음엔 사이즈가 너무 큰 건 부담스럽고, 가장 기본 사이즈 것이 눈에 들어왔다. 식탁과 침대와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스토브와 냉장고, 작은 화장실, 있을 건 다 있었다. 잠시 이걸 타고 다니면서 미 전국을 여행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딜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막상 딜이 시작되고 보니 보험도 들어야 하고, 엑스트라 워런티 등 과외로 지출할 경비가 꽤 되었다. 게다가 아직 남편이 은퇴 전이니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 끌고 다니자고 비싼 차 한 대 값을 투자한다는 게 좀 아깝단 생각이 슬슬 들었다. 또한 가끔 아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고도 싶은데, 너무 여유 공간이 없는 게 눈에 띄는 흠으로 다가왔다. 그러면서 앞집처럼 이왕이면 큰 걸 선호하는 이곳 사람들의 심리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우리는 한 시간쯤을 딜러와 실랑이를 하고 고민하다, 다시 한번 더 생각을 해보기로 결론을 내렸다. 딜러는 다 될 뻔한 계약이 성사되지 않자 아쉬운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집으로 오면서 예전에 친구가 했던 말을 위로 삼았다.
‘RV는 살 때 기쁘지만 팔 때가 더더욱 기쁘단다’… 잘 사용하지 않고 마당 한구석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으면 애물단지가 되어 결국은 제대로 사용해 보지도 않고 파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우리의 결정에 만족해하며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하고 큰돈을 아낀 것처럼 대단히 흐뭇해했다. 결국 이번에도 새로운 경험과 도전정신은 기약 없는 먼 훗날로 미루어지고 말았다. 동사가 아닌 명사를 선택한 것 같아 아쉽기도 했다. 류시화 시인의 책 제목이 문득 생각난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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