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박인애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 ‘소담 한꼬집’ ]특별한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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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미주한국문인협회의 문학캠프는 팜스프링에서 열렸다.
가본 적이 있는 도시여서 이름만 들어도 그곳 풍경이 떠올랐다. 달라스에서는 볼 수 없는 산과 산허리에 걸쳐 있던 신비한 구름, 새벽안개 속에서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서 있던 윈드밀(Windmill)이 마치 한 폭의 풍경화 같았다.
바람개비 같은 윈드밀을 처음 보았을 때 얼마나 신기하던지 하이웨이를 달리는 내내 눈을 떼지 못했다. 풍력발전기가 무리 지어 서 있는 자체가 명화였다. 캘리포니아의 3대 풍력 발전소 중 하나가 팜스프링이다. 어떻게 바람을 돌려 전기에너지 만들 생각을 했을까. 인간은 참으로 위대한 것 같다.
언젠가부터 캠프 참석차 엘에이에 가는 게 나를 위한 공식 나들이가 되었다. 코비드로 발이 묶였던 삼 년을 제외하곤 매년 갔었다. 한국에서 온 강사의 강의 몇 시간 듣는다고 갑자기 글을 잘 쓰게 되거나 나의 문학 세계에 큰 지각변동이 오는 것은 아니다.
유명 강사의 명강의 듣는 게 목적이라면 유튜브를 검색해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곳에 가는 이유는 소통과 교류라고 일축할 수 있다.
모처럼 컴퓨터와 부엌에서 벗어나 작가라는 이름으로만 살아도 되는 그 며칠이 내게는 단비 같았다. 강사를 만나는 일도 좋지만, 미 전역에서 오는 문인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 덕에 가까이 지내는 문우도 많아졌다. 문학이라는 공통분모로 벗이 된 사람들이어서 나이나 연차는 중요치 않았다.
문학 이야기만으로 밤을 새울 수 있는 사람들을 1년에 한 번 만나는 게 아쉽긴 하나, 페이스북으로 소식을 전하고, 출간이나 수상 등의 문학적 성과를 축하하기도 하고, 서로 도전받기도 하니 딱히 멀리 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힘과 긍정의 에너지를 공급해주니 힘들어도 가게 되는 것 같다.
올해도 문학 기행을 갔다. 전에는 캠프만 끝나면 돌아오곤 했는데, 딸이 대학에 간 후 시간적 여유가 생기기도 했고 작년에는 임원이어서 등 떠밀리듯 가게 되었다.
여행은 캠프와는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캠프 때는 일정이 빡빡해서 이야기 나눌 시간이 별로 없지만, 여행을 가면 2박 3일간 함께 지내니 모든 게 여유로웠다.
어딜 가든 다른 사람과 한방을 쓰는 게 불편해서 돈이 들어도 독방을 쓰곤 했다.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캠프 갔을 땐 4인 1실을 썼고, 여행 갔을 땐 2인 1실을 썼는데 한방을 쓰니 룸메이트와 금방 친해져서 헤어질 때는 아쉬웠다. 욕실이 하나인 호텔 방에서 공동생활을 하니 신경 쓸 일이 많았다. 씻고, 화장실 가고, 먹고, 자고, 치우는 등의 일상을 함께 하며 상대를 배려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글은 잘 쓰는데 인성이나 품행이 바르지 않으면 이름과 글이 빛을 잃기도 한다는 깨달음도 얻었으니 큰 공부를 한 것 같다.
이번 나들이는 내게 많은 것을 선물해주었다. 팜스프링은 도심에서 벗어난 곳이라 공기가 맑았다.
그곳이 온천이란 걸 처음 알았다. 같은 방을 썼던 선배가 이른 아침에 온천물에 몸을 담그자 하여 따라갔었다. 낮에 아이들이 놀기에 야외 풀장인 줄 알았는데, 노상 온천이었다.
밖에는 이슬비는 내리는데 물속은 뜨거웠다. 뒤에서 강한 물줄기가 뭉친 어깨와 등을 두들겨주고 물에서 김까지 피어오르니 신선이라도 된 것 같았다. 늙은 선녀 둘이 내려와 목욕을 해서 그런가, 나무꾼이 옷을 안 훔쳐 갔다고 농담을 하며 한바탕 웃었다.
선배 덕분에 피곤이 풀렸다. 온천물이 얼마나 좋던지 피부는 부드러워졌고 긴 머리는 찰랑거렸다.
여행 코스가 샌프란시스코와 레드우드 쪽이어서 리무진 버스를 예약했는데, 좋은 분이 가이드를 잘 해주셔서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이 길었는데 그때 도움이 되었던 게 발 받침대였다. 미국 사람 체형에 맞는 의자다 보니 여자들은 발이 땅에 안 닿아서 앞 의자에 붙은 발걸이를 사용해야 했는데, 그 또한 멀어서 편치 않았다.
샌프란시스코로 떠나던 날 가이드가 원통을 반으로 잘라 놓은 모양의 발 받침대를 나눠주었다. 발이 제자리를 찾으니 허리가 얼마나 편하던지. 이구동성 “아! 편하다.”를 외쳤다.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누군가의 배려가 많은 사람을 편케 했을 것이다. 배려는 누군가를 이롭게 하는 아름다운 마음이다.
모든 여행지가 좋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청년의사 장인환 전명훈』의 저자 신재동 선배님을 만난 일이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난 역사 속에 두 의사가 존재했다는 걸 모른 채 살았을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선배님이 교수님 초대로 우리가 머무는 호텔에 책을 들고 오셨다. 로비에서 그 책을 쓰게 된 동기와 그가 다루었던 역사적 사건의 배경을 들었다.
사비를 들여 잊힐 뻔한 역사 속 인물을 조명하고 발품을 팔아 자료를 모으고 페리 빌딩에 가서 고증을 하고 기록하여 엮은 책을 나누는 선배님이 자랑스러웠다. 그분은 베스트셀러를 쓰고 싶었던 게 아니라 자기가 사는 도시에서 있었던 애국지사의 이야기를 남기겠다는 사명감으로 쓰셨을 것이다. 누군가는 꺼려 하나 누군가는 마땅히 기억해야 할 일을 기록하는 것도 작가가 할 수 있는 애국이 아닐까 생각한다.
6·25 전쟁수기집과 엘에이 폭동 책을 엮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던 이유는 그렇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느 땅에서든 그런 마음으로 쓴 책들이 귀히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쓴다는 것은 무겁지만 행복한 일이다.
박인애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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