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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최 부동산 재테크] 세계를 지배하는 유대인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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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모진 박해를 받으면서 각지를 유랑하던 유대인이 오늘날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으로 성장했다는 점은 단순한 호기심 이상으로 연구가치가 있다.
유대인은 기원 후 70년 제2차 예루살렘 성전 파괴 후 약 2000년간 전세계를 유랑하면서도 인류사 전반에 걸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지리상 발견, 공산주의 창안, 시장경제와 세계화, 그리고 인류의 운명을 바꾼 수많은 발명과 발견 뒤에는 유대인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이름을 떨쳤거나, 떨치고 있는 유대인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들 가운데 우선 생각나는 이들만 꼽아 보아도 다음과 같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프랑스의 천문학자이자 예언가 미셀 드 노스트라다무스, 국제금융의 시조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 공산주의의 창시자 칼 마르크스, 상대성원리를 내놓은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원자폭탄 개발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지휘했던 로버트 오펜하이머, 오늘날 세계금융을 지배하는 미국의 중앙은행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체제를 만든 파울 바르부르크, 헨리 키신저 전 미국무장관, ‘자선가’와 ‘악덕투기꾼’이라는 상반된 평판을 갖고 있는 금융투자자 조지 소로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등.
◈ 왜 유대인을 알아야 하나?
유대인 파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이들은 권력의 생리를 잘 알고 있다. 과거 이 나라 저 나라에서 눈칫밥을 먹으면서 터득한 지혜이다. 그래서 이들은 권력의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권력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보완적으로 도와주면서 이를 그들의 권력기반으로 삼고 장기적인 관리를 한다.
또한 유대인들은 수적으로 열세라는 약점을 잘 알고 있으므로 그들만이 특화할 수 있는 권력을 집중적으로 개발했다.
즉, Hard Power중에는 경제력과 금융, Soft Power중에는 문화예술, 그리고 20세기 이후부터 특수권력으로 성장한 언론 등을 3개 축으로 하여 그들의 권력기반을 확대했다.
국제 유대권력의 핵심은 역시 미국 유대인들이다. 19세기 중반 미국으로 건너온 30여만명의 독일계 유대인과 19세기말~20세기 초 미국에 정착한 250만명의 동유럽계 유대인이 미국 유대인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 한국인과 유대인의 공통점
첫째, 한국인과 유대인은 모두 평균적으로 머리가 좋고 영리하며 부지런하다.
둘째, 머리와 직결되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우리나 유대인 모두 광적인 교육열을 보인다. 20세기 초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가난한 유대인이나, 우리나 모두 교육이라면 만사를 제쳐 놓고 최우선순위를 부여했다.
셋째, 한국이나 유대인 모두 여성의 주도적인 역할이 매우 크다. 결혼 후에도 여자가 배우자의 성으로 바꾸지 않고 처녀 때의 성을 그대로 쓰는 민족은 한국인과 유대인밖에 없다.
또한 교육과 가정경제를 이끌어 나가는 주체가 여성인 점도 한국과 유대인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특히 유대인의 경우, 유대인의 정체성을 말할 때 유대인 어머니나 할머니가 기준이지, 부계(父系)는 비중이 작다. 가령 유대인 어머니와 비유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은 자동적으로 유대인이 되는 반면, 아버지만 유대인인 경우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조건부로 인정받는다.
반면에 한국인과 유대인 간에는 차이점도 적지 않다.
우선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첫째, 시간과 공간개념의 차이다. 아마도 신토불이의 영향인지는 모르지만 한국인은 유독 공간에 집착한다. 우리는 토지와 집에 유난히 애착을 느낀다.
반면, 유대인은 나라 없이 2000여년 간 세계를 떠돌다 보니 공간보다는 ‘시간’과 ‘기회’에 더욱 커다란 비중을 둔다. 유대인들에게는 국적이 큰 의미가 없다. 유대인 중 이중 삼중 국적자가 많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대신 시간과 기회를 활용하는 데는 유대인을 따라갈 수 없다. 유대인이 개발한 시간차를 이용한 금융소득이나 재테크, 그리고 미국정착을 그들의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분투하여 오늘날 커다란 성취를 이룬 것 모두 유대인들의 시간과 기회를 극대화한 좋은 예이다.
둘째, 교육에서도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교육에 대한 열정이라는 점에서만 공통점이 있을 뿐 교육의 진정한 목표와 교육의 질에 있어서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한국의 교육은 한마디로 경쟁, 전투형이다. 많은 인구 중에서 경쟁자를 물리치고 학교에 들어가고 직장에도 들어가야 한다. 그러므로 지식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보다는 각종 시험을 통과해서 승리하기 위한 기술을 터득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로 변질되어 왔다.
우리의 유교식 교육전통은 일방적인 지식의 주입에만 치우치고 지적호기심과 상상력을 허황한 것으로 규정해 왔다. 그렇다고 실용성을 중시한 것도 아니다. 이래서는 지식을 응용하여 실생활에 필요한 지혜를 만들기 어렵다.
유대인은 다르다. 유대인들은 우리와 같이 맹목적으로 지식을 주입시키는 것을 교육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선 지식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을 이해시킨다. 이 개념이 구체화되어야 새로운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력이 배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대인을 만나 무엇을 물어보면 이들 대부분은 즉답을 피하고 질문자에게 다른 각도에서 반문한다. 즉, 일문일답식이 아닌 토론이 양자 간 대화에도 적용된다. 이 토론은 교육방식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즉, 교수의 일방적인 주입식 강의를 지양하고 학생 간 토론, 학생과 교수 간 토론 등으로 다양한 사고와 접근방법을 유도하여 각자가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내게 한다. 바로 이 유대인의 창의력 교육이 인구에 비해 많은 노벨상 수상자와 국제적인 석학을 배출케 만든 원동력이다.
셋째, 유대인은 논리적이고 이지적인 데 반해 우리는 감성이 보다 앞선다는 점이다. 유럽으로 말하면 라틴계 민족이나 아일랜드인의 기질과 비슷하다.
한국인은 인정이 많은 반면 때로는 격정적이기도 하다. 즉, 우리에게는 ‘기분’이라는 것이 있다. 바로 이 기분과 신바람이 과거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형 역동성을 만들어냈다. 그래서인지 모르나 우리는 논리적인 것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누가 이론을 들먹이며 따지고 들면 편협한 사람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유대인은 사려 깊고 논리적이다. 논리적인 사람을 만나면 피곤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논리적인 사람일수록 정확한 판단을 하며, 따라서 ‘기분’에 근거한 오판, 낭비를 줄일 수 있다.
끝으로 미국의 유대인들은 대부분 변호사·대학교수·의사·기자·회계사·펀드매니저 등 주로 두뇌를 쓰는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본 즉 대답은 이랬다.
“유대인은 과거 유럽에서 십수 세기에 걸쳐 박해와 추방에 시달렸다. 그러다 보니 한 나라에 정착하면서 오랜 기반을 갖고 할 수 있는 농업 또는 대단위 생산업에 종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위급시 몸에 지니고 다른 나라로 이동하여 살아가려면 역시 머리에 넣고 갈 수 있는 전문지식밖에 없었다.”
상업용 투자 전문가
에드워드 최
문의 214-723-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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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칼럼은 부동산 산업과 재테크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으로 어떠한 법률적 조언(Legal Advice)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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