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매력적인 말솜씨
페이지 정보
본문
나는 수영을 끝내면 늘 수영장에 붙어 있는 사우나를 찾았다. 사우나에서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긴장되었던 근육이 풀리고 피곤도 풀리기 때문에 수영 후 꼭 들려야 하는 곳이다.
어느 겨울 한 시간의 수영을 마치고 사우나에 갔더니 보통 때는 복잡하던 곳에 다행히 한 여자만 앉아 땀을 빼고 있었다.
나도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땀을 빼고 있는데 갑자기 뿌웅 뿌웅 하며 큰 나팔 소리가 두 번이나 났다. 사우나에 앉았던 여자가 방귀를 크게 뀐 것이다.
웃음을 참고 앉아 있으면서 이럴 땐 미국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 익스큐즈미? 쏘리? 아니면 모른 척할 건가? 그냥 나갈까? 라고 생각하며 궁금해하고 있는데 여자가 큰 소리로 “Shame on me (부끄러운 줄 알아라 나여).”라고 한다.
자신에게 큰 소리로 야단을 친 것이다.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자신에게 꾸중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다니 “사과를 이렇게 매력적으로 할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의 노폐물이 쑥 빠진 기분이었다.
매력적인 말로 황당한 경우를 벗어나는 사람을 또 만난 적이 있다. 여러 사람이 모인 저녁 자리에서 남편이 소리 나는 방귀를 여러 번 뀌었다.
사람들 앞에서 무척 부끄러워야 할 듯한 부인이 근심하듯 말한다. “당신 배가 많이 아파?” “창피하게 왜 그래?”라거나 “어휴 주책이야”라고 핀잔을 주는 게 아니라 걱정하듯이 하는 “배가 많이 아파?”라는 말이 상황을 완전히 바꿔놓고 말았다.
남편의 건강을 걱정하는 아내. 진짜 어디가 아픈가 하는 사람들의 동정. 다음부터 그 부부가 더 다정하게 보였다.
주위를 보면 이렇게 말솜씨가 좋은 사람보다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는 말만 골라서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자기는 솔직하게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조금만 같이 있으면서 들으면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일수록 모든 면에서 비판적이고 나쁜 것만 잘 찾아내어 들춘다. 나는 아부할 줄 모르기 때문에 솔직히 충고한다고 하면서.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톤을 내리고 곱게 이야기해주면 받을 수도 있는 말도 이 사람이 말을 하면 꼭 “너나 잘하세요”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이런 사람들은 종종 “저 사람 입을 닫고 있으면 예쁜데 입만 열면 사람이 달리 보이네”라는 말을 듣는다.
이와 반대인 사람도 있다. 우리 동네 살던 ㅇ씨는 다른 집에서 음식을 먹을 때는 “아 맛있네요. 이거 사람의 솜씨가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칭찬하면서 맛있게 먹는다.
음식을 장만한 사람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같이 먹는 사람도 덩달아 맛있게 먹게 된다. 잘 보면 먹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한 그분의 말씀이 그렇다.
새 옷을 입고간 사람에게 “아 어쩌면 옷이 이렇게 잘 어울리지요? 모델이 너무 좋아서 옷이 덩달아 좋아 보이네요.”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저 사람 하는 말을 들으면 거짓말이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기분이 무척 좋아진다”라고 말한다.
식탁에서 저녁을 차리고 마누라가 묻는 말이 있다. “이 음식 괜찮아?” 옛날엔 “응 괜찮아.”라고 했는데 듣는 마누라는 항상 불만이다. 자기는 열심히 요리했는데 괜찮은 정도밖에 안 되느냐고. 괜찮냐고 물어 괜찮다고 대답했는데 뭐가 문제지? 하다가 ㅇ씨의 말솜씨를 흉내 내보기로 했다. “괜찮아?”하면 “응 괜찮은 정도가 아니야. 맛있어. 엄청 맛있네”라고. 요리한 사람의 수고가 덜어지는 순간이 된다.
계속 그러니까 마누라가 말한다. “당신에게 맛없는 것이 있어? 있으면 말해봐.” 나의 대답 “응 당신이 한 것은 다 맛있어. 당신은 음식의 천재인 것 같아.” “당신은 먹는데 천재이고?”“우린 천재 부부인가?“ 남이 들으면 닭살 돋을 말을 식사하면서 한다.
칭찬은 참으로 좋은 일인데 나는 왜 칭찬에 인색했던 것일까? 나의 칭찬이 아첨이나 사탕발림으로 오해받을까 봐? 쑥스러워서? 상대방에의 칭찬이 나를 낮춘다고 생각해서? 항상 상대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여 잘못된 것을 지적부터 먼저 하는 덜 익은 선생 기질 때문인가? 아니면 남보다 뛰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 그가 나보다 더 뛰어나다고 인정하는 것으로 생각될까 봐?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칭찬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칭찬을 포함한 매력적인 말솜씨의 근본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말솜씨가 별로인 나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모자라서 그런 것인지 모른다.
내가 할 수 없는 봉사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 좋은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 요즘은 이런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고 또 부럽고 칭찬해주고 싶다.
칭찬도 기술이라고 하는데 ㅇ씨 같이 칭찬할 기회를 놓치지 말고 열심히 연습도 하여 칭찬의 천재라는 말을 들어보면 좋겠다.
고대진 작가
◈ 제주 출신
◈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 에세이집 <순대와 생맥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