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플라스틱 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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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리의 코끼리들이 캘커타 주변 쓰레기 매립장 주변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다.
새로운 쓰레기들을 실은 트럭들이 줄을 지어 와서 쓰레기들을 버리고 갔기 때문이다. 코끼리들은 정확히 그 시간들을 알고 있다.
쓰레기들은 거대한 산을 이루고 있다. 절반은 비닐을 비롯한 폐기할 수 없는 플라스틱들이다.
파랗고, 하얀 브라운 색깔의 얇은 플라스틱 봉지들이 찢겨 여기저기 바람에 나부끼고, 악취가 진동을 한다.
썩은 과일과 고기, 야채 위를 날파리와 나비, 벌들, 이름을 알 수 없는 온갖 곤충들이 날아다닌다.
쓰레기를 주으러 온 아이들 발 밑에 쥐들이 돌아다니고, 하늘에는 썩은 냄새를 맡고 주위를 빙빙 도는 맹금류들과 이 모든 모습을 한 발 뒤에서 보고 있는 코요테들도 보인다.
코끼리들은 하나같이 체형이 이상하다. 쓰레기 매립장을 오래 다닌 코끼리들 일수록 한가지 이상 병증이 있다.
천식에 걸린 것처럼 숨을 내 쉬기가 힘들어 보이는 녀석부터, 밤새 토한 탓인지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코끼리도 있는데, 한 발자국 내 딛다가 다시 주저 앉고 한다.
발 밑에 뾰족한 톱날이 있는 것을 모르고 밟았다가 화농이 생겨 절룩거리며 돌아다니는 녀석도 있다.
그들은 점점 그들의 보금자리를 빼앗기고 있다. 개발이라는 명목아래 숲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불도저가 밀고간 길들을 따라 그들은 점점 도시로 흘러 들어 간다.
하지만 도시엔 그들이 설 자리가 없다. 서커스도 사라진지 오래다. 재밌는 게임에 빠진 아이들은 서커스를 보고 열광하지 않는다. 코끼리가 아무리 멋진 쇼를 해도 관심이 없다. 아무도 코끼리들에게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홈리스처럼 식사시간이 되면 쓰레기 매립장으로 온다.
어미 코끼리 코순이는 썩은 바나나가 쌓인 곳으로 걸어간다. 새끼 코끼리 3마리가 그 뒤를 따라간다. 산처럼 쌓인 바나나는 아마도 태평양 섬에서 유럽으로 가는 도중 기후 이상으로 상해버린 것들일 것이다.
코순이는 청명한 여름에 원숭이들이 떨어뜨려 주워 먹었던 바나나 맛을 기억하고 있다. 숲에는 욕심내지 않아도 늘 하루 종일 먹을 수 있는 일용할 양식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하지만 집을 잃어버린 지금 코순이와 아이들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
시티사람들이 먹다 버린 음식들은 대부분 너무 달거나, 너무 짜거나 기름기 투성인 것이 대부분이다. 도넛이나 케익, 튀긴 닭, 갖은 양념으로 버무린 고기들, 어제도 코순이 큰아들 코돌이는 그것들을 먹고 계속 설사를 했다. 코순이는 그래서 기미상궁처럼 먼저 먹어보고 아이들에게 먹어도 된다는 사인을 보낸다.
그러나 폭염과 굶주림에 정신이 나간 아이들은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아무것 에나 코를 대고 흡입을 한다.
겉이 까만 바나나는 흐물흐물하다. 그래도 다른 이물질이 없어 다행이다.
어떤 인간들은 음식물 쓰레기에 똥싼 기저귀나 휴지, 오래된 신발이나 플라스틱 장난감을 같이 묶어 버리기도 해서 우리의 위장을 위험하게 만든다.
오늘은 운이 좋은 편이다. 나와 아이들은 썩은 바나나로 포식을 했다. 가끔은 구더기도 보이지만 이정도면 훌룡한 편이다. 우리의 모습을 보던 다른 그룹 코끼리들도 우리 쪽으로 느릿느릿 걸어오고 있다. 바나나산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쉬파리가 쉴 새 없이 주변을 날아다니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는다. 갑자기 둘째 코식이가 코로 귀를 때리다가 주위를 빙빙 맴돌고 있다. 파리 한 마리가 귀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코식아, 코식아 가만히 있어, 파리는 저절로 죽던지 나오던지 할거야 코끼리들은 귀가 넓은 탓에 이물질이 귀로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힘들다.
막내 코자는 어제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으려 한다. 가끔 가다 배에 통증이 오는지 아 아 아 하고 소리를 내지를 뿐이다. 7톤이나 되는 몸무게를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먹어야 한다. 그래도 젊은 시절 코순이는 벌목장에서 무거운 재목을 나르는 일을 잘해서, 주인을 부자로 만들어주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
주인은 해가 지면 코순이를 강가로 데리고 나가 날마다 목욕을 시켜주었다. 코순이는 숲에서 일하고, 먹고, 잠자던 그 시절이 그립다.
두 달이 넘게 이어지는 폭염, 다큐에 나오는 쓰레기 매립장 코끼리들 영상을 보고 있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명목아래 지구는 점점 플라스틱 행성으로 변하고 있다.
곳곳에 쌓이는 수많은 플라스틱산, 머지않아 우리도 그 산에 갇히게 될 것이다. 남극의 얼음이 녹고, 땅들은 물에 잠기고, 산이 끊임없이 불타면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될까 ….
폭염은 시작일 뿐이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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