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삶이 아름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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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바람은 자지도 않고 부산을 떨더니 온 동네 낙엽이란 낙엽은 몽땅 쓸어왔나 보다.
우리 집 앞마당에 작은 섬을 둥그렇게 만들어 놓고 갔다. 간신히 낙엽을 쓸어 모으면 바람이 달려들어 흩날려 버리며 약을 올리던 지난 주일과는 다르게 비질하지 않고도 낙엽을 산뜻하게 치울 수 있어 신이 났다.
“날아 떨어지는 족족 그 뒷시중을 해야 한다.”고 비질하시며 구시렁거렸을 이효석 선생님이 생각나 그만 코웃음을 짓고 말았다.
하지만, 지난봄, 봄비 맞으며 젖은 연두 내음을 밀어 올리던 이파리들이 세월을 다하고 바람에 쓸려 마지막을 고하는 장면은 늘 쓸쓸하다.
2023년도 이제 보름 남았다. 매년 느껴왔지만, 올해는 유난히 빨리 지나간 것 같다.
전해오는 말 그대로 세월은 먹은 나이만큼 속도가 붙는 모양이다. 종일 달고 사는 영화나 드라마는 끊고 조용히 앉아 글 쓰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겠다던 연초의 생각과는 조금 먼 삶을 살았지만, 그렇다고 한 해를 헛되이 산 것은 아니다.
좋은 사람들과 많은 일을 함께했다. 1월부터 초대 손님들을 모시고 문학 행사를 잘 마무리했고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미주지역 여성통일리더쉽 세미나에 참석했다.
오랜만에 미주문협 여름캠프에도 다녀왔으며 친구들과 캔쿤으로 휴가도 다녀왔다.
틈틈이 속해있는 단체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등, 다른 어느 해보다도 열심히 살았다.
여러 봉사 단체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제대로 봉사하지 못해 늘 마음이 불편했었는데, 올해는 그 부분의 시간을 좀 더 할애할 수 있어 좋았다. 부족하나마 힘을 보탤 수 있어 좋았다.
맡은 일을 하면서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시간을 쪼개 다른 이들을 위해 일하고 마음을 보태는 것은 생각보다 행복했다.
어디에서든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돌아보면 준 것보다 얻은 것이 많았다. 봉사하는 동안 얻은 기쁨은 그 어떤 기쁨과 비교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인생에는 좋은 평판을 얻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다. 득과 실을 따지다 보면 마음을 다 내어줄 수가 없다. 봉사자의 마음이 울퉁불퉁하다면 지켜보는 마음들도 편편하지 않을 것이다.
좋은 일하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지내다 보니 내 마음도 조금 선해진 것 같다. 올해에는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났다. 아픈 기억보다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 기억의 창고가 화사해졌다.
올해는 내게 아주 특별한 해가 되었다. 나를 할머니로 만들어준 귀한 사람이 왔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고 보내오는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나를 기쁘게 해주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 내게도 생긴 것이다.
아이의 탄생은 비어만 가던 내 삶이 한꺼번에 채워지는 것만 같았다. 훈장을 받는다고 해서 이런 기분이 들까 싶다.
보고 있으면 눈을 뗄 수가 없다. 별스럽지 않은 나의 일상이 생기가 돌고 벙글거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아름다운 자연, 그 자체이다. 웃음도 울음도 아이가 지어내는 소리는 다 천상의 소리 같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이의 냄새 또한 꽃에 비할까 싶다. 아름다운 사람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아름다운 사람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하지만, 올 한해를 지나면서 다 행복하고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이유 없는 슬픔으로 소리 내 울었던 적도 많았다. 상처받고 아파서 식식거리며 아픔을 호소한 적도 있었다.
해결되지 않는 일들로 늦은 밤 혼자 앉아 안주도 없이 소주잔을 비운 적도 많았다.
오지 않는 것들을 기다리며 밤잠을 설친 적도 많았다. 그러면서 하나둘 내려놓는 법을 깨우치게 되었다.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릴 줄도 알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슬픔에 토를 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것에 상처받고 자책하지만, 나이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려고 노력이란 걸 한다. 그러나, 생각하고 마음먹은 대로 다 된다면 매해 쓰는 희망 노트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내 삶은 어제처럼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걷게 될 것이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깨지기도 하고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할 것이다. 비바람이 몰아쳐 진흙탕에 빠지기도 하고 홀딱 젖는 날도 분명 올 것이다. 그러다가 호되게 앓아눕기도 할 것이다.
이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에 겪게 될 일이니, 준비하고 예방할 뿐이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살다 보면 즐겁게 또 한 해를 살게 되지 않을까. 여전히 어제 했던 후회와 반성을 반복하며 때론 한숨도 탄성도 지르면서 어제보다는 내일이 좀 더 나으리라 믿으면서 살라보려고 한다.
가끔 생각지도 않았던 좋은 일이 생기면 전생 운운하며 곁에 있는 사람들과 소주잔도 부딪치며 좋은 기운을 나누면서 말이다.
아름다운 것을 알아보는 마음과 영혼이 나와 함께 한다면 내년에도 하루하루가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김미희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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