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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나를 위로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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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4-02-1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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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어떻게 저무는지도 모르고 동동거렸다. 평생을 올빼미처럼 살다 보니 아침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자명종 소리에 놀라 6시에 눈을 떴으니 정말 긴 하루였다. 

오늘은 7시부터 한인 문화센터에서 모여 샌드위치를 만들어 코펠 경찰국과 소방서에 감사 인사로 오찬 제공하는 날이었다. 

늦지 않으려고 조바심 내며 달려가면서도 일손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역시 동참하겠다고 약속하신 분들이 빠짐없이 참석해 주셔서 감사했다. 

테이블을 펴고 재료들을 정리하고 각자 자리를 잡고 섰다. 

내 평생 샌드위치를 만들어 본 건 이번이 두 번째이다. 물론 얼마 전에 있었던 달라스 경찰국과 소방서에 전했던 샌드위치가 첫 경험이었다. 

오늘도 계란 부치는 일이 내가 맡은 일이었다. 육십이 되었으면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본 경험이 없다 보니, 계란 부치는 일이 제일 쉬워 보였다. 그래서 불 앞에 섰던 것이 이젠 전문가가 다 된 것 같다.

 처음에는 불 조절을 잘못해 많이 태웠다. 계란 5개를 풀어 사각 프라이팬에 부쳐낸 계란은 도마 위에서 사 등분으로 나눠진다. 

한쪽에서는 빵에 마요네즈를 바르고 야채를 올리고 계란을 얹는다. 

그다음은 햄과 치즈를 올리고 래핑 페이퍼로 싸 용기에 담는다. 

이렇게 두 시간 반을 움직이니 150개의 샌드위치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쌓여 있는 일 앞에 서면 눈은 “이거 언제 다하나?” 하고 걱정하고, 손은 “걱정 마라! 걱정 마라!” 한다던 엄마 말씀이 생각났다. 엄마는 늘 일에 치여서 사는 나를 위로할 때마다 그 말씀을 하시며 등을 쓸어주셨었다. 부랴부랴 뒷정리하고 나는 일터로 달려가야 했다. 

오랜만에 타주로 이사 간 손님이 예약하고 찾아오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니 손님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그리 늦지 않아서 대행이었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작년보다 더 바쁜 삶을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조용히 살겠다던 생각과는 다른 한 해가 될 것 같아 벌써 숨이 찬다. 

그렇게 시작된 하루는 끝이 날 줄 모르고 늘어졌다. 한 템포를 놓치면 저녁까지 따라잡는 게 쉽지 않다. 빈틈없이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하는데 숨 한 번 잘못 쉬면 하루는 엉망이 되고 만다. 

오후에는 장학재단 창립 출범식에 참석하기 위해 가게 문을 일찍 닫았다. 

식전에 허기진 배는 채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일에 쫓기다 보니 점심도 먹은 둥 마는 둥 했다. 이상하게 요즘은 한 끼만 소홀해도 사지가 떨리기 일쑤다. 6시 도착해서 저녁 식사하며 친교를 나누고 행사는 7시에 시작되었다. 

어젯밤 잠도 설친 데다 새벽부터 일어나 허기지게 뛰어다니다가 배불리 먹었으니 조는 불상사가 생기는 건 아닐지 은근히 걱정되었다. 

내 코고는 소리에 내가 놀라는 형국이니 걱정이 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교회를 오랜만에 찾아와서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위로하심인지 좋은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세 시간 동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맑았다. 친구한테 걸려 온 전화를 받을 수 없어 교회에 와 있다고 문자 했더니 “드뎌 미쳤군!” 곧바로 돌직구가 날아왔다. 

식이 끝나면 가게로 돌아가 몇 시가 되었던 못다 한 일을 마무리해야 하루가 끝이 나는 게 내 일상이지만, 가끔 나도 모르는 방식으로 생각도 못 한 곳에서 친구 말대로 미칠 수 있다면 아직 살아볼 만한 인생이 아닌가 싶다. 

간신히 하루치의 일을 마무리하고 나니 12시가 넘었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집에 들어오니 엊그제 남편 장바구니에서 본 닭똥집이 프라이팬 위에서 맛나게 익고 있었다. “저걸 언제 하려고!” 구시렁대며 냉장고 깊숙이 밀어 넣었던 게 지글지글 매운 내를 풍기며 익고 있었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으니 늦은 시간이지만, 간단히 한잔하고 쉬라는 것이었다. 

가끔 나는 하루살이 같다고 생각한다. 오늘 하루만 살 것처럼 살아야 하루가 간다. 열심히 살지 않으면 마치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파닥거린다. 

새벽부터 달려와 같이 샌드위치를 만들어 코펠 경찰국과 소방서에 감사 인사를 전하고, 돌아가 종일 일하고 저녁 행사에 또 함께한 오 회장님 말씀이 생각났다. 

“이게 무슨 짓일까?” 피곤하고 지친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웃음은 화사했다. “왜 이러고 사는 걸까?” 그러면서 살아가는 의미를 찾고 동시에 위로를 받는 것이 아닐까 싶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의미 있는 일도 함께하면서 산다면 하루살이 인생이어도 괜찮지 않을까. 

앞으로 두 해는 꼼짝없이 봉사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잘 감당해 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맡은 것이라고 변명할지언정 내가 선택한 소명이다. 

맡은 임무들을 성실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깨지지 않는 넓고 튼튼한 스테인리스 대야가 되어야 한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즐기면서 하리라.

나는 언제부턴가 고민스럽고 복잡할 때는 소리 내 호탕하게 웃는 버릇이 생겼다. 

누가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아닌데 욕을 하면 어떨까 싶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좋은 게 좋은 것 아닌가 싶어서다. 

행복의 신은 머리가 나빠서 내가 웃는 웃음이 진짜이지 가짜인지 모른다고 한다. 그러니 일단 크게 한번 웃고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김미희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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