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큰언니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4-03-22 17:53

본문

다 저녁 때 작은언니가 큰언니를 데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한국에서 들어온 큰언니를 작은언니가 어스틴에서 올라와 다음날 작은언니네로 데리고 가면서 통화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주가 지난 모양이다. 

이민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 큰언니는 일 년에 한 번씩 형부와 번갈아 들어왔다가 간다. 

살던 집을 그대로 놔두고 갔기에 들어오면 남의 신세 지지 않고도 머물다 가니 신경 쓸 일이 별로 없다. 하지만, 큰언니는 운전할 줄 모르기 때문에 항상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때마다 가까이 있는 나보다 멀리 있는 작은언니가 달려와 살펴주곤 한다. 

큰언니와 작은언니는 두 살 터울이다. 둘은 어릴 때부터 단짝이었다. 큰언니는 나보다 열네 살이 많고 작은언니는 열두 살, 그러니까 나와 띠동갑이다. 나이 차이가 많은 것도 있지만, 바로 위에 오빠 셋이 있다 보니 나는 오빠들이랑 더 가깝게 지냈다. 

엄마가 계실 때만 해도 가끔 얼굴도 보고 엄마 통해 소식도 자주 들었는데, 엄마 가시고 난 후로는 언니들이 연락하지 않으면 거의 소식도 모르고 산다.  

큰언니는 스물두 살에 시집을 갔다. 내가 겨우 여덟 살 때 일이다. 그러니 큰언니랑은 별 추억도 없다. 어릴 때 내 기억 속에 큰언니는 아버지의 친구였다. 그리고 시집 가서는 엄마와 아버지의 슬픔이고 그리움이었다. 

먼 친척의 중매로 성사된 혼사였지만, 홀시어머니의 외아들에게 시집 보내 놓고 엄마 아버지는 늘 걱정이었다. 거기다가 그는 말로만 듣던 유복자였다. 

철부지였던 나도 느낄 수 있었으니 우리 부모님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시집가서 얼마 되지 않아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큰언니가 실려 왔다. 

복막염으로 쓰러져 다 죽게 되었을 때 병원으로 데리고 간 게 아니라 병든 딸을 시집보냈다는 원망과 함께 친정집으로 돌려보내 온 것이었다고 한다. 그 길로 우리 부모님은 큰언니를 입원시키고 생사를 오가는 큰언니를 기어코 살려냈다. 

엄마는 몇 달 동안 만사 다 제치고 큰언니 병시중에만 매달리다 집에 와서 보니 제대로 얻어 먹지도 못한 나는 군데군데 머리도 빠지고 말이 아니었다고 한다. 아마 그때 제대로 못 먹어서 지금까지 삐쩍 마른 게 아닌가 싶다. 퇴원한 큰언니는 한동안 우리 집에서 지내다가 시집으로 돌아갔다. 

다 커서 알게 된 일이지만, 큰언니는 결혼하고 바로 생긴 아이가 유산이 되었다고 한다. 그때 큰언니의 시어머니는 병원에 데리고 가서 깨끗하게 뒤처리를 해준 것이 아니라 무면허, 돌팔이한테 데리고 갔다고 한다. 그 뒤 큰언니는 시름시름 앓게 되었고 결국 큰 병을 얻어 입원하게 된 것이었다. 

시집으로 돌아간 큰언니는 온갖 시집살이를 했다. 전염병이라도 앓다 온 것처럼 식기도 따로 쓰게 했다는 것이었다. 

형부는 결혼할 당시 말단 공무원이었다. 위로 누나 한 분 계시는데 시집가셨고, 그는 유복자에 외아들이었으니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았다. 

오십여 년 전 시골에서 말단 공무원이 자가용을 몰고 다녔으면 알만하다. 키도 크고 정말 잘생겼었다. 

그때 당시 최고의 영화배우였던 신성일도 따라잡지 못할 만큼 미남이었다. 그 덕에 여자들도 많이 꼬였다고 한다. 

온갖 시집살이를 다 견디며 이혼하지 않고 산 것은 오직 동생들 때문이었다고 큰언니는 말했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물론 그때 당시 이혼은 집안에 큰 흠이 되겠지만, 아마 잘생긴 형부를 놔줄 수 없었던 게 제일 큰 이유였지 않았나 싶다. 

큰언니의 시집살이는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고 언젠가 엄마가 말씀하셨다. 

큰언니는 앉아 있는 꼴을 못 보는 시어머니 덕에 할 줄도 모르는 농사일을 머슴처럼 혼자서 도맡아 해야 했다. 

퇴근해서 돌아온 아들을 당신 방에서 재우는 날이 많았으며 둘이 같이 있는가 싶으면 문밖에서 서성이는 것은 예사였다고 한다. 

햇볕에 잘 익어 졸아드는 간장 된장도 큰언니가 친정집으로 퍼 날라서 줄어든다고 소문을 내 그 소문이 엄마 귀까지 들어왔다고 하니 보통 시집살이는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그렇게 시집살이하는 딸을 그리워하는 엄마는 큰언니가 보고 싶으면 동네 아줌마들을 부추겨 구럭을 메고 바다로 게 잡으러 갔다고 했다. 

새벽에 길을 나서 등성이 몇 개를 넘고 언덕에 오르면 멀리서 큰언니네가 보였다고 했다. 어쩌다 언니가 보이면 그렇게라도 보니까 좋아서 눈물을 훔치고, 못 보는 날은 보지 못해 아쉬워서 눈물을 훔치며 돌아섰다고 했다. 

얼마 후 조카가 태어나면서 큰언니는 분가했다. 형부가 출퇴근 하기 좀 먼 곳으로 영전되었기 때문이었다. 난 평생 큰언니나 형부한테서 용돈 한 번 받아본 적이 없다. 언니나 형부가 있는 친구들이 자랑할 때 나는 자랑할 일이 없었다. 특히 우리 집 앞에 살던 친구, 계화는 언니가 네 명이라서 형부도 넷이었다. 

생일이나 명절만 되면 자랑질이 하늘을 찔렀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였던 것 같다.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은 없지만, 용돈을 받을 목적으로 처음으로 큰언니네를 찾아간 적이 있다. 언니가 지어준 밥을 맛있게 먹고 난 후였다. 언니가 설거지하는 동안 형부가 사과를 깎았다. 

다 같이 먹으려고 깎는 거로 생각했던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깎아 논 사과를 나한테 먹으라는 말 한마디도 없이 형부 혼자서 다 먹어 치우는 것이었다. 

난 용돈은커녕 허한 가슴만 안고 집에 와 엄마 앞에서 펑펑 울고 말았다. 우는 나를 달래며 엄마가 그러셨다. 내가 미워서가 아니고 형부는 외동이어서 그런 거니까 너무 서운해 하지 말라고. 그런 형부는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였다. 

치매로 꼬박 일곱 해를 채우고 떠나신 당신의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차마 큰언니한테 시어머니 치매 수발은 들게 할 수 없었는지 손수 다했다고 했다. 

비록 그분은 치매였지만, 남편도 없이 아들 하나 낳아 키운 보람을 다 느끼고 가셨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 기억이 여전히 어제 일처럼 떠오르니 어쩌면 좋을까. 

한국에서 가져온 것과 작은언니가 가지고 온 것들을 꺼내 놓으며 흐뭇해하는 큰언니를 보는데 옛날 생각이 났다. 

정말 버릴 데 하나 없이 곱고 알뜰했던 우리 큰언니가 어느새 백발이 되었다. 

그 험한 시집살이 다 견디며 군소리 한마디 없이 형부가 싫어하는 것은 전혀 할 줄 모르던 큰언니. 여전히 큰언니는 언니 마음대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물어본 적은 없지만, 시집가서부터 쓰던 가계부도 여전히 쓸 것이고 형부가 골라주는 옷도 여전히 입을 것이다. 

어찌 됐든 삼 남매 잘 키워 손주들까지 놓고 어우렁더우렁 잘살고 있으니, 노후는 평안한 거 같아 좋다.

 

김미희

시인 / 수필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Hmart 이주용 차장안녕하세요!오늘의 주제는 ‘뉴질랜드 그린홍합’이라는 해산물입니다. 흔히 중화요리 짬뽕에 많이 들어가는 재료이기도 합니다. 뉴질랜드 그린홍합은 마트 수산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상품입니다만 그 효능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이 있어서 이 자…
    리빙 2024-03-30 
    테네시주(Tennessee)의 아침은 상쾌합니다. 때묻지 않은 싱싱한 환경도 그러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한국의 산천을 닮은 모습들이 스쳐가는 여행자의 시선을 확 끌어 잡습니다.어딜 가더라도 웅장하진 않지만 자연스런 곡선의 굽이 굽이 흐르는 맑은 계곡과 사철의 모습을 서로…
    여행 2024-03-30 
    테네시주의 주도인 내쉬빌(Nashville)의 하루는 24시간이 짧다고 느껴질 만큼 매우 분주한 도시입니다.밴더빌트 대학 옆 호텔바에서 밤새 울리던 이름 모를 음악의 향연이 잠시 쉼을 얻는가 했더니, 내쉬빌의 중심가인 브로드웨이 길 옆에 위치한 라이브 카페에서 다시 새…
    여행 2024-03-22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오늘은 최근들어 외국인들에게 각광받고 있는 음식. 김밥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서 김밥은 주로 한국인들에게만 인기있는 음식이었습니다.호불호가 거의 없고, 가격은 싸지만 고른 영양소를 담고 있어서 든든하게 한끼를 책임질…
    문학 2024-03-22 
    얼마전 신문을 읽었는데 내용은 미국 노통청에서 발표한 가장 위험한 직업 10가지에 관한 것이었다. 노동청의 통계자료에 의한 위험 순위별 직업을 보면1. Timber cutters, 2. Airplane pilots, 3. Construction laborers, 4. …
    리빙 2024-03-22 
    앞으로 7개월 후면 미국 대통령 선거일이다.민주당에서는 현역 대통령인 바이든이 공화당에서는 전임 대통령인 트럼프가 비공식적으로는 확정됐다.공식적으로는 양당 모두 7-8월에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를 확정하지만 민주/공화 양당 모두 두 사람이 외에는 경쟁자가 없어…
    회계 2024-03-22 
    다 저녁 때 작은언니가 큰언니를 데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한국에서 들어온 큰언니를 작은언니가 어스틴에서 올라와 다음날 작은언니네로 데리고 가면서 통화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주가 지난 모양이다.이민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 큰언니는 일 년에 한 …
    문학 2024-03-22 
    너무나 한국적인 곳, 한국이 그리울 때면 찾아가서 머무는 곳, 이곳에 잠시 머무를 때면 잠시 한국의 강원도에 왔나 하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나에게는 정겹고 흥미로운 곳이 있습니다.달라스에서 6시간 정도 북쪽으로 운전하면 찾아갈 수 있는 곳인데, 알칸소주의 오자크(Oza…
    문학 2024-03-15 
    안녕하세요! 오늘은 일상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닭고기’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닭고기는 담백한 맛과 부드러운 육질이 특징입니다. 다른 육류와 달리 근육속에 지방이 섞여있지 않아 맛이 담백하고 소화흡수가 잘되므로 위가 약한 사람들에게 특…
    문학 2024-03-15 
    대부분의 중년들에게 은퇴는 두려움이다. 가능한 오랫동안 은퇴하지 않고 일하기를 원한다. 일이 인생의 활력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돈이 원인이다. 일하지 않고 먹고 살 경제적 여력이 없어서다. 나이가 들어서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아름답지만 신체적으로 힘든데…
    부동산 2024-03-15 
    Apple TV+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파친코’ 시즌1에서 주인공 선자는 어머니와 함께 자기 하숙집에 손님으로 왔던 전도사 이삭의 목숨을 구하게 된다.유부남인 줄 모르고 사랑해서 한수의 아이를 임신해 미혼모가 될 처지에 놓인 선자의 사연을 우연히 듣게 된 이삭은 그녀에…
    문학 2024-03-15 
    파월 연준의장은 금리 인하를 시작하는데 필요한 경제적 상황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지난주 상원 은행위원회의 질문에 “인플레이션이 2% 수준에서 지속 가능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이 더욱 커지길 기다리고 있다”며, “그 확신은 멀지 않으며, 우리가 확신을 갖…
    회계 2024-03-15 
    결과가 말해주는 명문대 입시 전문 버클리 아카데미 원장www.Berkeley2Academy.com문의 : b2agateway@gmail.com대학들의 레귤러 어드미션 결과 발표일들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이미 레귤러 어드미션 결과를 통보하고 있는 대학들도 있지만 대체로…
    교육 2024-03-15 
    샌프란시스코의 아침, 오늘은 분주했던 여행을 마무리하고 달라스로 돌아가는 날입니다.그렇지만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추억들을 정리하며 너무나 분주했던 이곳의 여행 속에 여유로운 마음이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같이 인지하고 있는 차분한 샌프란시스코인들의 여유를 느…
    문학 2024-03-08 
    안녕하세요!오늘은 우리에게도 익숙하지만 이제는 세계 곳곳에 널리 알려진 음식인 ‘스시’에 관련된 내용으로 내용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우리가 잘알고 있는 일본의 음식은 몇가지가 있을까요?스시, 우동, 덮밥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중에 단연 ‘스시’가 일본을 대표…
    문학 2024-03-08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