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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환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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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TN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4-04-06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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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조석으로 바뀌는 날씨처럼 입맛도, 기분도 수시로 바뀌는 이즈음이다. 새벽에 천둥번개 소리를 들었는데, 아침이 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해가 활짝 나오고, 거기에 속아 반팔을 입고 외출을 하면 난데없는 한냉기류가 올해도 봄꽃을 너무 일찍 심었나 하는 후회가 밀려들게 한다. 

겨우내 살찐 야생토끼가 채마 밭에 들어와서 철조망을 빠져나가지 못해 허둥대고, 우리집이 흥부집인줄 아는지 해마다 와서 집을 짓고 식구를 불려가던 제비들 역시, 작년에 왔던 각설이처럼 올해도 변함없이 다시 돌아와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며칠 사이 뒷마당 배나무의 개화와 낙화를 보며, 문득 꽃잎이 사라져버린 수많은 가지의 환상통을 느낀다. 사고나 질환으로 신체의 일 부분을 잃은 환자들이 아직도 그 부위에 통증을 느끼는 것처럼,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아픔을 느낀다.  봄이 와도 움이 트지 않은 나무와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사람들, 시간들이 무수히 쌓여가고, 그것들은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풍경소리처럼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찾아온다.

나이가 들면서 생긴 변화 중 하나는 어떤 변화든지 변화를 별로 안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부엌에 있는 양념통이든, 신발장에 들어있는 신발이든 위치를 바꾸면 불안하다. 젊은 시절엔 집안의 가구며, 액자를 계절마다 위치를   바꾸어 같이 사는 남편을 힘들게 했는데, 지금은 정원에 있는 장미 한 그루라도 위치를 바꾸는 게 썩 내키지 않는다. 

그런데 얼마전 늘 타고 다니던 차를 바꿀 일이 생겨버렸다. 스탑사인에서 정차를 하고 우회전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뒤에 있던  차가 느닷없이 차 후미를 박아버린 것이다. 비도 추적추적 오는 오후에 심란하기 그지없었는데, 다행히도 뒤차 운전자가 자신의 잘못을 쉽게 인정해서 사고수습은 잘 되었다. 하지만 내차는 워 낙이 마일리지(20만 마일)가 높은 차여서, 바디 샵에서는 폐차를 권유했다. 수리비가 차 가격보다 더 높게 나온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고민을 하던 끝에 난 새 차를 사게 되었다.

그런데 차사고의 후유증인지 그 뒤론 운전을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새 차를 타고 여기저기를 신나게 달릴텐데, 가뜩이나 복잡해진 교통사정도 그렇고, 모든 것이 디지털 시스템인 새 차는 좀 낯설었다. 예전 차는 내게 편한 신발처럼 어딜 가든지 자유로웠는데, 이 새 차는 새 신발처럼 좋기는 한데, 왠지  편하지가 않은 것이다. 좁은 곳에 파킹을 하면 옆 차에 긁힐까 염려스럽고, 긴 발톱을 가진 애견을 맘대로 태울 수도 없는데다, 냄새가 진동하는 음식이나 생선을 싣는 것도 좀 꺼려졌다. 한마디로 편하게 청바지만 입고 다니다, 드레스를 입고 외출을 하는 기분이 드는데, 김치국물이라도 묻을까 조심스러운 게 불편한 것이다.

요즘 주변을 보면 이렇게 크고 작은 변화를 맞이한 친구나 지인들이 꽤 많이 있다. 은퇴를 하고 역이민을 준비 중인 지인도 있고, 오랫동안 운영했던 사업체를 정리하고 본격적인 은퇴자의 삶을 새로 준비하는 친구도 있다. 멀리 타주에 있는 친구도 이런 케이스이다. 오랫동안 장사를 했던 친구는 가게를 팔고, 이민 와서 처음으로 부부가 함께 미대륙을  횡단할 계획에 몹시 설레이는 눈치였다.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은퇴를 한 셈인데, 나는 친구에게 여행 중에 텍사스를 꼭 들리라고 하였다.  

참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는 것처럼, 변하지 않는 것도 없다.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오듯이 인생은 환절기의 연속이다. 환절기에 관한 시 한 편을 읽으며 이시기를 잘 건넜으면 하는 바램이다.


환절기를 보내고 나면 또 다른 환절기가 찾아왔다.

사랑 뒤에 사랑이, 이별 뒤에 이별이, 환절기에서 환절기로 가는 어디쯤 에서 삶은 마지막 꽃잎을 떨구려는 건지, 죽음너머 또 다른 죽음이 기다린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죽음은 늘 다른 누구의 것이어서, 나는 내내 아파하기만 했을 뿐. 환절기와 환절기사이, 좁고 어두운 바닥에 뿌리를 감추고 찰나에 지나지 않을 한 번뿐인 생을 영원처럼 누리려는 참이었다.

또 하나의 환절기가 지척에 다다르고 있었다.

                                                                                               

-박완호시인의 <간절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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