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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뉴욕에 사랑 있다!”

Last updated: 10월 22, 2019 11: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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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
시인 / 수필가

“사람도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 하거늘”로 시작되는 미 동부 한인 문인협회 황미광 회장의 환영사는 30년을 지켜온 문협역사를 자랑하고도 남았습니다. 한 마디로 개성 강한 작가들로 구성된 군단을 30년 동안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겸손과 사랑이었습니다.
“30주년에 임해 회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것을 일복이라고 생각했다. 풀타임 오버타임 직장을 가진 것처럼 뛰어왔지만, 뒤돌아보니 이미 전임 회장들과 회원들이 가꿔놓은 꽃밭 위에 뿌린 씨앗이었다. 가장 소중하게 남은 것은 회장이라는 자리가 한 분 한 분 회원들과 좀 더 가까이서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섯 분의 발기인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는 모습 또한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습니다. 80여 명의 등단작가로 뭉친 가난한 단체가 30년 동안 자생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랑이라는 근본이념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할 수 있었고 다 함께 더욱 큰 그림을 그리며 한글 문학의 세계화를 향해 큰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습니다.

김언종 교수님의 ‘3천년을 이어온 사랑의 공식’, 김종회 교수님의 ‘문학에서 첫사랑을 만나다’라는 사랑을 테마로 두 분과 함께 하는 문학기행은 쓸쓸한 가을을 넘기느라 부실해진 몸과 마음을 홀리기에 충분했습니다.
김언종 교수님의 강연에 의하면 시경 305편 가운데 3분의 2의 주제가 사랑이라고 합니다.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된 가장 큰 이유도 “원수를 사랑하라” 때문이라지요.
이렇듯 사랑은 인류의 영원한 로망이며 문학이 추구하는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만고불변의 진리이지요.
‘요조숙녀(窈窕淑女) 군자호구(君子好逑)” 즉, ‘정숙한 아가씨는 군자의 좋은 짝이라네’로 이어지는 시경의 첫 작품 관저(關雎)에서부터 사랑이라고 부르기에는 미묘한 사랑, 그러나 팍팍한 삶에서 순수하게 붙잡아야만 했던 사랑, 황순원의 소나기에 이르기까지 3천년을 내려온 사랑, 그 사랑이 플러싱을 지나 메사추세츠로 향하는 버스 속에서 다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패티 킴의 가을노래가 흐르고 멋진 하늘, 조금은 음울해서 더 멋진 하늘이 있고 노랗고 붉게 덧칠해진 질감 농후한 유화가 차창 가득합니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신의 선물, 저 귀한 한 폭의 유화를 어찌 꽃에 비하겠습니까.
아름다우면서도 겸손한 풍경, 신기루, 그 속을 달려 버스는 음울한 보스턴 미국의 흑역사, 마녀의 사냥이 시작되었다는 셀럼으로 달려갑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주홍글씨’로 잘 알려진 ‘너대니얼 호손’의 ‘일곱 박공의 집’이었습니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악덕 재판관이었던 조상이 지은 죄로 인해 3대에 걸쳐 저주를 받고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에 사랑이 더해졌습니다. 호손이 평생 부끄러워하고 죄스러워했던 마녀재판관 고조부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기 위한 바람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유명한 사람들 옆에는 그들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호손은 편모슬하에서 고독하게 자라 주변머리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그에게 인생을 바꿔준 세 친구가 있었다지요.
첫 번째 친구는 굉장한 부호의 아들, 호레이쇼 부리지. 그는 무명인 호손에게 일찌감치 ‘작가’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조건 없이 출판비를 부담하는 등 아낌 없는 지원으로 그가 문단에 나올 길을 열어 주었답니다.
두 번째 친구는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아주 잘 정돈된 시어로 한 시대를 휩쓸었던 대서사시 ‘에반젤린’으로 유명한 롱펠로입니다. 그는 호손의 책을 소개해 친구가 이름을 얻는 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세 번째 친구는 14대 대통령이 된 프랭클린 피어스입니다. 호손은 일찍이 두각을 나타낼 만한 재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조건 없는 우정과 사랑이 미국이 자랑하는 아메리칸 르네상스 시대에 청교도 문학의 새로운 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또한, 끝없이 영감을 불어넣어 준 사촌 수잔이 있어 ‘일곱 박공의 집’이 명작으로 우리 곁에 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삶의 흔적을 보고 그 무대 곁을 지나가면서 다시 듣는 그들의 이야기는 이타적 사랑이 증발해버린 이 시대에 아름다운 우정의 결실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속 사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문학의 길을 간다”로 시작된 김종회 교수님의 강연은 가슴 속에 오래오래 남을 것만 같습니다. 문학은 속에 있는 속 사람과 대화라고 합니다.
금 간 항아리가 지나간 자리를 돌아보니 이름 모를 풀꽃이 아름답게 피어났다는 항아리 우화처럼 문학은 모자라고 손해 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억울한 가슴 속을 삭이는 것이라는 말에 가슴이 아려 눈물이 났습니다. 속에 있는 것은 언제나 나타나는 법이지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흐르고 흘러 배어나옵니다.

30주년 행사에 부친 축시 중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낙타도 없이 걷고 또 걸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도시, 문화의 수도 뉴욕에서의 문학의 길이 세계 최고의 사막이었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길을 잃을까 두려울 때마다 별을 보았고 별을 세던 손가락 끝은 이미 굳은 살이 박혔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이언트 세쿼이아 나무처럼 계속 자랄 것을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문학은 어땠을까 돌아봅니다. 문학은 나에게 낙타였습니다. 끝도 보이지 않는 사막을 함께 건너준 낙타였습니다. 별이었습니다. 혼자 가는 인생길에 북극성이었습니다. 그나마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한 모질고 아린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혼자서도 묵묵히 갈 수 있도록 무소의 뿔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별이 되는 것들 / 김미희

별을 만나러 가는 길은
여럿이어도 쓸쓸하다

훤히 보이다가도 자꾸 숨는 길은
남의 땅에 뿌리를 내린 내 마음 때문일까

담 넘어 그 앵두
여전히 붉은 빛으로
더 깊어진 그 우물 속에 들어있는데

파란 바람 스친 가슴은
모두 별이 되어서인지 몰라

별을 만나러 가는 길은
여럿일수록 더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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