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 달라스의 땡볕은 유명하다. 여름이면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도 낯설지 않다. 햇볕에 달궈진 자동차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운전대를 잡기 전 한동안 에어컨부터 켜는 일도 이곳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여름 풍경이다.
그런데 요즘은 같은 온도라도 몸이 받아들이는 열기가 예전과 다르다. 기온계에 찍힌 숫자는 익숙한데 체감은 낯설다. 햇빛의 습기, 달아오른 바람이 한꺼번에 달라붙는다. 불과 물과 쇠가 한 몸이 된 듯한 세상에 없는 조합으로밖에는 설명되지 않는 더위다. 며칠 전, 오후3시 미팅에 참석차 오랜만에 낮에 나갔다가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 열기를 빼려고 차창을 내렸다가 올리는데 올라가지가 않는 것이었다. 차창 몰딩이 떨어져 창문에 달라붙어버린 것이었다. 달라스인이 된지 38년차인데 이런 일은 처음이다. 친구 손까지 빌려 간신히 창문을 올리고 미팅에 참석은 했지만, 전에 없던 경험으로 인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면 거대한 드라이어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다. 햇빛은 비추는 것이 아니라 내리꽂히고, 공기는 흐르는 것이 아니라 몸을 에워싼다. 나무들은 잎사귀 한 장 흔들 힘도 없이 서 있고, 새소리마저 그늘 속으로 숨어버린다. 밤이 와도 대지는 좀처럼 식지 않는다. 낮의 열기가 벽과 지붕과 아스팔트에 남아 어둠 속에서도 숨을 내쉰다.
자연의 시계가 고장 났다.
봄은 미처 꽃을 피우기도 전에 물러나고, 여름은 제 시간을 넘어 오래 머문다. 비는 와야 할 때 오지 않다가 한꺼번에 쏟아지고, 겨울은 갑자기 얼어붙었다가 제 계절을 잊은 듯 풀려버린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 놓여 있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연일 보도되는 자연재해는 이제 어느 한 지역만의 불행이 아니다. 한쪽에서는 산불이 숲과 마을을 삼키고, 다른 쪽에서는 폭우가 도시를 물속에 가둔다. 가뭄으로 갈라진 땅이 있는가 하면, 거대한 태풍과 홍수에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들도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재해가 며칠 뒤 식량 가격과 경제, 이주와 질병의 문제로 우리 삶에 돌아온다.
지구 전체가 하나의 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늦게 깨닫고 있다. 어느 대륙의 숲이 타면 그 연기가 국경을 넘고, 어느 바다의 수온이 오르면 멀리 떨어진 육지의 날씨가 달라진다. 지구의 한쪽이 앓으면 다른 쪽도 오래지 않아 열이 난다.
우리는 오랫동안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겼다. 더 빨리 가기 위해 길을 냈고,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숲을 밀어냈다. 편리함을 얻기 위해 끝없이 태우고 만들고 버렸다. 자연은 말없이 견뎠지만, 침묵이 곧 허락은 아니었다. 지금의 폭염은 지구가 보내는 항의서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자연에 남긴 상처가 더위와 산불, 홍수와 가뭄이라는 이름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더위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고통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냉방이 잘되는 실내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폭염은 불편함이지만, 지붕 위와 공사장, 도로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에어컨이 충분하지 않은 집에서 지내는 노인과 아이들, 거리에서 밤을 보내는 이들에게 뜨거운 하루는 견뎌야 할 재난이다. 햇볕은 공평하게 내리 쬐지만, 고통은 공평하게 나누어지지 않는다. 폭염은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곳부터 찾아내는 잔인한 온도계다.
그래서 이런 날일수록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물어야 한다. 혼자 사는 어르신은 괜찮은지. 야외에서 일하는 이에게 쉴 그늘과 마실 물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차 안에 아이나 반려동물이 남이 있지는 않은지 한 번 더 돌아보아야 한다. 기후 위기에 대한 책임은 거대한 구호보다 내 곁의 한 사람을 더위 속에 홀로 두지 않는 일에서 시작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한 사람이 일회용품 하나 덜 쓰고, 에어컨 온도를 조금 조절하며,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고 내일 당장 지구가 식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방향은 언제나 작고 사소한 선택들이 모여 결정된다. 우리가 만들어낸 편리함의 속도를 조금 늦출 때, 자연의 시계도 다시 제 박자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세탁기 속의 물은 때를 씻어내기 위해 세차게 돈다. 어쩌면 이 뜨거운 여름도 우리 영혼에 달라붙은 오만과 무관심을 씻어내는 긴 세탁 과정인지 모른다. 나만 시원하면 된다는 이기심, 지구가 언제까지나 견뎌줄 것이라는 착각, 다음 세대의 몫까지 미리 당겨쓰는 욕심을 깨끗이 빨아내라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더워도 너무 덥다. 이제는 “여름이니까”라는 말로 넘길 수 없다. 우리가 자연의 시곗바늘을 함부로 돌려놓았다면,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도 우리의 몫이다. 오늘도 에어컨 바람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창밖의 나무를 바라본다. 잎사귀들이 힘겹게 흔들린다. 그 작은 움직임이 마치 우리에게 건네는 부탁처럼 보인다.
조금 덜 아프게 해달라고. 더위 속의 생명을 혼자 두지 말라고. 다음 세대에게 다시 바람다운 바람과, 여름다운 여름을 돌려달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