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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수필] 바람이 불게 하는 방법

Last updated: 1월 19, 2024 5: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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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많아 지쳐 있었다. 

좋아하던 운동과 친구 모임도 망설일 만큼 심신이 피곤했지만, 캠핑 약속은 몇 달 전에 잡은 것이라 미룰 수 없었다. 전날까지 바빠 자정이 넘어서야 주섬주섬 캠핑 도구를 챙기게 되었다.

차 뒷자리 좌석을 접고 차 모양에 맞춰 제작한 널빤지를 깔아 차박을 준비했다. 침낭과 전기담요를 싣고 무거운 배터리도 간신히 들어 차에 실었다. 생수 몇 병을 냉동 칸에 넣어 얼리고 가져갈 식재료도 챙겼다.

하룻밤 자는 데도 필요한 물건이 제법 많았다. 차에 푹신한 매트를 깔고 담요와 베개까지 싣고 보니 얼추 두 시가 되어갔다. 그런데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니… 나는 도대체 이걸 얼마나 좋아하는가. 

지방 도로를 벗어나자 곧 울창한 숲이 시작되었다. 

키 큰 소나무 무리가 하늘을 가리며 서 있었다. 삼나무, 떡갈나무, 단풍나무들이 어우러진 숲속엔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자랄 수 있는 만큼 마음껏 가지를 뻗은 나무를 보는 것이 즐거웠다.

뿌리가 집터까지 침범하고 가지가 지붕을 덮는다고 튼실한 가지를 몇 해마다 잘라대는 주택가의 그만그만한 나무와는 확연히 달랐다. 숲에 들어갈 때 상쾌함을 느끼는 것은 그 땅의 나무가 자유롭기 때문이리라.

밤에 비가 온다는 예보를 들은 터라 친구들과 나는 서둘러 친구의 텐트를 치고 쌀을 씻어 밥을 안쳤다. 피크닉 테이블과 텐트 주변에 여러 개의 전등을 걸었다. 구름이 잔뜩 끼어 햇빛이 없는 날인 데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금방 어두워질 터였다.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판초를 꺼내입고 머리까지 후드를 덮어썼다. 몇 번의 캠핑을 함께 해 익숙해진 우리는 신속히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우중 캠핑이라 고생할지 모른다고 생각했고 폭우라도 쏟아지면 접시를 들고 차로 뛰어가자고도 했지만, 나는 낙엽이 향기로운 숲속, 비 내리는 밤에 일어날 모든 일을 내심 기대하였다

예상대로 날은 빠르게 어두워졌지만, 이슬비는 점차 잦아들었다.

장작에 드디어 불이 붙었다. 습기를 머금은 나무가 연기만 자욱하게 내놓으며 버티더니 끈기 있게 들이미는 차콜의 불꽃을 허리에 휘감기 시작했다. 바람에 자꾸 뒤집어지는 쿠킹포일을 집게로 누르고 쇠고기 몇 덩이를 그릴 위에 올렸다. 가까운 곳에 다른 캠퍼들이 있었지만, 사위는 고요했다.

고기가 표면부터 자글거리며 익어갔다. 질 좋은 스피커로 듣는 것처럼 기름 튀는 소리가 섬세하고 분명히 들렸다. 밤이 깊을수록 별빛만 또렷해지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고기 익는 고소한 냄새가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캠핑 음식에는 마법이라도 걸리는지 피크닉 테이블 위에 차린 음식은 모두 맛깔스럽다. 방금 구워낸 고기는 그렇다 쳐도 상추와 오이조차 더 향기롭게 제 식감을 뽐낸다.

김치가 맛이 없어 싸갈 때 걱정했는데, 모두 맛있다고 해서 먹어보니 잘 발효된 감칠맛으로 변해 있었다. 간단하게 차린 식탁으로도 기억에 남을만한 고량진미(膏粱珍味)를 맛보는 것은 캠퍼들이 누리는 즐거움 중 하나일 것이다.

저녁을 먹은 후엔 화톳불에 둘러앉았다. 포일로 감싼 고구마를 던져넣고 불꽃을 바라보았다. 화려한 불꽃의 리드미컬한 움직임과 장작 타는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는데 문득 밤에 우는 새소리가 들렸다.

습기를 머금은 남실바람 한 줌이 불꽃 조명을 받는 나의 뺨을 쓸고 지나갔다.

나는 무엇인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사방은 고요하고 밤이 깊어 갔지만, 오감은 예민하게 열리고 있었다.

숲에서 자유를 느끼고 불을 피울 때 사색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안 깊숙이 자리한 원시 조상의 DNA는 원시시대부터 농경시대까지 머물던 자연을 아직도 몹시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 아닐는지.

예보대로 밤에는 비가 쏟아졌다. 요란하게 차 루프를 두드리며 내리는 빗소리를 잠결에 들었던 것 같지만, 정작 잠을 깨운 것은 차 안에 가득 찬 습기였다.

차창에 온통 김이 서려 창 너머 초록 숲이 수채화 물감처럼 유리창에 달라붙어 있었다. 비 개인 아침에 호수를 따라 산책을 나섰다. 욕심껏 크게 숨을 들이켜며 산소를 마셔 두었다.

일상으로 돌아갈 채비를 해야 했다.

집에 가면 실바람조차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잠을 자겠지. 깨끗한 욕실에서 수도꼭지만 돌리면 나오는 뜨거운 물로 씻고 자동차에 올라 일터에 갈 것이다.

일을 마친 후 몇 걸음 걸으면 기다리는 자동차에 다시 오르고 집으로 돌아와 스마트 기기를 들여다보며 잠을 청할 것이다. 그리고 호숫가의 오늘을 그리워하며 다시 숲으로 돌아가는 꿈을 꿀 것이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자연 속으로 뛰어 들어가 내 안에 산소를 주입하는 것. 자연의 생생한 바람이 마음에 불게 하여 원초적 오감을 깨우고 원시 상태의 조상과 조우하는 것. 그리고 그 길 끝에 서 있는 나를 만나는 것.

나에겐 그것이 캠핑이다.

 

백경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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