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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 베이커 헬퍼 장씨

Last updated: 5월 10, 2019 5: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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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도넛궁전’ 주방 안은 절절 끓는 기름과 후앙소리로 매캐한 냄새와 소음이 그득했다. 토요일 오전 5시이면 가게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두 번 째 반죽을 밀 시간이었다. 미세스 김은 아기엉덩이처럼 보드라운 반죽을 밀대로 밀며 아까부터 주차장쪽으로 촉각을 계속 곤두세우고 있었다. 헬퍼 장씨가 아직 안온 것이다. 보통 때 같으면 늦는다고 전화라도 한 통 주었을텐데 전화도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십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서 도넛가게를 운영하는 미세스 김은 주말 매상을 혼자 감당할 수가 없어 주말엔 헬퍼가 필요했다. 그런데 최근에 오년이 넘게 헬퍼를 해주었던 멕시칸 호세가 그만 두는 바람에, 갑자기 오게 된 헬퍼가 장씨였다. 생각해보면 이 것 또한 트럼프 때문이었다. 아직 영주권이 나오지 않은 호세는 작년부터 부쩍 불체자 단속을 염려하더니 급기야 지난달부터 일을 그만 두어 버렸다.

이십대 인 호세에 비해 베이커 장씨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뭐든지 굼뜨고 실수가 잦았다. 얼핏 보기에도 그 나이에 베이커도 아닌 헬퍼 일을 전전 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지만, 어쨌든 아쉬운 쪽은 미세스 김이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장씨는 여러 가지가 특이했다. 화장실엘 한 번 들어가면 함흥차사이고 뜨거운 물을 만지지 못했다. 열불이 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처음 잡 인터뷰 하러 올 때부터 어딜 가든지 와이프를 데리고 다녔는데, 그것도 알고 보니 본인이 운전을 못해서 그런 것이었다. 장씨는 일단 구르는 바퀴만 보면 멀미가 난다는 것이다. 내막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미국에서 다 큰 성인이 운전을 못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희귀한 일이었다. 게다가 눈치 빠른 헬퍼들 같으면 늦어도 2주면 파악할 부엌일들을 장씨는 아직도 헤매고 있었다. 한창 쵸코렛을 묻혀할 시간에 설거지를 하거나, 도넛을 튀기다 말고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기 예사이고, 소세지반죽 레시피를 아무리 가르쳐주어도  늘 정확하게 믹스를 하지 못했다. 멕시코에서 고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호세도 일주 일만에 다 파악한 일을 한국의 명문대를 졸업했다는 장씨는 노상 헤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허구 헌 날 자다가 샤워도 안하고 나오는지 부스스한 머리에 옷도 꼬질꼬질 한 것이 영락없는 백수 포스 였다.

그런 장씨가 잘 하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뉴스에 나오는 각국의 정치에 관한 시사 분석 같은 것이었다. 장씨는 유학온 캐시어 미란이가 부엌으로 들어와 필링 도넛에 레몬이나 크림 등을 넣으면서 한국 뉴스를 한 마디만 꺼내기만 하면 그때부터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글레이즈 기계에서 글레이즈가 국수기계에서 국수 나오듯이 쏟아지고 있는데, 손을 빨릴 놀릴 궁리는 안 하고 자신이 마치 국회의원이나 되는 듯이 열을 내는 것이다.
한번은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미란이가
“어휴, 장씨 아저씨는 국회로 가실 분이 도넛가게로 오셨네요.” 하자, 장씨는 그렇지 않아도 친척 중에 국회의원이 한 명 있어 보좌관직 요청이 왔지만, 그쪽 세계를 잘 알기에 딱 잘라거절 했다고 한다. 또한 무슨 이야기 끝에 돈도 벌어볼 만큼 벌어봐서 자신의 마지막 남은 꿈은 오직 하나 있는 딸을 아이비리그에 입학시키는 것뿐이라고 했다. 장씨는 딸이 아이비리그에 입학 하는 날 자신도 딸을 따라 동부로 이주를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날 장씨는 일곱시가 다 되어 나타났다. 오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경찰이 데려다 주었다는 것이다. 장씨는 갑작스런 사고로 놀랐는지 얼굴이 벌개져서 계속 와이프 운전솜씨를 탓했다.
“마누라가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가게에 늦겠다며 옐로우 라이트인데 좌회전을 하는 거에요. 죽을라고 환장을 했지….그 순간 신호가 바뀌면서 건너편에 있던 차량이 그냥 직진을 해서 우리 차 옆구리를 쳤어요! 틴에이져 둘이 타고 있었는데, 글쎄 이녀석들이 지네 부모한테 전화한다더니 그냥 사라져 버렸어요. 차량 번호도 기억 못하는데….. 아이구, 미국 와서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는지……”
미세스 김은 장씨에게 내일은 일을 하지 말고 좀 쉬라고 일렀다.

다음날, 캐시어 미란은 소세지롤을 오븐에 넣다 말고, 놀라운 얘기를 했다.
“아줌마, 그거 알아요, 장씨 아저씨 독일의 유명한 대학에서 철학 박사 공부 하신 분이래요.  우리 학교 선배 하나가 알더라고요… 글쎄 지도교수를 잘못 만나 계속 학위를 못 받고 그냥 귀국해버렸나 봐요, 그러다 미국으로 왔대요. 본인도 그러잖아요, 당신아버지가 식사를 하다가도 장씨 아저씨 얼굴을 보면 숟가락을 밥상에 쾅하고 내려놓는다고요. 며칠 후, 장씨는 교통사고의 후유증인지 다리를 약간 절면서 나타나 당분간 쉬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가게 구석에 있는 한국방송 티브이에선 장씨의 유학동기라는 유명한 시사 저널리스트가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중장년 실업문제에 대해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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