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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나를 기다리는 밥상

Last updated: 11월 22, 2024 3: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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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여섯 시가 조금 지난 시간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같은 벨 소리인데 이 시간에 울리는 벨 소리는 항상 특별하게 느껴진다. 종일 울리는 그 소리와는 달리 이 벨 소리에는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의 마음이 담겨있다. “엄마, 오늘은 퇴근이 언제예요?” 아들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오면 내 마음은 이미 집으로 향하고 있다. 그래서 퇴근 시간 한 시간 전쯤에 울리는 소리는 놓쳐서는 안 된다. 뭔가 내가 많이 잘못하고 있다는 죄책감도 일게 하지만, 동시에 설레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또한 “오늘 저녁은 뭘까?” 맛있는 상상을 하며 나는 가끔 놀라기까지 한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우리 작은아이가 나에게 또 다른 엄마가 되어 주었다. 그것도 딸도 아닌 아들이 대학 졸업하고 집에 오면서부터 나의 보호자가 된 것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저녁때가 되면 전화를 걸어 퇴근 시간을 묻는다. 아이는 나의 퇴근 시간에 맞춰 따뜻한 저녁상을 차려 놓기 위해 시간을 묻는 것이다. 가끔 생각보다 일이 일찍 끝나 집에 가면 예전에 엄마가 내게 했던 것처럼 미안한 얼굴을 하고 샤워장으로 나를 밀어 넣으며 씻고 나오라고 한다. 주방에서 설거지라도 도우려면 오히려 귀찮다고 그냥 앉아서 쉬라며 귀여운 통박을 준다. 엄마가 살아 돌아오신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해 나는 자주 놀란다. 엄마가 내게 했던 그 모습 그 마음이 아이한테 고스란히 전해진 모양이다.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아이한테 그 짐을 넘겨준 것 같아 안쓰럽다. 얼마나 부족하고 안쓰럽게 보였으면 우리 아이는 엄마인 나를 챙기는 것이 사명으로 알고 있는 것일까.

적당히 하다 그만두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일곱 해를 넘기고 있다. 아이는 우리의 저녁만큼은 책임지고 해결해 준다고 맹세를 한 사람 같다. 살다 보면 하기 싫은 날도 꾀부리고 싶은 날도 있으련만, 단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한 적이 없다. 저녁을 먹고 나서도 설거지 마무리까지 한다. 그리고 “뭐 줄까?” 하고 묻고는 후식 거리를 챙긴다. 살아 계실 때 엄마가 내게 하셨던 그대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주말만큼은 아이를 부엌에서 떠나게 해주고 싶어 외식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후회할 때가 많다. 셋이 똑같은 음식을 먹고 돌아와서 나만 유독 화장실로 직행한다. 별 특별한 것을 먹는 것도 아닌데 한데 밥을 먹으면 장에 트러블이 바로 생긴다. 정말 이상한 현상이다. 밥하고 김치만 먹어도 나는 집밥을 선호한다. 그중에도 아이가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 

얼마 전부터 나의 취미는 일일연속극 보는 것이 되었다. 출근하기가 무섭게 컴퓨터를 열어 드라마 다시 보기를 누른다. 오늘부터 다시 시작된 드라마에 하필 아침 댓바람부터 삼겹살로 회식하는 장면이 나온 것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씩씩하게 아이를 키우며 일해서 남편 유학 뒷바라지하는 기러기 마누라다. 고생 끝에 남편이 해외 석사 학위를 받아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는 팔짝팔짝 뛰며 온 세상을 가진 듯 기뻐한다. 그 모습을 본 현장 동료들은 한턱내라고 야단법석이다. “오! 좋아요. 가요, 가!” 허름한 대폿집에 모여 앉아 “먼지 뒤집어쓴 날은 삼겹살이 최고야!”하며 지글거리는 삼겹살을 뒤집으며 소주잔을 툭 털어 넣고 밝게 웃는 주인공의 모습에 나는 아침부터 남편 몰래 군침을 삼켰다. 하지만, 어느 결에 알아차렸는지 남편은 전화벨이 울리기 전에 아이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응, 오늘은 삼겹살 먹자.” “뭐, 삼겹살?” 나는 목청 높여 물었다. “응~ 오늘 저녁은 삼겹살에 마가리타야.” 

아들과 남편은 메뉴를 정하고 장 볼거리를 상의하고 있다. 난 오래전부터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가끔 나는 우리 아이의 막내딸이 된 것도 같고 내 남편이 애지중지 아끼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외동딸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왜 이렇게 된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뭘 해 먹을지 끼니를 뭐로 때울지 사는 내내 걱정을 해본 적이 없으니 나는 거저 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난 밥을 참 좋아한다. 막 뜸이 든 밥을 주걱으로 푹 떠서 입안 가득 넣고 나면 밥처럼 맛있는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밥상을 생각하면 마음이 급하다. 아이가 상을 차려 놓고 기다리게 하면 안 될 것 같아 가급적 시간 맞춰 가려고 노력한다. 일이 일찍 끝나도 아이가 미안해할까 봐 기다렸다가 약속 시간에 맞춰 들어갈 때도 많다. 오늘은 알람을 걸어놓고 일을 했다. 하지만, 알람 소리가 울리기 전에 하던 일을 접고 집에 오니 상차림을 마치고 아이는 뒷정리하고 있었다. 막 뜸이 든 밥 냄새와 삼겹살 냄새가 집안 가득하다. 쌈장에 상추, 파무침 그리고 된장찌개에 텃밭에서 딴 고추까지. 거기에 아이가 직접 만든 수제 마가리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12첩 반상이 부럽지 않다. 아이의 싱글벙글한 얼굴까지 더하니 환상의 만찬이 따로 없다. 이런 소소한 일상이 좋다. 

  밥의 효능을 우리 아이는 잘 알고 있다. 따뜻한 밥 한 그릇이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안다. 종일 종종거린 엄마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걸 아는 것이다. 전화할 때마다 늘 묻는 아이의 안부는 “엄마, 밥 먹었어?”이다. 따뜻한 아이의 목소리는 이미 나를 배부르게 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사랑받는 엄마가 된 것 같다. 세상에 부러운 것 하나 없는 엄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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