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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그 전화, 영사관이 아닙니다” 달라스 한인사회를 노리는 피싱과 스캠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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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달라스에 거주하는 한 한인 동포에게 ‘Public Service’라고 발신자가 뜬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추후 확인해보니 전화번호는 972-701-0180, 바로 대한민국 총영사관 주달라스 출장소 번호였던 것이었다.
다행히도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같은 수법으로 수많은 한인들이 이미 피해를 보고 있다(관련기사 본보 7월 11일 보도). 발신번호를 조작해 공공기관으로 위장하고, 개인 정보나 돈을 빼내려는 사기 전화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 사실은 최근 한국 언론들이 보도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감금 사건과 직결된다. 한국 청년들이 고수익 해외 취업 광고를 믿고 캄보디아로 건너갔다가, 현지 조선족이 운영하는 범죄 조직에 의해 감금·폭행당하며 보이스피싱 범죄에 동원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보도에 따르면, 구조된 피해자 중 한 명은 “월 1,000만 원 이상 보장”이라는 말에 현지로 갔으나, 도착하자마자 여권을 압수당하고, 하루 종일 ‘공무원 사칭 전화’를 걸도록 강요받았다. 일을 거부하면 전기충격기 고문이 가해졌고, 탈출을 시도하면 구타당했다. 한국 외교부와 경찰이 개입해 일부 피해자가 구출되었지만, 여전히 현지에는 수백 명의 한국인들이 갇혀 있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완벽한 거짓말’
오늘날의 스캠은 단순한 ‘가짜 전화’가 아니다. 범죄자들은 AI 기반 음성 합성 기술을 활용해 실제 사람의 목소리처럼 전화를 걸고, 심지어 가족의 이름과 상황을 정확히 언급한다. “딸이 사고를 당했다”, “남편이 구속됐다”는 식의 협박 전화는 피해자에게 공포를 심어주고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또 다른 유형은 이메일 해킹이다. 거래처의 계정을 해킹해 위조 송금계좌를 전달하고, 몇 분 만에 수만 달러를 송금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른바 ‘비즈니스 이메일 사기(BEC)’는 실제로 달라스 지역 한인 중소기업에서도 피해가 보고되었다.
왜 지금, 사기가 폭증하고 있을까
이런 범죄가 특히 늘어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 모든 생활이 온라인화되면서 범죄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많아졌다. 예전에는 직접 만나거나 우편으로 접근해야 했지만, 지금은 이메일, 문자, SNS 등으로 동시에 수천 명에게 접근할 수 있다. 둘째, 경제 불안이 커진 것도 이유다. 경기 둔화와 물가 상승 속에서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다. 짧은 기간 안에 큰 수익을 약속하는 가짜 투자 제안은 특히 은퇴자나 이민 초기 세대에게 취약하다.
셋째, AI 기술과 데이터 거래가 사기범의 무기로 변했다. 실제로 일부 주정부와 기업이 판매한 개인정보 데이터가 유출되면서, 범죄자들은 피해자의 이름, 주소, 차량 정보까지 알고 전화를 건다. “지원님, 지난주 등록하신 차량 관련 안내입니다” 같은 문장으로 시작되는 전화는 철저히 계산된 접근이다. 피해자는 자신이 고객 목록에 포함돼 있다는 점 때문에 자연스럽게 신뢰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법과 기술의 속도 차이도 문제다. 피싱 사이트는 하루 만에 만들어지고 하루 만에 사라진다. 범인은 해외 서버를 거쳐 흔적을 감추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움직일 때쯤이면 이미 피해자는 돈을 잃은 뒤다. 결국 지금의 구조에서는 예방만이 유일한 방어 수단이 된다.
달라스 한인사회, ‘나는 안 속아’라는 방심이 가장 위험하다
피싱과 스캠의 공통점은 ‘심리 조작’이다. 사기범들은 피해자의 두려움, 욕심, 신뢰를 교묘히 자극한다.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당신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다”는 협박형 전화부터, “영사관에서 서류 문제가 발생했다”는 행정형 전화까지 다양하다. 많은 피해자들이 “나는 절대 안 속을 줄 알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기범들은 바로 그 자신감을 노린다.
달라스 한인사회에서도 이러한 피해는 더 이상 예외적 사건이 아니다. KTN 보도에 따르면, 최근 몇 달 사이 이메일 해킹, 경찰 사칭 전화, 가짜 쇼핑몰 등으로 수만 달러의 피해가 발생했다. 범죄자들은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쓰며, 때로는 실제 영사관 번호를 표시해 신뢰를 얻는다. 이때 “전화번호가 맞으니까 진짜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사기는 시작된다.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
첫째, 공공기관이나 금융기관은 절대 전화로 개인정보나 계좌 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 영사관, 세무서, 경찰청을 사칭한 전화는 무조건 끊고, 해당 기관 공식 번호로 직접 문의해야 한다.
둘째, 모르는 링크나 첨부파일은 절대 클릭하지 않는다. 특히 Zelle, Venmo 등 송금 앱을 이용한 결제 요청은 반드시 상대방의 신원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
셋째, 이중 인증(2FA) 을 설정해 이메일과 금융계좌를 보호한다.
넷째, 신용카드 명세서와 은행 거래내역을 주기적으로 확인해, 작은 이상 징후라도 즉시 신고한다.
다섯째, 피해가 의심되면 즉시 관계 기관에 신고한다.
KTN 기사에서도 강조했듯이, 범죄자들은 대부분 신고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활개를 친다. “다른 사람도 이미 신고했겠지”라는 생각이 사기범에게 면죄부를 준다.
“그 전화는 당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신을 알지는 못한다.”
이 한 문장은 오늘날 스캠의 본질을 정확히 보여준다.
범죄자는 당신의 이름, 주소, 주민번호를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당신의 판단력까지는 훔칠 수 없다.
한 통의 전화, 한 줄의 문자 앞에서 ‘혹시나’ 의심하고, ‘한 번 더 확인하는 습관’이야말로 우리가 스스로 지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어다.
달라스 한인사회가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을 때다. 영사관을 사칭한 목소리가 들려오더라도, “그 전화는 영사관이 아닙니다”라는 한마디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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