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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박인애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 물길 위에 멈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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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조회 26회 작성일 25-07-19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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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애 (시인, 수필가)
박인애 (시인, 수필가)


지난 독립기념일, 텍사스 중부 힐 컨트리 지역에 국지성 폭우가 쏟아졌다. 5일 새벽 과달루페강(Guadalupe River) 수위가 45분 만에 26피트가량 상승하면서 강물이 범람하여 큰 홍수로 이어졌다. 이번 재해로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커 카운티(Kerr County)는 복구가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폭우가 내려 홍수주의보가 발령되었다. 관계 당국은 실종자 수색 작업을 중단시키고 작업자들을 대피시켰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국지성 집중호우, 국지성 집중 폭우, 기습폭우, 게릴라성 폭우, 물 폭탄과 같은 용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최근 들어 미국, 한국, 대만 등지에 기습적으로 퍼붓는 비 피해 소식을 실시간 뉴스로 접하며 생각이 많아졌다. AI가 발달하고 세상이 빠르게 변했어도,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은 여전히 작고 무력한 존재일 뿐이다. 


  이번 재난의 희생자 중에는 어린 학생이 많아 충격이 더 컸다. 보도에 따르면 ‘캠프 미스틱(Camp Mystic)’이라는 기독교 어린이 캠프에 참가했던 750명의 여학생 중에서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모두 구조되었기를 바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희생자는 늘어갔고 생존 소식을 기다리던 가족들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어디선가 구조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잘 버텨주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비는 그치겠지만, 자식 잃은 부모의 눈물은 평생 그치지 않을 테니 그 또한 마음 아프다.


  한국에 사는 지인들이 뉴스를 보았는지, 텍사스에 큰 홍수가 났다던데, 너희는 괜찮냐며 안부 묻는 카톡이 빗발쳤다. 미국 내 다른 주에 사는 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병원에 누워 사경을 헤맬 때보다 더 많은 연락이 온 것 같다. 텍사스라고 하니 내가 생각났던 모양이다. 33년째 텍사스에 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지인들에게 어느 도시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엘에이에 산불이 날 때마다 엘에이 사는 지인들에게 괜찮으냐고 물었던 나와 다를 바 없었다. 솔직히 오래 산 나도 텍사스에 도시가 얼마나 많은지 다 알지 모르는 데, 하물며 그들이 내가 댄톤 카운티에 사는지, 커 카운티에 사는지 어찌 알겠는가. 텍사스면 그냥 텍사스인 것이다. 자기 살기도 바쁜 데 기억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지구온난화 탓인지 국지성 집중호우, 국지성 집중 폭우, 기습폭우, 게릴라성 폭우, 물 폭탄 등 일부 지역에 갑작스레 퍼붓는 큰비에 관한 기상 용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근간 미국, 한국, 대만에 발생했던 비 피해 소식을 실시간 뉴스로 보았다. 집과 차를 순식간에 휩쓸어 가는 거대한 물의 힘이 너무 무섭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직장 앞 도로에 물이 차서 삽시간에 내 차가 반쯤 잠겼던 적이 있다. 한 시간만 일찍 집에 보내주었다면 괜찮았을 텐데, 돈에 눈이 먼 사장이 허리케인 경고를 무시하고 퇴근 시간까지 직원들을 붙잡아 두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 출렁이는 물결이 차체에 철썩철썩 부딪힐 때마다 식은땀이 흐르고 오금이 저렸다. 거리에 사람은 없고, 하늘은 새카매지고 수압 때문에 차 문을 열 수도 없었다. 본네트에서 하얀 연기가 올라오는데, 이제 여기 갇혀 죽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시동이 꺼지지 않아 시속 10마일로 살살 움직여 간신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날 느꼈던 죽음의 공포는 오래도록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러니 삽시간에 8미터 높이로 치솟은 수마와 맞닥뜨린 사람들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상상만으로도 숨이 차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사전에 대처하지 못한 이유와 변명은 허공을 떠돌고, 생각 없이 뱉은 공직자의 말은 원성을 샀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대응으로는 희생자들을 끝내 돌려놓지 못했다. 뒤늦은 재난지역 선포에 감사해야 하는 건지, ‘국지성’이라는 말로 덮을 수 있는 문제인지, 그날의 물길을 피할 방법은 정말 없었는지 조용히, 더 깊이 되묻게 된다. 


  늘 안전불감증이 문제다. 삽시간에 삶의 터전을 잃거나 가족을 잃는 순간이 다가오기 전까지 대부분의 사람은 내일이 오늘처럼 평범하게 이어질 거라 믿는다. 하지만 삶은 잔잔함 뒤에 무서운 파도를 감춘 너울처럼 예고 없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자연은 인간의 예측 너머에 있다. 


  그날 뉴스의 헤드라인이었던 힐 컨트리 지역 참사는 이제 점점 방송 빈도가 줄고 있다. 세인의 기억은 다음 이슈로 넘어가고, 뉴스는 또 다른 곳으로 초점을 돌린다. 희생자와 피해자들에게는 그날 이후, 시간이 멈췄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뻔한 답 같지만, 서로를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작은 징후에 귀 기울이고, 이 슬픔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할지를 성찰하며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거 아닐지 생각해 본다.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야만 예고 없는 비에도 무너지지 않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비는 또 올 것이다. 우리는 그 비 앞에 조금 더 단단해져 있어야 한다. 비가 그친 자리엔 다시 햇살이 들겠지만, 그 아래 남겨진 마음들은 오래도록 젖어 있을 것이므로 그 마음을 잊지 말고 살피는 것 또한 살아 있는 사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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