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역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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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십년만에 아틀란타 옷수선 가게를 접고 수원에 정착했어요, 무엇보다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고, 말 때문에 긴장 안 해도 되니 살 것 같네요.
-부럽네요, 저는 아이들이 어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역이민은 이왕 하려면 빨리 하는 게 나은 것 같아요, 70 넘어서 오면 여기서도 요양원 신세에요
-서울은 전세라도 너무 비싸던데, 경기도 쪽은 어떤 가요, 한달에 얼마면 살 수 있나요?
이 역이민 카톡방은 오픈 한지 한 달도 안 돼 회원수가 5000명이 넘었다. 이 유튜버는 1.5세 이민자인데 최근의 한국 실정을 중계 한다면서 직접 한국에 가서 몇 달을 살다 오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미국의 사회보장 시스템이나, 물가, 주거환경, 의료혜택등을 비교하고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를 일일이 파 헤쳐서 역이민을 꿈꾸는 이민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요즘은 은퇴를 앞두었거나, 이미 은퇴를 한 시니어들은 물론 트럼프의 반 이민 정책으로 자의반 타의반 역이민을 고려하는 한인들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실질적인 동기는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다르지만, 시니어들 경우는 은퇴를 하면, 일단 한국으로 나가 거소증을 만들고 이중국적을 취득하려는 분들이 많다. 아프고 병들면 한국 의료시스템이 미국보다 낫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평생을 살았어도 언어에서 자유롭지가 않고, 게다가 운전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면 꼼짝 없이 요양원이나 집에 갇히기 때문이다. 또한 외로움은 덤이고, 아무리 오래 살아도 이방인이라는 의식은 항시 존재한다. 지금은 돌아가신 친정어머니도 미국에서 삼십 년을 사시다, 한국으로 다시 가셨는데, 마음이 편해 지셔서 그런지, 가자마자 고혈압 같은 지병이 사라져서, 모두들 놀랐다. 난 그런 어머니를 보며, 이민자들 DNA 속엔 늘 긴장이 도사리고 있는게 아닐 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유야 어찌 되었건, 우리들 마음 한구석엔 연어처럼 자신이 떠나왔던 곳으로 펄떡 회귀하려는 귀소본능이 있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역이민 성공사례가 있는 만큼 실패사례도 많은 것 같다. 연고지가 없는 곳으로 가서 텃세에 질려 돌아오거나, 비싼 시니어 공동체에 입주했다가, 한국 상류층 노인들 자식 자랑, 과거자랑에 질려 적응하지 못하고 퇴소 하거나, 막상 살러 가니 방문할 때와는 또 다른 친지, 친구들 태도, 늘 주변을 의식하고 살아야 되는 불편한 점등이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슬로우 라이프와는 거리가 먼 한국적인 상황도 한 몫을 한다. 우린 2년에 한 번 꼴로 한국을 나가는데, 갈 때마다 모든 게 너무 빨리 변해 있어, 놀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모든 것이 디지탈화 되어 있는데다, 이젠 인공지능 까지 가세해서 느림보 미국생활에 젖어있던 우리로선 여간 적응이 쉽지 않은 것이다.
역이민을 영어로는 리턴 마이그레이션( Return migration) 이라고 한다. 다시 이민을 간다는 뜻이다. 아무리 내 조국이지만, 다시 이민을 가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이민 와서 내린 삶의 뿌리를 하루아침에 포기하고, 돌아가는 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하지만, 각자 지니고 있는 가치관나 행복한 삶의 기준에 따라 못 할 것도 없다. ‘지브롤터 항해일지’를 쓴 작가 프란시스 알리스의 말마따나 어차피 인류의 역사는 이민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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