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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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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4-03-0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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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입양한 강아지 이름을 정하려고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꼬리치는 강아지를 보니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아 너는 이제부터 초롱이다. 초롱아! 부르니 꼬리치며 다가온다. 그 뒤 초롱이 친구로 입양한 강아지는 조그만 녀석이 오자마자 큰 초롱이와 밥그릇 싸움하더니 커다란 언니를 압도하려 해서, 야 너는 쌈순이다, 쌈순아! 하고 부르다 쌈순(Ssamsoon)이 발음을 어려워하는 이곳 사람들을 위해 별명을 ‘쌔씨(Sassy)’로 붙였다. 

 적당한 이름을 찾아내는 일은 기분이 좋은 일이다. 고교시절 지역에서 최초로 여학생들과 혼성 동아리를 만들면서 이름을 지을 때 ‘고목(古木)’을 추천했더니 아니 뭔 늙은이 클럽도 아닌데…라며 주저하는 멤버들이 많았다. “지란지교(芝蘭之交)란 말은 지초와 난초의 향기로운 사귐을 뜻하는데 이 지초와 난초가 깊은 숲 ‘고목(古木)’의 둥치에 자란다. 우리가 이 동아리에서 지초와 난초처럼 맑고 고결한 사귐을 가져야 하지 않겠냐”고 설득하여 ‘고목’이란 이름을 가진 동아리를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대학생 시절 만든 동아리 이름은 ‘목하(木下)’였다. 말 그대로 ‘나무 아래’였는데 연세대 창립자인 언더우드(Underwood)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동아리에서 유신 반대의 토론을 주최하여 당시 지도교수인 김동길 교수님과 학생 몇 명이 기관에 잡혀 가서 크게 곤욕을 치렀다. 그 기관에서 이런 모임을 만든 저의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김동길 교수님이 “이름을 보아라. 나무 아래서 쉬면서 놀자는 모임이 아니겠냐” 라고 대답했다고 해서 웃은 적이 있다. 물론 동아리는 해체당하고 학생들과 지도교수는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나무 아래서 치열한 이념 논쟁을 벌였던 목하 동아리의 기억이 새롭다. 

이름을 찾아내는 일은 시간이 들지만 보람 있는 일이기도 하다. 오래전 단편소설을 쓸 때였다. 재목이 “고래들의 노래”였는데 사람이 이민하는 것을 고래가 이민을 가야 하는 일에 비유해서 썼던 이야기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 생년월일, 직업 등등을 생각해야 했는데 주인공의 이름을 “이 민희” 라고 붙였다. ‘이민을 가는 여자’라는 뜻으로 읽히길 바라서 쓴 이름이다. 이 이름 때문인지 신춘문예 입선작으로 뽑히기도 했다. 다음 소설에서는 ‘민 들레’ 라든가 ‘두 루미’ 혹은 ‘가 랑비’라는 순 우리말의 이름을 가진 주인공도 만들고 싶었는데 당시 내 박사과정 학생의 이름이 떠올라 평범하게 ‘수민’으로 정했었다. 

수학에서도 숫자의 이름을 새로 만들어야 할 때가 있다. 미국의 수학자 케스너(Kasner)는 1938년에 9살 난 어린 조카와 세상에서 가장 큰 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구골(googol)과 구골 플렉스라는 이름을 만들어 냈다. 구골은 1 다음에 0이 100개가 붙은 수이며 구골 플렉스는 1 다음에 0이 구골 개 더 붙은 수이다. 유명한 검색 사이트인 구글(google)은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가졌다는 의미로 구골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려다 잘못 써서 된 이름이라고 하니, 구골이라는 이름은 이제 모두가 인정하는 큰 수의 이름이 되었다.

오래 전 우리 조상들이 만든 수의 이름을 생각해본다. 일, 십, 백, 천, 만, 억, 조, 경 등은 모두 한자 말이어서 순수한 우리말 이름은 아니다. 

우리말 수의 이름은 하나, 열, 온 (100), 즈문 (1000), 골 (10000)이고 잘(억), 울(조)까지 있다. ‘백’의 우리말이 ‘온’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금은 수의 단위로 온은 쓰지 않지만 여러 가지로 통하는 

‘온갖’은 ‘100(온) 가지(갖)’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많은 혹은 전부의 뜻으로 온 누리 혹은 온 세상이라는 단어에도 섞여 있다고 하니 옛날 온이 아주 큰 수라고 여겼을 때 생긴 말이 아닐까? 

‘즈문’은 서정주 시인의 ‘동천’이라는 시에 나오는데 순우리말 수 이름으로 1000을 나타낸다. 이 말도 거의 사라지고 있지만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라는 시구에 쓰여 그 이름이 남겨졌다. 

‘골’은 만에 해당하는데 이 이름도 옛 시조에서 볼 수 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골백번 고쳐 죽어’라는 정몽주의 단심가에서 골백번은 백만 번을 뜻한다. 한자어로 나온 ‘일백 번 고쳐 죽어’는 골백번의 잘못된 표기이다. “골백번 말했는데 아직도 안 했느냐” 등등의 표현에 남아있는 우리말이다. 

억을 뜻하는 ‘잘’은 엄청 많은 혹은 ‘큰’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잘한다’ 라고 할 때 ‘잘’은 ‘엄청나게 큰’이란 뜻으로 ‘엄청나게 큰 것을 한다’라는 뜻, 당시 억이란 숫자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울은 조(10의 12승, 즉 1에 0이 12개 붙은 수)에 해당하는 우리 말이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수의 이름이지만 천도교에서 부르는 ‘한울’에서의 울이 이에 해당한다고 한다. 한은 크다는 형용사의 옛 우리말. 그러니 ‘한울’이면 어마어마하게 큰 존재, 즉 우주라는 말이 된다. 

이름은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계속 불러주는 것도 중요한 듯하다.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네가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라고 노래한 김춘수 시인을 따라 ’온즈문골잘울’하며 불러본다. 꽃 같이 아름다운 우리말 숫자들이 나비같이 춤을 추며 날라와 ‘잊혀지지 않는 의미’로 우리 가슴에 앉을 것 같다.

 

고대진 작가

 

◈ 제주 출신

◈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 에세이집 <순대와 생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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