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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포케(Poke)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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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19-11-0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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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자 하와이 거주 / 소설가





하와이에서 생긴 일(18)





“하와이 음식 먹을래?”

“먹어봤잖아. 그 식당, 레이가 일하는 식당에서 포이를 권했잖아. 하와이 토란을 이겨서 만든 음식이라며 레이 아버지가 만들어주기도 했고. 솔직히 말해서 포이가 무슨 맛인지 모르겠던데, 레이가 권하니까 먹었지.”

“내가 권하면 뭐든 먹을거야?”

“Sure.”

“포케 먹으러가자.”

“포케? 포케가 뭔데.”

식당 안은 보통 스포츠 식당 같았다. 한쪽 벽에는 농구가 열을 올리고 있는 대형 TV가 있고, 다른 벽 스크린에서는 훗볼 경기를 하고 있었다.

대여섯씩 모여 앉은 탁자에는 항아리만한 유리잔에 맥주가 출렁거렸다. 스포츠를 응원하는 팀들이 내지르는 소리와 천정 스피커의 록 음악이 합세해서 식당 안의 음결이 무척 거칠었다.

레이가 나타나자 모두들 “하이”를 보냈다. 뭐야, 다들 레이를 알고 있는 듯 했다. 레이는 이들에게 신경도 안쓴다는 듯 쓱쓱 걸어 들어가더니 높은 쉐프 모자를 쓴 사람이 있는 스시바로 갔다. 스시바 뒤쪽으로는 세계의 술을 다 모아놓은 듯 술병이 좌악 열병식을 하고 있다. 팔뚝에 기하학적인 타투를 한 쉐프는 살집 많은 얼굴을 들지도 않고 레이에게 인사했다.

“하이 레이.”

“하와이의 넘버원 셰프야. 이 사람 손은 매직이야. 내가 주문 할까?”

“그러지, 난 잘 모르니까.”

“포케 만들어줘. 이 사람 한국 사람이야. 포케 처음 먹는대.”

“왓? 하우 컴?”

포케가 처음이라는 말에 어처구니 없다는 반응이었다.

“응, 하와이 온 지 며칠 안돼서.”

쉐프가 쓰윽 상필을 뚫어보았다. 마치 관상을 보듯하고는 ‘이 사람은 입맛이 까다롭겠군’하는 결론을 내렸다. 따지는 듯한 눈빛을 가진 자들은 쉐프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뭐든 맛있게 먹는 식성 좋은 사람이 쉐프들은 편하다.





포케를 처음 먹는다는 주제에 관찰하는 듯한 눈빛은 뭐란 말인가. 하지만 곧 포케에 미치게 될걸. 이런 쉐프의 육감은 적중하기 마련이다. 쉐프가 넘치는 자신감으로 식재료를 꺼내기 시작했다.

대파, 마늘, 양파, 푸른 고추, 붉은 고추, 피망, 오이, 여기까지는 상필이 아는 식재료들이었다. 간장, 핫소스, 마요네즈, 머스타드, 와사비 등 알만한 소스들이었다. 쉐프가 용비늘처럼 생긴 용과와 아바카도를 손질하려 했다. 상필이 “No” 사인을 보냈다.

“아바카도 안 먹어? 용과도?”

“응, 그거 먹으면 목이 잠기는듯 이상한 반응이 와서 삼가고 있어.”

“나도 그런데…”

레이는 큰 눈을 더 크게 뜨면서 상필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윽한 레이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면서 상필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아, 이 눈동자, 맑고 깊은 아름다운 눈이구나. 상필이 레이의 손을 슬몃 잡았다. 둘은 전율하듯 푸른 레이저 눈빛을 교감했다.

쉐프는 무표정하게 재료들을 익숙한 솜씨로 다듬기 시작했다. 얼핏 보아도 불고기 양념하듯 했다. 쉐프가 잘 다진 양념들을 유리그릇에 넣고 간장, 설탕, 참기름을 넣었다. 양념장을 한켠으로 밀어넣고는 이번에는 붉고 윤기 나는 튜나가 올라왔다. 쉐프가 길고 예리한 칼로 튜나를 다루기 시작했다.

“튜나 좋아해? 튜나 말고 연어, 문어, 새우, 조개, 해산물 원하는대로 다 넣고 포케를 만들 수 있어.”

“포케의 순수한 맛을 보고 싶으니까 튜나 한 가지만 하는 게 어떨까.”

“오케이” 레이가 쉐프에게 싸인을 보냈다.

“포케는 하와이 말로 ‘자르다’라는 뜻이야. 생선을 2센치 큐빅으로 자르고 준비된 양념에 재워두지. 생선을 날것으로 먹는다는 느낌이 없어서 좋아.”

“회덮밥이네.”

“속단하지 마. ‘김치’를 ‘사라다’라고 말 한다면 동의하겠어?”

이런 때 레이는 냉철하다.

“소스가 다르지. 회덮밥은 초고추장 소스인데 포케는 소스가 다양하지.”

레이의 목소리는 메조 소프라노다. 목소리가 둥글고 모나지 않고 부드럽다. 레이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고 상필이 생각했다.

“일반 생선회는 저장이 곤란하고 금방 먹어야 되잖아. 포케는 양념을 해서 무치는 거니까 약간 발효음식의 느낌이 들어. 음식을 며칠 정도는 냉장보관 해서 두고 먹을 수 있어. 이렇게 양념이 된 포케를 밥과 함께 먹으면 ‘포케 볼’이 되는거야. 다이어트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은 그냥 포케만 먹고.”





모든 문화의 산물에는 그 문화가 태어난 배경이 있다. 포케가 하와이 음식이 된 배경은 하와이가 섬이라는 사실과 생선이 거의 주식이었던 것에 기인한다.

옛날 하와이 사람들은 바다에서 갓 잡은 싱싱한 생선을 바다소금, 해초, 마카데미아 너트에 버무려 두고 먹었는데 후에 중국과 한국, 일본에서 이민자들이 가지고 들어온 간장과 참기름이 가미되었다. 이어서 필리핀, 말레지아, 스페인 멕시코 등지에서 이민자들이 가져온 그들의 독특한 향토음식이 들어와 하와이 포케에 보태졌다.

지금은 하와이의 웬만한 수퍼마켓에서 여러 종류의 포케가 팔리고 있고, 레스토랑의 메뉴에는 포케가 종류별로 서빙되고 있어 하와이의 관광식품이 되었다.





레이가 화장실을 간 사이 상필이 ‘포케’를 컴에서 찾아보았다. 상필이 모르는 사이 포케는 이미 세상에 많이 알려져 있었다. 세계는 정말 한통속이었다. 미국에서는 뉴욕, 시카고, 시애틀 같은 대도시에 포케 전문집이 있었고 한국에도 있었다.

“화산 포케네.”

희고 맑은 유리 접시에 큐빅, 직육면체 처럼 자른 양념된 붉은 튜나를 산처럼 쌓아 올렸다. 꼭데기에는 붉고 푸른 야채를 서려놓았고 홍당무 채를 불꽃처럼 꽂아놓았다.

“예술이네.”

레이가 ‘그렇지!’하는 표정으로 상필을 보았다. 하와이 포케에 우리 된장국을 곁들이면 ‘최고의 디쉬’가 될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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