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크리스마스 접시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0-12-11 10:29

본문

다용도실에 쌓여있는 오래된 크리스탈 접시들을 꺼내놓고 보니 시즌 접시가 꽤 되었다. 오래 전 포트워스 다운타운엔 유명한 디너웨어 아웃렛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온 동네 아줌마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레인디어나 크리스마스트리가 그려져 있거나, 천사가 나팔을 불고 있는 크리스탈 접시들을 사곤 했다. 누군가 ‘아, 이 접시 이쁘네’ 하면 약속이나 한 듯이 똑같은 접시를 사서 집집마다 장식을 해놓고, 볼 때마다 거저주운 것처럼 세일 가격을 자랑하곤 했다.

그 중 성모 마리아가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대형 크리스탈 접시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잘 구입했다 싶은데,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니 유독 그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온다.

 

중세에 그림 좀 그린다는 화가치고 성모자상을 그리지 않은 화가는 드물다. 성모자상은 화가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데, 우리동네 킴벨 뮤지엄에도 유명한 성모자상이 몇 점 있다.

도나첼로부터, 조반니 벨리니 등 헌신적이고 자애로운 표정의 어머니부터 이기적이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보이는 차가운 어머니상까지 다양한 성모자상이 있다. 

당시에도 화가들은 완벽하지 못한 세속의 모자상을 더 일찍 정확한 눈으로 간파해서 실존과 이상의 차이를 일찌감치 깨우치게 했던 것 같다. 때로는 그 간격이 너무 커서 위태롭기도 하지만, 어쨌든 인류는 저 2,000년 전부터 이상적인 모성성을 갈구해왔다.

일예로 화가 조반니 벨리니의 성모자상을 보면, 엄마의 표정이 좀 냉정하고 샐쭉해 보인다. 아기의 표정 역시 엄마에게 사랑을 느끼는 얼굴이라기보다는, 좀 어색하고 어정쩡하다. 평소 우리가 아는 모자관계의 이상적인 패러다임이 아니다.

그는 베네치아파 화가로 성모자상을 잘 그리기로 당대에도 유명했는데, 그의 그림이 그렇게 된 데에는 연유가 있다. 일찍 어머니의 부재를 맛 본데다가 그의 어머니는 조반니를 싫어해서 유언에도 그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거세당한 모정은 평생 그를 따라다니며, 부정적인 여성상을 그리게 만들었다.

 

엄마라는 존재는 천사가 너무 바빠서 준 역할이라는데, 요즘 세상의 모성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자식을 몰래 낳아 유기하거나, 굶어죽게 만드는 젊은 엄마도 있고, 키우지도 않고 권리부터 주장하는 뻔뻔한 엄마들에, 너무 과해서 자식을 평생 유아기 마마보이로 살게 하는 엄마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한국 엄마들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웬만한 희생은 즐거움으로 아는 엄마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해마다 대림절이 되면 꼭 읽게 되는 루가복음의 한 구절(루가 1:39-45)을 난 좋아한다. 마리아가 유다산골에 있는 엘리사벳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복음은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문장도 시적이어서 한 장면 장면이 머릿속으로 다 그려진다.

산악지방이니 임신한 몸으로 나귀를 타고 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은데, 마리아는 힘든 내색 하지 않고, 사촌언니를 만나러가는 기쁨에 들떠있다. 주님의 어머니를 맞이하는 사촌 엘리사벳의 환대 또한 예사롭지 않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이에 마리아는 그 유명한 성모찬가,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나의 구원자 하느님안에서 내마음 기뻐 뛰노네’로 시작되는 마니피깟으로 응답한다.

이 인류의 역사를 바꿀 두 여인의 만남이 몇 천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계속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기의 만남’이라는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은 인간의 적나라한 탐욕과 술수를 보여줬지만, 두 여인의 만남은 새 생명이 가지고 올 새로운 세상에 대한 믿음과 확신, 비전을 보여줬다. 크리스마스의 시작은 아마도 여기서부터 일 것이다.

 

차이나 캐비넷 안 작은 전등을 새것으로 갈아 끼우니, 오늘따라 성모자상 크리스탈이 더 환하게 반짝거린다. 어른이 되고 나서 누군가에게 포근하게 안겨본 것이 언제쯤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이럴 때 성모자상을 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안해진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지치고 또 지칠 때 무작정 안길 수 있는 품안이 필요하다. 아무조건 없이 누군가를 사랑해주는 이, 사랑을 나누어 줄 이가 그립다. 그럴 이가 아기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올 한 해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왔다. 그 끝에 환한 불빛으로 우리를 기다리는 이가 있다.

올해도 구유 안은 따뜻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은총의 시기가 이미 시작되었다. 임마누엘! 임마누엘!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일반적으로 1년 중 가장 주택시장의 활동이 둔화되는 시기는 11~2월인데, 코로나 19 팬데믹에서 야기된 시장변화가 주택시장 비수기를 성수기로 바꿔놓고 있다.지난해 연말을 시작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새해부터 주택시장이 뜨겁게 용솟음치며 과열이 좀 처럼 수그러들 기…
    부동산 2021-02-12 
    이젠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모텔 방에서 엘리엇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자, 옆방에서 조용히 하라고 벽을 친다. 다음날 엘리엇은 LA 공항으로 가서 뉴욕행 비행기를 탄다.그런데 바로 옆 좌석에 한 젊은 여자가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조니였다.잠시 후…
    문학 2021-02-12 
    2021년도 벌써 한달이 훌쩍 지나고 절기상의 입춘도 막 지나는 시점이다. 이곳 미국의 코로나 확진자수와 입원자수가 눈에 띄게 감소 한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집계에 따르면 연일 30만명을 넘어가던 미국내 신규 확진자가 50% 이상 감소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 수치는 …
    회계 2021-02-05 
    ❖ 족저근막염이란?족저근막염은 발바닥 통증의 가장 흔한 원인이 되는 질환 중의 하나입니다. 사람은 직립 보행을 하므로 발의 역할이나 중요성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잘 알고 있습니다.그런 발에 지속적인 통증이 있다면 이것은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
    리빙 2021-02-05 
    “점심 하자. 내가 한 턱 쏜다.” 리처드가 어깨를 으쓱하며 무리의 보스처럼 굴었다.“알지? 72번 선상 ‘Roy’s’로 모두들 와.” 이 사람들도 뒷담화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상필이 코코헤드 정상을 10분만에 올랐다는 게 큰 사건인양 떠들었다. 이 기록을 기네스북에…
    문학 2021-02-05 
    코로나 19 사태 이후 미국 소비 시장이 뚜렷한 양극화 현상을 보이면서 프리미엄 시장과 초저가 유통 채널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K자형 경기 회복(부유층과 저소득층 간 소득격차 확대)`과 적지 않은 관련이 있다.최근 팬데믹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임대료 수입…
    부동산 2021-02-05 
    한국 속담 중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뜻하는 의미는 말 그대로 미리 외양간을 잘 손질하고 튼튼히 하면 자기가 아끼는 소를 잃지 않아도 된다 라는 말과 같다.요즘은 누구나 알다시피 모든 사업이 예년에 비해 어렵고 매출 또한 많이 떨어지고 있는…
    리빙 2021-01-29 
    올해 세금보고 시즌은 2월 12일부터 시작이다. 작년 말 Covid Relief Act가 늦게 발효됐기때문에 Internal Revenue Service에서 세금관련 시행령에 따라 컴퓨터 프로그램을 보완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세금환급에 민감…
    회계 2021-01-29 
    [꽁트릴레이] 한인 작가 꽁트 릴레이 64“낸시 펠로시가 체포됐다는데요?”전화기 저편에서 넘어 오는 김 장로의 목소리에는 ‘거짓말이지?’ 하는 느낌이 다분히 실려 있었다.“어이구, 장로님도 참, 낸시 펠로시는 지금 하원에서 트럼프 탄핵 표결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 집…
    문학 2021-01-29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계속되는 주택 매물 감소로 인해 바이어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각 도시마다 주택 판매 증가세는 해를 넘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주택 매물은 감소했는데, 주택 판매는 반대로 증가하고 있다.다시 말해, 시장에 나오는 매물은 거의 모두 판매로 이어지고…
    부동산 2021-01-29 
    「당신에게 정말 미안해」추수감사절에 잭이 주류전문점에서 술을 사서 여동생 베스의 집을 방문한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날 밤, 베스가 잭에게 요즘 만나는 사람 없느냐고 묻는다.잭이 없다고 하자, 엔젤라가 오빠를 걱정한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듣…
    문학 2021-01-29 
    새해부터 바다 건너 고국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딸 조민이 올해 초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으로 떠들석하다.의료계를 중심으로 ‘공정과 정의가 무너졌다’는 비판이 거세다. 부산대 의전원 입학이 취소되면 의사면허도 무효가 될 수 있는 상황이고, 지난해 조국의 배우자…
    회계 2021-01-22 
    그늘진 앞마당에도 진달래가 사계절 피는 달라스의 겨울. 남향인 뒷마당 데크의 따듯한 햇살은 진순이와 해바라기하며 책읽기에 안성맞춤이다. ‘로망의 성취’라고 할까.몇 해 전 젊은 목사님들의 밀어붙이기식 자원봉사로 넓고 멋진 덱크를 만들었다. 예상에 없었고 아마추어들이라 …
    문학 2021-01-22 
     30대: 뼈 건강근육과 뼈의 밀도는 30대에 정점에 이른 후 지속해서 줄어듭니다. 감소세는 비교적 완만하게 진행되다가 60대 초중반 이후에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에 늦어도 30대부터는 근육과 뼈 건강을 미리 챙기는 것이 바람직합니다.뼈를 구성하는 부분이 얼마나 촘촘한…
    문학 2021-01-22 
    오늘은 월스트릿 저널 출신으로 Collaborative Fund의 파트너가 된 Morgan Housel이 쓴 ‘돈의 심리학(The Psychology of Money)’을 기초로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두 명의 투자자 이야기가 있다. Grace Grone…
    부동산 2021-01-22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