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가을나이’

페이지 정보

작성자 NEWS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0-10-23 09:40

본문

햇살이 빠르게 하향곡선을 그으며 뜨겁던 태양의 열기가 식고 날씨가 선선해지자 뒷마당에 가을이 들기 시작했다. 남편이 정성껏 가꾼 열 포기 정도의 깻잎 덕분에 봄부터 나눔이 풍성했다.

쌀 반톨보다 더 작은 들깨씨가 자라 두 아름이 넘도록 가지가 퍼지고 잎을 내주었다. 우리는 물론 주위의 지인들까지 따고 따도, 계속 나오고 크는 기적 같은 들깻잎이다. 

이제 부지런히 거두어야 했다. 씨를 받을 게 아니니 잎을 따서 나물로 먹도록 갈무리해야 한다. 잎이 난 자리마다 꽃주머니 속에 익어가는 들깨씨앗들. 영근 후에 턴다면 숫자로 셀 수 없는 엄청난 씨알들이다. 

성경의 ‘오병이어 기적’을 볼 수 있는 현장인 셈이다. 열린 마음으로 자연을 둘러보면 보이고 느껴지는 모든 것이 분에 넘치는 축복이다. 

 

들깻잎을 추수하는 옆에서 지켜보던 진돗개                           ‘진순노인’이 졸다가 훌러덩 넘어졌다. 제 풀에 놀라 허둥거리며 빨리 일어나려고 애쓰는 안쓰러운 모습에 일부러 눈 맞춰서 하하하 큰 소리로 웃어 주었다. 자기도 멋쩍은지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하다. 

남편 진돌을 보낸 후 처음 보는 환하게 웃는 표정이 반갑다. 노처녀인 겔리코 고양이 나비와 진순, 우리 부부 모두 ‘가을나이’다. 집안에 가을이 가득하다.

 

이 가을에 ‘가을나이’가 채 되기도 전에 떠나신 시어머니, 울 엄니 생각이 부쩍 난다.

6·25 전투 막바지에 남편이 전사해서 홀로 되셨다. 장사하며 아들 키우며 살다가 병원에서도 회복이 어렵다는 중병에 걸리셨다.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 굿하던 중 무당의 욕심을 알아채고 굿을 멈추게 하니 “곡기를 끊을거다”고 했단다.

동네에서 교회 다니던 권사님께 부탁해 그 주일부터 리어카에 실려서 그 먼 교회를 가셨다고 했다. 친정에서 호랑이 고모, 친가에서는 호랑이 큰엄마이셨던 울 엄니가 집안에서는 첫 기독교인이 되셨다. 당시에 핍박도 받았지만 장손인 무녀독남 아들을 목사로 키우셨고 덕분에 완전히 기독교 가문이 되었다.

울 엄니 친정과 친가가 전부 예수를 믿으니 증손까지 친다면 몇 백이 넘으리라. 어린 나이에 혼자되어 호랑이(?)로 살 수밖에 없었던 울 엄니의 마음 밭은 하나님 앞에서 좋은 땅에 심기었던 들깨 같았나보다. 

  

울 엄니의 열매에 나를 비춰본다. 20대에 구라선교회(Leprosy Mission) 병원에 물리치료사로 일했다. 당시는 선교사들이 물리치료사로 일했고 한국 사람으로는 최초였다.

 왜 사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한센(나병)환자와 그 가족들의 사회적 처참함에 맞물려서 왜? 왜?로 시비를 거는 선교회병원의 별종이었다.

그 분의 부르심에 감히 알량하고 얄팍한 지식으로  해가 바뀌도록 고집과 객기를 부렸다. 그 분께 여지없이 ‘참패당하는 복’을 받아 철저히 회개한 후 사랑의 하나님을 만났다.

기도응답대로 목사의 아내가 되었고 기도하며 동역자로 살아왔는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기에 내 친정 식구들에게는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 걸까? 과연 내가 진지하게 복음을 전했을까? 그들에게 예수복음은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영적부요의 소중함을 모르는 친정 식구들에게는 직장을 포기하고 시작한 목회가 이해될 일이 아니었으리라. 예수 안 믿는 친정이기에 내색 안했는데도 재정적인 어려움이 안쓰러웠을 친정엄마는 늘 “너나 예수 믿고 잘 살아라, 그게 내 소원이야”라고 하셨다. 

사도 바울의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는 말씀을 생각하며 가슴을 치며 기도했던 수많은 날들.

이제는 친정 식구들의 영혼 또한 그 분의 손에 맡기고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거룩한 나그네’로 살다가 가고 싶다. 

 

여학생 때 하교길에 친구와 낙원동의 레코드 가게 앞을 지나게 되었다. 가게 앞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인생은 나그네 길…” ‘하숙생’노래가 나오자 내 손에 자기 가방을 지워주곤 두 손을 가슴에 얹고 노래가 끝나도록 서서 듣던 친구. 어디서 어떤 나그네 삶을 살고 있을까?

젊은 층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그녀의 우상이었던 ‘찐빵’ 최희준 씨도 이미 나그네 길을 접으셨다. 

예수 믿기 전에 성경을 두 세 번 통독할 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예수 믿은 후 ‘인생은 나그네길’이라는 그 노래 말을 성경에서 발견하고 반갑고 신기했다.

아브라함은 평생을 광야에서 나그네로 살았다고 했다. 다른 믿음의 조상들 또한 목적이 분명한, 천국본향을 향해 가는 ‘거룩한 나그네’의 삶을 살았던 분들이다. (창 23:4,히 11:13-16) 

 

캐롤튼의 W. J. 토마스 공원에 걸으러 갔다. 호수를 감싸고 드넓은 풀밭 여기저기에 무리지어 핀 아기 손톱같이 작은 풀꽃, 잔디밭에 뿌리내렸기에 잔디 깎을 때마다 함께 깎여서 한 뼘도 못 되는 낮은 키가 되었다.

하얀 꽃잎에 속이 노란 개망초꽃(계란꽃-Daisy Fleabane)들이 짧아지는 가을볕 아래 탄성을 지르며 이곳저곳에서 무더기로 꽃을 피워내고 꽃씨를 품는다. 

“개망초꽃 그래 너희처럼 사는 거야. 주어진 환경에서 살 수 있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는 네 모습. 깎여도 밟혀도 그 모습 그대로 하늘 우러르며 기쁨의 작은 꽃 계속 피워 내는 너. 언제 뭐가 닥칠지 무슨 걱정이래. 가을의 축복으로 알곡 되고 겨울 안식을 예비하는 ‘가을나이’를 살면 되는 걸. 등잔에 기름을 예비한 슬기로운 처녀, 예비 된 신부로 예수님 오시는 날 기쁨으로 맞이하게 되겠지.”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마가복음 4:20)


김정숙 사모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당신은 유명한 싱어송라이터」유명 밴드의 기타리스트이며, 싱어인 잭이 무대에 올라 공연을 시작하자, 관객들이 함성을 지르면서 열광한다. 공연이 끝나자, 잭은 술병을 들고 차에 타서 어디론 가를 향한다.한편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가수의 꿈을 키우고 있는 앨리…
    문학 2020-11-20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우리 독자들에게 미국 대선 결과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하다.얼마 전 류현진 선수가 작년까지 몸 담고 뛰었던 LA 다저스가 우승을 차지한 월드 시리즈보다 큰 관심사라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우리…
    회계 2020-11-13 
    원래도 식물이나 꽃들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타샤 튜더의 사계절이 화보와 함께 나와 있는 <타샤튜더의 정원>은 내가 가장 아끼는 책 중 한 권이다.마음이 심란하고 스산해질 때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꽃과 나무를 무척 좋아했던, 동…
    문학 2020-11-13 
    보글보글 시원하게 끓인 콩나물국, 감칠맛이 일품인 소고기무국 등 하얀 국이나 탕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식재료는 언제나 ‘파’입니다. 송송썬 파는 음식의 마무리이자, 예쁜 고명으로도 사용되어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의외로 누구나 잘 먹는 식재료는 아닙니다.저도 어렸을 때 콩나…
    문학 2020-11-13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돼 앞으로 미국과 세계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이에 바이든 당선자가 수립한 대내외 정책인 바이드노믹스(Bidenomics)에는 어떠한 특징과 시사점들이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바이든 당선자가…
    부동산 2020-11-13 
    음주와 보험을 관련지어 생각할 때 중요한 두 가지의 보험을 생각해볼 수 있다.첫째는 술을 판매한 상점이나 식당업주를 위한 리커 라이어빌리티 보험과 둘째로 음주운전으로 인한 티켓이나 사고를 낸 사람들에게 필요한 SR-22 자동차 보험이다.미국 교통안전국의 최근 통계에 의…
    리빙 2020-11-06 
    대상포진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질병 중 하나입니다. 미국의 질병 관리국(CDC)에 따르면 인구 3명 중 1명이 평생 최소 한 번의 대상포진을 겪는다고 합니다. 대상포진은 심한 통증과 피부 발열, 물집을 동반하고 띠 모양을 가지며 몸의 한쪽으로만 번지는 것이 특징…
    리빙 2020-11-06 
    헬리콥터가 카우아이 섬을 낮게 선회하고는 고도를 높혔다. 상필은 이제 어디로 가는지 레이에게 묻지 않는다. 뭐든 레이에게 맡겨놓은 상태였다.그냥 따른다는 게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넘실대는 하와이의 푸른 바다를 내려다 보다가 상필이 잠깐 잠든 사이 헬기가 올드 하와이…
    문학 2020-11-06 
    당신은 훌륭한 변호사2003년, 변호사 주디가 아들 알렉스와 함께 뉴멕시코에서 캘리포니아 LA로 이사를 간다. 그리고 다음날, 주디는 자신이 일할 로펌의 대표인 레이를 만나서 사건들을 인계 받는다. 주디는 여러 사건들 중에서 현재 위조 비자 건으로 진행 중인 아프가니스…
    문학 2020-11-06 
    바다 건너 고국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의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이 12조원 이상 발생했다. 코로나 19 장기화 속에서도 실로 놀라운 경영실적을 달성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3분기(7~9월) 역대 최대 수준의 실적을 냈다.매출액은 66조원이고 영업이익은 12조 3,000…
    회계 2020-10-30 
    나 두석 씨는 노려보던 포도주잔을 들어 냉수처럼 꿀꺽꿀꺽 마시더니 마치 석고대죄 하듯 두 팔을 식탁위에 내던지며 머리를 아래로 처박았다.“뭐야, 정말 인생이 왜이래? 도대체 왜 이러냐고, 아, 테스형!”그러더니 이내 숙였던 머리를 번쩍 들고 주먹으로 식탁을 쾅 치며 또…
    문학 2020-10-30 
    사람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기에 자연의 속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돈을 가지고 하는 재테크 역시 돈의 속성에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돈의 속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해하면 어떤 분야든 투자에 대한 통찰력이 생긴다.‘돈 공부’에 대해 기초적이고 근본적이면서…
    부동산 2020-10-30 
    당신은 집보험이나 자동차 보험에 가입할 때 당신의 크레딧 점수에 따라서 보험료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대부분의 자동차나 집보험 회사에서는 당신의 보험료를 산출하는 과정 속에 크레딧 점수를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당신의 크레딧 정보가…
    리빙 2020-10-23 
    햇살이 빠르게 하향곡선을 그으며 뜨겁던 태양의 열기가 식고 날씨가 선선해지자 뒷마당에 가을이 들기 시작했다. 남편이 정성껏 가꾼 열 포기 정도의 깻잎 덕분에 봄부터 나눔이 풍성했다.쌀 반톨보다 더 작은 들깨씨가 자라 두 아름이 넘도록 가지가 퍼지고 잎을 내주었다. 우리…
    문학 2020-10-23 
    「이것 놔요, 가족을 찾아야 해요」어느 날 카티아는 남편 누리의 사무실에 6살 아들 로코를 데려다 주고, 동생 비르깃을 만나러 간다.카티아는 사우나에서 임신한 비르깃과 편안한 시간을 즐기고, 다시 누리의 사무실로 갔는데, 경찰차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불…
    문학 2020-10-23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