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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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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1-04-16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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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33주년을 축하합니다. 당신과 함께한 수많은 시간은 축복이었습니다. 앞으로 33년도 함께 행복하고 다정하면 좋겠습니다. 매일 오늘같이 사랑으로 채웠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사랑해!” 

 

치과에서 36년 된 크라운을 갈아 끼우고 가게에 막 들어서니 남편한테서 문자가 날아왔습니다.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나는 세월 가는 줄 모르고 허둥거리며 살고 있나봅니다.

갑자기 문자를 받고 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을 하고 말았습니다. 문자로 답을 할까 하다가 전화를 했습니다. “우리 참 오래 살았다. 그치?” 했더니 3 땡이라고 좋아합니다. 열심히 잘 살아 주어 고맙다고 합니다. 

 

사실은 치과에서 돌아오는 내내 남편 생각을 하며 많이 미안했습니다. 어릴 적 나는 엄마가 하라는 대로 금으로 크라운을 했습니다. 깨지지 않고 오래 갈 테니 그러셨겠지만, 나는 모두 금이나 은으로 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부터 웃으면 살짝 보이는 노란 금니가 싫었습니다. 세상 물정을 알고 나니 당장 갈아치운다는 게 마음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영원한 건 없다며 때를 기다린 것이 왜 하필 지금이냐고 투덜거리는 내게 남편은 이가 건강해야 치매도 안 걸리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일장 연설을 합니다. 어차피 해야 할 거 당장 다녀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결혼하고 한참 되어서야 남편의 치아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초등학교 때 이가 아프다고 했더니 어머님이 야매로 하는 돌팔이 의사한테 데려가 아래 양쪽 어금니 하나씩을 빼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한쪽도 아니고 양쪽이라니 황당했습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이 없는 사람이랑 결혼했다며 당장 어머니한테 가서 이 돌려받아오라고 했습니다. 물론 우스갯소리였지만, 아이 이를 그냥 빼버리고 그 긴 세월을 그냥 내버려 둔 어머님이 많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내 이가 아니다 보니 한동안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참만에 생각해낸 나는 불편한데 왜 말하지 않았느냐며 오히려 역정을 내고 말았습니다. 역정이야 잊고 있었던 게 미안하고 많이 불편했으면서도 그 긴 세월 동안 말 못 하고 있었다는 게 속상해서 내는 것이었지만, 늘 그런 식이었습니다. 

 

결혼이 뭔지 사랑이 뭔지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그 사람이 좋아서 그저 그 사람이랑 같이 있고 싶어서 덜커덕 결혼이란 걸 했습니다. 그렇게 한 결혼이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고도 남을 33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좋다는 것 말고는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걸 결혼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이 뭔지를 몰랐으니 당연히 사랑하는 법도 몰랐겠지요. 참으로 서툴고 이기적인 사랑법이었습니다. 그때는 다 그러고 사는 줄 알았습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었으니 그거면 다 되는 줄 알았으니까요.

 

치아에 크라운을 씌우는데도 윗니 아랫니가 잘 맞도록 제대로 본을 떠야 합니다. 그 본으로 치기공사는 섬세하게 갈고 닦아 완성품을 만듭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완성품은 다시 치과의사에 의해 조정이 됩니다. 여러 번 갈고 또 갈아냅니다. 위아래가 잘 들어맞고 아귀 전체가 제대로 맞는다는 확신이 설 때, 의사는 고정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잘 맞은 치아는 30년을 훌쩍 넘길 때까지 한 몸이 되어줍니다. 물론 관리를 잘 해야 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하물며 30년 가까이 다른 환경에서 살았던 두 사람이 결혼해서 서로에게 맞추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야 하겠습니까. 참 모르고 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습니다. 참고 맞춰주는 쪽이었습니다. 상한 이 위에 씌우는 크라운처럼 긴 세월 동안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갈아 내며 부족한 내게 맞춰왔습니다. 배려하며 오늘까지 기다려왔던 것입니다. 

큰 것들만 바라보는 세상에서 작은 것들을 바라보며 작은 열매 맺는 일에 충실했습니다. 허둥대는 나를 길 잃지 않도록 잡아주고 세워주는데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부족해 하고 별것도 아닌 일에 목청을 높이고 악을 썼던 것은 늘 나였습니다. 살아오면서 좋은 날이 많았지만 ‘정말 끝이구나!’ 했던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건 의자에 앉아도 등받이에 기대지 못하는 괴팍한 성격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못하고 달려온 내 탓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33년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큰아이 초등학교 입학만 하면 한국으로 떠나겠다던 남편은 이제 앞으로의 33년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이 많은가 봅니다. 

우선은 나를 챙기는 일을 낙으로 삼았는가 봅니다. 매일 밤 야채주스, 과일주스를 만들어 한 주먹의 영양제와 함께 대령합니다. 너무 많다고 은근히 좋으면서도 툴툴대는 내가 여전히 밉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큰아이 이사 갈 날을 받아놓고 쓸쓸해 하는 내게 “우리도 그랬어. 다 큰 애들 끼고 살 수는 없잖아. 이젠 나만 보고 살면 돼!” 하며 위로를 합니다. 젊어서는 듣고 싶어도 죽어라 안 하더니 요즘은 “사랑한다”는 말도 제법 자주 해줍니다. 

 

조금 늦게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니 집안은 온통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아이들은 마트에 다녀와서 음식을 장만하느라 분주했고 뒤따라 들어온 남편 손에는 꽃과 케익이 들려 있었습니다. 

나의 세 남자는 한 통속이 되어 나를 또 울리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오래 전부터 시시때때로 작은 이벤트와 함께 쉼 없이 고백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사랑도 관심도 없는 사람이라고 서운해했는데 알고 보니 정작 내 아집에 갇혀 사느라 보지 못하고 살아온 건 나였습니다. 

 

기쁘고 행복해야 하는 날에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이없게도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납니다. 아마 33년 전 우리의 모습이 떠올라서 그러는지 모릅니다. 아니면 이 나이 먹도록 여전히 사랑에 서툰 나 자신이 미안하고 안쓰러워 그러는가 봅니다.

하지만 살짝 몸을 틀어 아무도 눈치채지 않게 나직이 우는 법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젠 제법 슬그머니 딴청을 부리며 콧물도 찍어낼 줄 압니다. 이 정도면 아주 서툰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아~ 하세요

아~ ~

문을 열었다

당신이 온 줄 알았다

눈을 감았다

어가 아니라 아 하시라고요

 

짝짝짝 바이트 하세요

짝짝짝 

아~ 하세요

 

어금니가 아니라

귀를 갈아 내고 있었다

 

아~ 하세요

짝짝짝 바이트 하세요

짝짝짝 

아 ~ 하세요

다 된 것 같아요

마취 풀리면 잘 맞나 씹어보세요

이럴 거야 라고 생각했는데

끝내 

저러더라고요

 

멈출 때를 놓친 시간만큼 

떠오르는 시린 문장들

달려오면서도 흘리지도 못하고 온

들뜬 골목길  

지나온 걸음을 갈아내고

당신 이름 위에 크라운을 씌운다

 

김미희, <맞추다> 전문

 

김미희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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