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이타카를 품어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1-10-01 09:12

본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학창 시절 열심히 외웠던 공자의 말씀이 마음에 와닿을 때가 있다. 요즘이 그러하다. 배우고 익히니 기쁘고, 벗들이 찾아와주니 즐겁고,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엽지 않으니 군자는 아니어도 하루가 족하기 때문이다.

 

  지난해는 코로나 시국에 척추 수술까지 하는 바람에 자가격리 하나는 확실하게 한 것 같다. 막막하고 답답했던 시기에 즐거웠던 일이 있었다면, 줌 강의를 듣는 것이었다. 좋아하는 작가와 공부하며 통증을 잊을 수 있었고, 배우고 익힘으로 재충전할 수 있었다. 오래전 문창과 공부를 할 때 온라인 원격 수업을 해 본 경험이 있어서 딱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숙제로 내준 작품과 고전, 책장에 꽂아두고 째려만 보았던 책과 주목받는 젊은 작가의 작품집을 사 읽으며 “독서는 집에서 하는 여행”이라는 말을 체험한 시간이기도 했다.

 

  거동이 불편해서 나가지 못하니 이따금 지인들이 찾아오거나 안부 전화를 하는데, 내가 줌 강의를 듣고 있다고 하면 이구동성 아직도 배울 게 남았냐며 웃곤 했다. 음! 죽을 때까지 배워도 끝이 없는 게 공부고 인생 아니던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까진 재밌다. 전공을 문학으로 갈아탄 것도, 업으로 삼은 것도 후회는 없다.

   

  근간 읽었던 책 중 인상 깊었던 걸 꼽으라 하면 단연 해이수 작품이다. 『기억나지 않아도 유효한』이란 수필집을 읽고 문장에 홀려서 소설집까지 구해 읽었다. 특히 「거대한 곡선의 회항」이란 수필의 울림이 컸다. 거기에 그리스 시인, 콘스탄티노스 카바피의 ‘이타카’라는 시를 인용해 풀어낸 작가의 경험담이 나온다. 오래전, 가수 하현우와 윤도현이 출연했던 “이타카로 가는 길”이라는 방송에 소개된 적 있는 시였다. 소설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아마도 그의 이타카였을 것이다. 악마가 다가와 명작을 쓰게 해주는 대신 수명에서 20년을 떼어가겠다고 속삭이면 기꺼이 바칠 의향이 있노라고 고백할 만큼 창작에 대한 열망이 절절했었다. 소설이 밥이 되지 않는 세상,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난한 습작생의 사계절은 얼마나 춥고 길었을까.

 

  그가 이타카를 처음 읽었던 날, 카바피가 자신의 상황을 미리 알고 낭송해 주는 것 같아 철철 울었고, 나는 그가 쓴 문장을 읽다가 따라 울었다. 창작의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소설이 너를 풍요롭게 해주길 기대하지 말라는 전언이 그를 문학의 이타카를 꿈꾸던 시절로 회항시켜 주었고 그는 자유로워졌다.

 

  얼마 전, 특별강사로 초대된 해이수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는 문학을 과정이라고 말했다. 작은 일을 위대한 사랑으로 꾸준히 해나가는 거라고. 집중해서 한 편 한 편 쓰다 보면 자신이 소망했던 이타카에 언젠가는 도달하게 될 것이라고. 나의 이타카는 문학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노력이 절망이란 이름으로 돌아올 때 가끔 힘이 풀리기도 하겠지만, 괜찮다. 창작의 길 위에서 나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노엽진 않을 것이다.  

 

   “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네 목표는 그곳에 이르는 것이니/그러나 서두르지는 마라/비록 네 갈 길이 오래더라도/늙어져서 그 섬에 이르는 것이 더 나으니/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해주길 기대하지 마라/이타카는 너에게 아름다운 여행을 선사했고/이타카가 없었다면 네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았으니/이제 이타카는 너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구나//설령 그 땅이 불모지라 해도 이타카는/너를 속인 적이 없고, 길 위에서 너는 현자가 되었으니/마침내 이타카의 가르침을 이해하리라” 

 - C. P. Cavafy, Ithaca 중에서

 

  카바피의 시는 자신을 되돌아보고 마음을 다잡아 초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신비한 힘을 지녔다. 100여 년 전, 그가 남긴 전언이 방향을 잃은 이들을 허상 속 유토피아가 아니라, 현실 속 이타카로 인도하는 등대와 나침반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이타카는 그리스 이오니아 제도의 작은 섬마을이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전쟁을 마친 후 아내와 아이들에게 돌아가려 했으나 수많은 난관에 부딪혀 십 년 동안 가지 못했던 그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에게 이타카는 이상향이었고 살아서 돌아가야 할 목적지였다. 목표가 없었다면 끔찍한 시련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목표는 동력이 된다. 지금은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시기지만, 저마다 가슴에 이타카를 품고 목표를 향해 첫발을 내디뎠으면 좋겠다. 조급해하지 말고 성실히, 과정을 소중히 여기며 말이다.

 

박인애 시인, 수필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벌써 10월도 중순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가을철을 맞아 쇼핑몰이나 서양마트 등 많은 곳에서 호박과 각종 할로윈 인형들과 관련된 상품들을 진열해놓아서 쇼핑하는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이러한 눈요기들과 함께 저…
    리빙 2021-10-15 
    저금리 상황에서 자산을 불리기는 쉽지 않지만, 무전장수(無錢長壽)는 더 끔찍하다. 인생 100세 시대는 축복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통이다.오래 살게 되면 그만큼 더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60세에 은퇴해서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은퇴생활 기간은 20…
    부동산 2021-10-15 
    치아 한 가운데에 자리한 충치는 기능적, 심미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말할 때나 환하게 웃을 때 거무튀튀한 충치가 두드러져 첫 인상에 마이너스 요소로 부각될 수 있다. 또한 치아를 부식시켜 저작 기능을 근본적으로 떨어뜨린다.충치의 의학적 명칭은 치아 우식증이다…
    리빙 2021-10-08 
    자동차 충돌사고의 경우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감수해야 하는 불이익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첫째, 상대편의 잘못으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상대편 보험에서 자동차의 피해를 깨끗하게 수리해주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외관상 …
    리빙 2021-10-08 
    10월 15일은 개인 소득세 및 주식회사 소득세 마감일이다. IRS 발표에 따르면 세금보고 마지막 날인 10월 15일까지도 세금보고를 하지 않은 국민이 2.5% 정도 된다고 한다.여러 사정이 있겠지만 10월 15일까지는 세금보고를 마치는 것이 Statute of Lim…
    회계 2021-10-08 
    “웬 음악을 그렇게 크게 틀어요?““나훈아가 부르는 ‘테스형’인데 들어봐.”“테스형이라니? 테스형이 뭐지?”“소크라테스의 테스 아니가?”“소크라테스의 테스? ㅎㅎㅎㅎ”“왜 웃어?”“엉뚱하잖아.”테스형! 이 노래는 나훈아가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하고 만든 노래라는…
    문학 2021-10-08 
    안녕하세요! 비교적 선선한 날씨가 연이어 이어지는 10월 초반입니다. 중남부의 10월은 바베큐 시즌으로 여러 서양마트에서 차콜 등 바베큐와 관련된 상품을 멋지게 진열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최근 육류가격이 작년 대비 많이 오르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10월은 육류…
    리빙 2021-10-08 
    Remax 사이먼 윤의DFW 부동산 가이드콜린 카운티 부동산 중개인 협회(Collin County Association of Realtors)의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콜린 카운티의 주택 재고는 8월에도 계속 줄어든 것으로 통계되었다.8월달 신규매물은 1,710건으로 지…
    부동산 2021-10-08 
    -미안해요, 우리 집으로 가요-케이티가 어디론가 도망을 가기 위해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표를 구입한다.그런데 케이티의 남편이면서 보스톤 경찰의 형사인 케빈이 그녀를 잡기 위해 뒤를 추적한다. 그러나 케이티는 다행히 버스에 올라타 보스톤을 빠져나가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
    문학 2021-10-08 
    이번 주 휴람 의료정보에서는성형수술 중 만족도가 높은 수술인가슴 성형에 대해서 휴람 의료네크워크뷰성형외과 성형외과 전문의최 순우 대표원장의 도움을 받아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식이요법과 꾸준한 운동을 통해 체중 감량이나 탄력 있는 바디라인을 만들 수 있어도 선천적으로 작…
    리빙 2021-10-01 
    바다 건너 고국은 그야말로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대선 정국으로 치닫고 있어 보인다. 지난 20년 이상 동안 같은 정권이 두 번 이상 정권유지를 한 기록이 없다는 것은 우리 고국의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변화를 갈망하는 듯 보인다.과연 이번에 치러지는 대선은 어떤 결…
    회계 2021-10-01 
    통풍은 주로 엄지 발가락 관절이나 무릎관절이 빨갛게 부어오르고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증상으로, 심한 경우 관절의 변형을 일으키기도 하는 질병입니다.체내에 요산(Uric Acid)이라는 성분이 증가해서 요산결정이 관절이나 연골, 힘줄, 주변 조직에 침착되어 염증을 유발…
    리빙 2021-10-01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학창 시절 열심히 외웠던 공자의 말씀이 마음에 와닿을 때가 있다. 요즘이 그러하다. 배우고 익히니 기쁘고, 벗들이 찾아와주니 즐겁고,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엽지 않으니 군자는 아니어도 하루…
    문학 2021-10-01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단풍이 시작되는 가을입니다. 힘든 시기에 소소하게 재밌는 일상을 만들어 주는 것은 함께 먹는 ‘맛있는 먹거리’가 아닐까 싶습니다.오늘은 오랜만에 수산물로 주제를 정했습니다. 미국의 바다에서 여름부터 가을까지 많이 잡히는 생선 중에 일명 ‘아구…
    리빙 2021-10-01 
    우리는 종종 주식은 “어떤 종목을 사야 하나?” 부동산은 “어디를 사야 하나?” 라는 질문을 한다. 누구나 부자가 되기 위해 투자를 잘 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투자를 잘하는 것일까?우리는 누구나 하루 24시간이라는 중요한 시간 자산을 가진 투자자이고, 이…
    부동산 2021-10-01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