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 문화산책 ] 가을에 젖어서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1-11-26 11:06

본문

앞뜰과 뒤뜰에 가을이 가득하다. 주차장에 떨어져 마른 잎들이 여린 바람에도 사그르르 몰려다니며 마지막까지 함께 하고 싶나보다.

 

 달빛 타고 처마 밑에 내린 붉은 나뭇잎 

 철모르는 풀잎위에 살며시 앉아서 

 튼실한 씨 맺으라고 새벽잠 깨웁니다

 

 오솔길에 살풋 앉은 붉게 물든 나뭇잎 

 풀꽃마다 이슬단장 시키는 달님에게

 이제는 그만 쉬라고 손 흔들고 갑니다 

 

 김정숙, 동시조 ‘붉게 물든 나뭇잎’ 전문   

 

 11월은 계절이 가을이지만 절기로는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이 있다. 한국에서는 음력 기준에 따른 양력으로 11월 7일이 추운 겨울에 접어든다는 ‘입동’이었다. 

또 11월 22일은 많은 양이 아니지만 눈이 온다는 ‘소설’이다. 우리와 절기에 따른 기후가 다르지만 달라스에도 꽃이 피고 지고 열매 맺는 사계절이 있고 가을에 젖도록 고운 단풍들이 고맙다. 

 

 몇 해 전부터 지인댁 감나무에 달린 감이 가지채로 가을의 행복을 안겨주었다. 

올해도 하나같이 튼실한 감을 주렁주렁 단 감가지가 현관문 포치에 걸려 있었다. 두 손으로 겨우 들 정도의 무겁고 큰 가지 두개를 초록 끈까지 준비해서 매달아놓으신 꼼꼼한 정성! 별로 잘 해드린 것도 없어 부끄럽고, 감사하다. 

차에서 내리는데 보름달덩이 같은 감들이 먼저 눈에 띈다. 꽃처럼 곱게 단풍든 빨간 잎과 아직도 청춘인 듯 푸른 잎, 게다가 막둥이 잎처럼 여린 잎들까지 싱싱하게 감싸고 있다. 

달라스의 고은 노을빛 닮은 ‘빅맥’ 크기의 최 우량품 감들! 어찌 이리 탐스럽고 아름다울까. 담장이 무너질까 걱정될 정도로 주렁주렁 감이 달린 감나무 사진을 보내셔서 ‘작은 둥지’ 손님에게 보여주었다. “달라스에 사는 분이 맞느냐”면서 어찌 키웠느냐고 감탄을 연발하며 구글 검색으로 영양가까지 챙겨 읽어준다.

 

 10월 초에 진순을 보내고 뒷마당에 가기 싫었다. 그러다보니 야채밭이 거의 폐농이 되었다. 

파머스 브렌치로 이사 온 후 농부가 된 남편은 부지런히 체리, 라임, 무화과, 배, 백도, 천도, 포도, 단감, 홍시감, 대추 까지 골고루 심었다. 

올해는 풋대추 대 여섯 개 겨우 맛보았을 뿐, 블루제이, 모킹버드 등의 새들과 다람쥐들이 싹쓸이 했다. 그나마 작년에는 ‘가을나이 진순’ 덕에 단감 몇 개를 거두었지만 올해는 ‘완전노인 진순’을 영악한 새들과 다람쥐들이 모를 리 없잖은가. 

다람쥐와 새 쫓는 산탄총도 도심지에서는 불법이란다. “죽 쒀서 개준다”는 속담도 생각나고 노동의 대가와 물 값 등 본전생각이 나서 씁쓸했다. 

거름을 차로 사다 넣으며 10여 년 간 옥토를 만들어 과실수를 심었고 열매를 넉넉히 거둘 때가 되었나 싶었는데 ‘동식물 자연보호 우등생’이 된 셈이다. 수명 다 해 떠났지만 우리 진돗개들, 화랑, 진돌, 진순이 그립다.

 

지구촌에 재난과 역병이 기승을 부려도 산자는 살아남듯 바람 따라 와서 뿌리내린 해바라기가 여름내 꽃을 피우다가 말라버렸다. 

태풍이 몰아치자 굽어지고 휘어지고 꺾이고, 볼품이 없어도 힘들게 살아낸 삶이 대견했다. 씨라도 익으라고 지저분해도 그냥 두었다. 

비 온 후 부러지고 휘어진 가지에서 곁가지, 거기서 또 잔가지에 몇 개의 초록 잎이 나더니 그 사이에서 아기 손바닥 같은 막둥이 작은 꽃을 피어냈다. 

우람한 레드오크트리 가지 사이로 찾아주는 햇살 덕에 루비처럼 새빨간 보석을 촘촘히 달고 뽐내는 난디나 열매와 어울려서 황금빛을 자랑하다니! 멋지다. 이제 곧 씨가 익고 또 어디로든 가서 정착하고 다음 세대를 준비하겠지.

 

덕분에 가을에 젖어서, 30여년 이민자의 세월을 돌아본다. 해바라기 같다고 할까. 나름대로  주님만 보고 살아왔다. 

그럼에도 태풍, 폭우, 폭염, 한파, 토네이도를 겪으며 휘어지고 꺾일 듯 아슬아슬한 적도 있었다. 그 분의 말씀 밭에 뿌리 내린 삶을 살아내려고 가지치기도 당하며 잘린 가지에 아파하기도 했지만 오늘의 나를 있게 하심이 감사하다,

그런데 이 추수의 계절에 나의 영적 밭에는 어떤 열매가 얼마나 맺혔을까? 

지인 댁의 튼실한 감나무처럼 그분이 행복해 하실 열매를 맺은 거야?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고! 아직도 씨를 맺지 못한 부분들이, 열매 맺지 못할 언행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씨 맺을 계절인줄 모르는 철모르는 풀포기처럼 살지는 않았을까? 

풀포기를 깨우쳐주는 가을 잎에게서 배우며 마른가지의 늦둥이 해바라기처럼 ‘늦지 않았어!’ 다시 기도의 무릎을 꿇는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창세기 27:2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재테크- 주식농부 박영옥의 투자 10계명‘한국의 워런 버핏’이자 ‘주식농부’로 널리 알려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주식투자자 박영옥.그는 현대 투자연구소, 대신증권, 국제 투자자문 펀드 매니저를 거쳐 1997년 서른일곱의 나이에 교보증권 압구정지점장을 역임했다.20…
    부동산 2021-12-10 
    지난주 연방 하원에서는 $1.75 Trillion짜리 법안을 통과 시켰다.일단 하원을 통과한 공은 상원으로 넘어갔고 상원의원간의 합의로 어떻게 바뀔지는 아직 확실히 모르지만 올해 말까지는 어떤 형태로든 세법이 다시한 번 바뀔 공산이 크다.민주당 의원 전원의 찬성이 필요…
    회계 2021-12-03 
    잦은 복통과 설사? 과민성 대장 증후군일 수도!◎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란?미국 인구 중의 약 5,500만명이 과민성 대장 증후군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치료를 위해 매해 800억 달러 이상의 돈을 지출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성의 비율이 남성보다 많다고 합니다.과민성 대장…
    리빙 2021-12-03 
    언젠가부터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전화를 하다보면 이질감이 느껴지는 단골이슈가 있다. 여자들의 수다는 보통 아이들 이야기와 건강, 여행, 골프 등 소소한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이 대부분인데, 유독 한국 친구들은 부동산 이야기를 많이 한다.여기서 들으면 이십 몇 평 짜리 아…
    문학 2021-12-03 
    안녕하세요? 오늘의 주제는 한국인의 입맛에 가장 맛있다는 1등 횟감 ‘제주 활광어’로 정했습니다.글을 쓰기 전에 이번엔 어떤 음식을 소개드릴까 한참 생각하다가 ‘12월에 뭔가 특별한 음식이 없을까’라는 고심 끝에 제주도 활광어를 소개시켜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오늘의 …
    리빙 2021-12-03 
    Dallas-Fort Worth는 텍사스 주요 대도시 지역 중 3분기 주택판매 감소가 가장 컸던 것으로 통계되었다.판매량은 감소하였지만 부동산 중개인이 판매한 총 부동산 수량에서는 여전히 텍사스 주에서 1위를 기록하였다.텍사스 부동산 중개인 협회(Texas Realto…
    부동산 2021-12-03 
    1958년 서독 노이슈타트, 비가 몹시 내리는 날, 고등학생인 마이클이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구토하고 쓰러진다. 이러한 광경을 본 한 여인이 마이클에게 다가가 그를 진정시키고, 그의 집까지 데려다 준다.그 날 마이클은 진찰을 받았는데, 의사가 성홍열이라고…
    문학 2021-12-03 
    바다 건너 고국은 단계적 일상회복, ‘With Corona’를 도입한지 3주만에 하루 확진자 수가 3,000명 선을 돌파했다고 한다.이러한 확산세는 시간이 갈수록 위력을 더할 것이라는게 관측이고, 확진자 유행의 성격은 위드 코로나가 가져온 방역 완화와 그에 따른 사회 …
    회계 2021-11-26 
    앞뜰과 뒤뜰에 가을이 가득하다. 주차장에 떨어져 마른 잎들이 여린 바람에도 사그르르 몰려다니며 마지막까지 함께 하고 싶나보다.달빛 타고 처마 밑에 내린 붉은 나뭇잎철모르는 풀잎위에 살며시 앉아서튼실한 씨 맺으라고 새벽잠 깨웁니다오솔길에 살풋 앉은 붉게 물든 나뭇잎풀꽃마…
    문학 2021-11-26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오늘은 나라별 대표적인 액상소스 몇 가지 대해 말씀드려볼까 합니다.마켓에 가시면 우스터 소스라고 보셨을 것입니다. 한국의 오뚜기나 일본의 브랜드로도 이 소스를 찾을 수 있습니다만, 소스의 기원은 영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영국 약사였던 존 휠리 …
    리빙 2021-11-26 
    경제적 자유란 ‘각 개인이 자기 의지로 행동하면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뜻하는 말이다.돈(노동)에 얽매이지 않아도 생활에 지장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싫은 일은 안 할 수도 있고,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서 할 수 있는 상태. 상상만 해도 멋진 삶이다.그런데 돈…
    부동산 2021-11-26 
    보험제도가 없는 나라는 없지만 미국처럼 보험제도가 잘 발달된 나라도 흔치 않다. 그러므로 미국에 살면서 배우고 알아야 할 것이 많지만, 그 중에 특히 보험은 세금, 융자 등과 더불어 일상생활과 사업에 가장 필수적인 것들이다.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험에 대해 간접 혹은 단편…
    리빙 2021-11-19 
    요즘 가장 흥미로운 미국 주식은 전기차 주식일것 같다.아마존과 구굴이 공동투자했다고 알려진 전기트럭 전문업체 Rivian은 상장하자마자 이틀 사이에 거의 50%의 폭등을 기록했고, 또 다른 전기차인 루시드는 이미 1년치 이상 주문이 있고, 이 회사 역시 하루 사이에 2…
    회계 2021-11-19 
    운동하고 돌아오니 새벽부터 출사 나갔던 남편이 돌아와 있었다. 아침으로 간단하게 먹을 빵을 사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초봄부터 Aspen으로 단풍 구경 갈 계획을 열심히 세웠었다.내년으로 미루자는 내 제안에 할 수 없이 포기하고 재작년에 다녀온 오클라호마와 알칸…
    문학 2021-11-19 
    안녕하세요. 2021년 11월 중순입니다. 약 2달 후에는 2022년이 옵니다. 예전에는 2022년이라고 하면 하늘에 자동차들이 날아다닐 줄만 알았는데, 그와 비슷하게 ‘드론’이 날아다닙니다.과학의 발전은 정말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스마트폰 없이는 살기 힘든 세…
    리빙 2021-11-19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