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짧은 글 릴레이 ] 김수자 에세이 (4) - 17년이나 일했는데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2-01-21 11:14

본문

“날씨가 후덥지근하죠?”

 

“하와이 날씨죠. 그래도 바람이 불어서 다행이예요.”

 

K여사는 하와이에 와서 처음 만난 이웃이다.    ‘이 분은 한국사람이구나’하고 금방 알아보았는데 뽀글뽀글한 파마머리, 시원한 모시느낌의 잠방이, 후덕스런 얼굴 등 외면상의 느낌도 있었지만 한국사람이 한국사람을 알아보는 직감이었다.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붙였을 때 그 분도 “에구, 한국 분이셨구나” 했으니까. 그 분도 내가 오락가락하는 것을 보았던 거다. 세탁실에서, 엘리베이터에서, 우편함 앞에서 몇 번 만나는 사이 누가 물어서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그냥 줄줄이 쌓인 이야기가 나왔다.

 

“40년 전 올망졸망한 새끼들 데리고 하와이 공항에 떡 도착했는데 기가 막히더라고요. 영어는 한 마디도 못하지, 먹고는 살아야지, 미국 가는 게 무슨 벼슬하는 줄 알았는데, 속았다는 느낌이었죠. 처음 시누이 소개로 와이키키에 있는 호텔에 취직을 해서 한 몇 년 하니까 요령도 생기고 말도 알아듣고 적응을 해 나가고 있었는데, 마침 우리가 사는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일식집에 누가 소개를 해서 일을 하게 됐지요. 남들은 식당일이 어렵다고 하는데 나는 그게 호텔 일 보다 수월하더라고요. 일본 사람들하고 일하는 게 까다로워서 마음고생은 했지만 수입도 좋고 해서 17년이나 했어요.”

 

“스시 잘 만드시겠구나.”

 

“스시는 주인 아저씨가 만들고 나는 볶음국수 전문이죠. 말은 그렇지만 청소도하고 설거지도하고 별 일 다 했어요. 가족끼리 하는 식당이라…”

 

“힘드셨겠구나.”

 

“일하는 건 괜찮은데 사람 무시하는 꼴은 정말 참기 어려웠어요. 그 것들은 잔소리도 소근소근 해요. 앞치마를 갈이 입어라, 머릿수건을 잘 써라, 손을 씻어라 한답니다. 그러면 나는 속으로 ‘에구, 한국 여자들이 얼마나 깨끗한데, 쓸고 닦고 청결이라면 앞 장 선다, 이 것들아’ 하고는 그냥 참고 일을 했지요. 일본인들은 예의 바르고 남에게 피해 안 끼치고, 검소하고 상냥하고 뭐 그런 사람들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아주 무서운 사람들이예요.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는 깔봐요. 겪어봐야 알아요. 그 것들은” K 여사는 일본인들을 향해 ‘저 것들’, ‘이 것들’이란 말을 썼다.

 

“글쎄, 어느 날 바쁜 점심시간도 지나고 나도 식사를 하려고 된장국을 끓이고 있었어요. 마침 쓰다 남은 파 한 뿌리가 있어서 그걸 송송 썰어 넣었는데, 아, 그걸 사장이 본거예요. 그리고는 나에게 정색을 하고 묻는 거예요. ‘그 파 네거냐. 네가 사 온 파냐’고요. 내가 어이가 없어서 쳐다만 보고 있었지요. 내가 그 집에서 17년을 일 했어요. 그깐 파 한뿌리 된장국에 넣었다고, 뭐, 그게 네 거냐고? 나도 내 것 아니면 절대 손 안대는 사람인데. 나를 도둑 취급해? 지금 생각해도 분해요.”

 

“그러셨군요. 그래서 항의를 했나요?”

 

“속으로 불이 났지요. 나는 참는 일 밖에 못하는 줄 알았는데 그때는 ‘에잇, 나쁜 사람들. 의리도 없고 도리도 모르는 이기주의자들’ 하고는 그냥 ‘탁’ 하고 침을 뱉고 나왔지요.”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 ‘태양의 제국’이란 영화가 있다. 오래 전에 본 영화인데, 1941년 일본과 중국이 전쟁을 치르는 즈음 상해에 살던 한 부유한 영국인 가정의 모습이 나온다.

 

이 가정의 요리사는 겉으로는 공손하면서도 속으로는 주인에 대한 적의에 차 있어서 음식을 내갈 때는 침을 탁 뱉아서 식탁에 올려놓는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은 사람을 죽이는 장면보다 더 끔찍했던 기억으로 떠올랐다.

 

“침을 뱉았어요? 어디에, 음식에?”

 

한 식당에서 17년이나 함께 일해왔으면 한국 사람들은 한솥밥 먹는 사람, 내것 네것 없는 관계, 언니 동생 형님 하며 친척보다 더 가까워지는 관계가 된다. 왜 오랜 시간을 함께 해도 일본인들 하고는 이런 관계가 되지 않을까. 그 무던해 보이는 K 여사가 얼마나 화가 났으면 탁 침을 뱉고 그만 두었을까.

 

우리 옆집도 일본인, 그 옆집도 일본인, 이 아파트에는 일본이들이 과반수 이상이 살고 있다. 그들은 늘 상냥하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언제나 한 발 뒤로 물러나 양보한다. 하얗게 분을 바르고 빨갛게 입술연지를 찍는다. 단정하다. 대충 입고 대충 찍어바르는 한국 부인들보다 긴장미를 보인다. 

 

K 여사 말은 “저것들은 속을 모른다”는 것인데 피차 멀리 모국을 떠나와 하와이에 살고 있으면 서로 변할 만도 한데 한국인과 일본인이 갖고 있는 DNA는 변할 수 없는 모양이다.

 

K 여사의 ‘파 한 뿌리’로 상처받은 마음도 그리 깊은데, 대한민국 사람들이 그 동안 일본에게 받은 총체적인 감정은 헤아릴 길이 없다. 속을 알 수 없는 그들, 정 없는 그들 이지만 그러나 함께 살아야 하는 그들이기에 대~한민국 사람들이 보다 넓은 마음으로 그들을 대해야 할 듯 하다. *

 

 

 

김수자

하와이 거주 / 소설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허리나 골반, 발목, 무릎이 아픈 환자들을 치료하다 보면 종종 그분들이 평발인 경우를 알게 됩니다.물론 위에 언급한 증상들이 모두 평발 때문에 생기는 건 아니지만, 발에 생긴 발 안정성이 발목, 무릅, 허리, 골반 등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 …
    리빙 2022-02-04 
    연탄 부뚜막에서 구워주시던 할머니표 ‘따듯한 운동화’가 그리운 계절이다. 이미 까마득하게 지났지만 이맘때만 되면 마음시린 병이 도진다.새벽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깊고 푸른 암청색 하늘에 아기의 첫 손톱을 자른 것 같은 가느리하고 예쁜, 하얀 손톱달이 떠있다. 한 뼘 거리…
    문학 2022-02-04 
    안녕하세요! 아침 날씨가 쌀쌀한 2월입니다. 일교차가 10년 전에 비해 더욱 편차가 크다고 합니다. 그말은 즉 우리 몸의 면역이 쉽게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인데요, 우리 몸은 면역력이 약해지면 각종 세균이 몸에 더 쉽게 침투하여 세균과 싸우다가 지기도 하고 버텨내기도 …
    리빙 2022-02-04 
    부와 재테크에 폭발적인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지금 다들 한 번 쯤은 ‘부의 추월차선 (The Millionaire Fastlane)’이라는 책의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지금까지의 ‘부자되기’ 책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절약, 금융상품, 부동산 등 수십년을 노력해야 빛…
    부동산 2022-02-04 
    드디어 2021년도 개인 세금보고가 지난 월요일인 1월 24일부터 시작됐다. 2021년에는 2월 12일부터 Internal Revenue Service에서 접수를 시작한 것에 비하면 작년보다 무려 3주가까이 먼저 시작하는 것이다. 작년에는 CAA(Consolidated…
    회계 2022-01-28 
    딜러에서 자동차를 구입하면 자동차 보험증서 제시를 요청받게 된다. 그러므로 새 자동차를 구입한 사람은 자동차를 위하여 개인용 자동차 보험을 구입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비즈니스에 사용하기 위해 자동차를 구입했을 때는 어떻게 다른가?상업용 자동차를 개인용 자동차 보험으로…
    리빙 2022-01-28 
    안녕하세요! 요즘 시기는 밖에 나가서 음식을 먹는 일이 아무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줄었을 것 입니다. 상식적으로 집에서 식사를 더 많이 하면 체중이 감소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 통계에 의하면 코로나 19 이후 성인 평균체중이 약 3LB 정도가 더 증가했다고 합니다.실…
    리빙 2022-01-28 
    케이티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 잭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그녀는 희귀병인 색소성 건피증(XP)에 걸려서 햇빛을 볼 수가 없었다.즉, 이 병은 햇빛이 피부에 닿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항상 집에만 있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기타와 노래를 부르면서 생활…
    문학 2022-01-28 
    반만 생각하고 반만 연연하자“꽃이 또 한 송이 피었네!”요즘 우리 부부는 꽃을 보는 낙으로 사는 것 같다. 퇴근하고 돌아오니 먼저 온 남편이 화분을 들고 쫓아왔다. 주황색 꽃이라도 삼킨 듯 얼굴과 목소리에 온통 화색이 돈다.우리가 보내는 사랑과 호감의 눈빛에 꽃은 주저…
    문학 2022-01-28 
    요동친 2021년 주택시장이 남긴 기록2019년 12월 중국 우한발 코로나바이러스가 처음 발생한 이후 2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변이되어 전파되는 바이러스로 인해 미국은 물론 전 세계는 생존과 경제의 위협과 공포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팬데믹 상태에 있다.전염병이 지구상…
    부동산 2022-01-28 
    이번 주 휴람 의료정보에서는노태우 전 대통령이 앓았던 질병으로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다계통 위축증에 대해 휴람 의료네트워크 세란병원 신경과 박지현 부원장의 도움을 받아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파킨슨병보다 증상 심하고 악화 속도 빨라, 치료법 없어 증상 늦추는 방향으로…
    리빙 2022-01-21 
    8월 어느 날, 한 청년이 손에 설문지를 들고 집들을 방문하고 있었습니다. 깔끔한 양복에 넥타이까지 맨 청년은 미국 정부를 위해, 설문을 하고 있었지만, 날씨는 덥고, 마음은 짜증도 나고, 편하지가 않았습니다.현관문을 노크할 때마다, 그를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 때문이었…
    교육 2022-01-21 
    바다 건너 고국도 제13월의 월급이라 불리는 이곳의 세무 보고에 해당하는 연말정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이곳과는 다르게 직장인 경우는 소속회사에서 연말정산을 진행한다고 한다. 모든 납세자의 공통 관심사인 도대체 어떻게 해야 더 돌려받을 수 있을지가 가장 관심 사항은 이곳…
    회계 2022-01-21 
    “날씨가 후덥지근하죠?”“하와이 날씨죠. 그래도 바람이 불어서 다행이예요.”K여사는 하와이에 와서 처음 만난 이웃이다. ‘이 분은 한국사람이구나’하고 금방 알아보았는데 뽀글뽀글한 파마머리, 시원한 모시느낌의 잠방이, 후덕스런 얼굴 등 외면상의 느낌도 있었지만 한국사람…
    문학 2022-01-21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벌써 22년 1월의 마지막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매년 새해가 되면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작년보다 나은 모습을 위해 저마다의 각오를 다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발전된 모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기초가 탄탄해야 한다는 점…
    리빙 2022-01-21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