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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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혼자 동네 한 바퀴씩 돌던 남편이 일요일 아침만 되면 나를 일으켜 세우느라 해가 오르기 전부터 법석을 떤다. 뜨거워지기 전에 공원 산책을 하자는 것이다.
40여 일이 지나도록 그렇다 할 비도 내리지 않고 연일 세 자리 숫자 기온이 이어지면서 심신의 진이 빠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을 고쳐먹고 있던 참이었다.
조금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따라나섰다. 언제부턴가 내 삶은 일상적인 타성에 젖어 생기와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기온 탓이라고 하기엔 너무 궁색한 변명이려나. 지난 일 년, 내 삶은 무기력하고 황폐했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면서 자주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살아온 삶을 부정당한 심정으로 어두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제대로 살고는 있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했다.
자책으로 일그러진 고단한 일상이었다. 그때마다 나로 인해 내 가족이 생기를 잃을까 나를 다그치기 일쑤였다. 억지로 살아내야 했다. 채워지는 게 아니라 빠져나가는 통장 잔고처럼, 부족함만이 채워지는 마이너스 통장 같은 삶이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공원 주차장은 차들로 꽉 차 있었다. 두 바퀴째 돌다가 겨우 자리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차 문을 열자 더운 열기가 온몸을 감싸며 달려든다.
산책로 역시 북적였다. 모두 같은 마음으로 서둘러 나온 모양이다. 이름도 모르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이다. 오늘 하루치의 신선한 감동은 공원에서 채우기로 한다.
그러려면 가진 게 별로 없는 내 생기도 꺼내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밝게 인사를 한다.
겨우 5분 지났는데 지친다.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언덕을 오르면서 걸음이 굼뜨고 느려지기 시작했다. 숨이 찬다. 크게 소리 내 심호흡하고 보폭을 맞추려 발가락에 힘을 준다. 앞서가는 남편을 향해 속도를 좀 낮추라고 숨찬 소리를 내 본다. 궁색한 소리다.
나무는 자신을 포기하지도 꺾지도 않는다. 가지 많은 나무가 바람 잘 날 없다지만, 스스로 가지를 버리고 그늘을 접는 나무는 없다.
산책로 중간쯤에서 난 늘 두리번거린다. 옹이로 남아있는 나무의 굳어버린 심장을 찾는 것이다. 습관이 되었다. 엄마 돌아가신 그해 겨울이었으니 4년 전이다.
나뭇잎을 다 떨군 채 길가에 서 있는 나무가 그날따라 눈에 들어왔다. 매번 그냥 지나쳤던 그 길, 그 나무였는데 왜 하필 그날 내 눈에 들어온 것인지 모른다. 내가 세상에 있기 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텐데. 생기가 다 빠져 어두컴컴해진 몸으로 길을 위해 길이 잘린 나무는 울음을 참고 있었다. 나무는 떠남을 기억하려는 듯 진액을 흘리며 굳어가는 심장을 파 보이고 있었다.
내 엄마가 그렇게 서 있었다. 이유도 모른 채 소식 없는 나를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에 미치자 울음이 터졌었다.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왜 몰랐을까.
한때 엄마를 원망했었다. 아들밖에 모르던 엄마는 막내인 나를 참 많이 서운하게 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나니 부모 사랑 못 받고 자란 막내가 제일 안쓰럽다던 친구의 말이 시시때때로 생각났다. 딸 부잣집의 맏딸인 그 친구는 막내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엄마가 담근 간장게장은 정말 맛있었다.
어릴 적 얘기다. 아마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니 그래도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다. 저녁상에 올라온 간장게장을 보고 나는 먹기 좋은 다리를 덥석 집었다.
그걸 본 엄마는 그런 건 오빠들 먹게 하라고 눈치를 줬다. 그땐 뭐가 그리 서러웠는지 울면서 수저를 놓고 소리쳤다. “엄마도 여자면서 왜 그래? 시집가면 남편 챙기고 자식들 챙기느라 좋은 것은 입 근처에도 못 갈 거라는 거 알면서 나도 오빠들과 똑같이 엄마 자식일 때 엄마라도 챙겨줘야 하는 거 아냐?” 참으로 당돌했었다. 그까짓 게 뭐라고. 그 뒤 엄마는 간장게장을 상에 올릴 때마다 내 눈치를 보며 노란 알이 꽉 찬 게딱지를 내 밥 위에 올려주곤 하셨다.
어쩜 죽는 날까지 엄마는 막내인 나를 많이 의지했던 것 같다.
돌아가시기 일 년 전부터 나와 엄마의 관계가 소원했었다. 매일 주고받던 퇴근길의 대화가 줄어들었다. 비가 오거나 굳은 날이면 으레 “밥은 먹었어?”로 시작하던 전선을 타고 넘던 대화가 끊어졌다.
그건 나의 일방적인 단절이었다. 오빠한테 서운했던 나는 엄마를 원망했다. “왜 오빠를 불러서 야단치지 않는 거야? 그런 건 엄마가 나서줘야 하는 거 아니야?”라며 서운해했다. 다 큰 자식을 그것도 흰머리 숭숭한 자식을 꾸짖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이제야 알겠다.
옹이, 이젠 그 나무를 보면 내가 보인다. 낮달처럼 늙어갈 내가 보인다.
나는 나만의 보폭으로 걸으면 된다. 굳이 같이 가자고 숨찬 소리로 잡아끌지 않아도 된다. 보폭이 맞지 않는다고, 서로의 삶을 나누지 않는다고 따질 일이 아니다. 억지로 끌려다니는 것은 컹컹 짖어대는 개들의 몫이다. 발끝까지 혀를 내밀고 침을 뚝뚝 떨어트리며 목줄에 매달려가는 개들의 삶인 것이다.
진정 올라와야만, 그 자리에 서 봐야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두가 한때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의 궁색함도 화려함도 한때. 결국 지나가리라. 믿는다.
옹이 / 김미희
길 쪽으로 길을 내다
길을 위해 길이 잘린 가지는
한없는 단절의 그 자리에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영원을 위해
낙관을 찍었다
슬픔에도
총량의 법칙이 적용되는 무게 있어
한 발도 떼지 못하고
바라만 보며 굳어있는 세월에
한때는 가장 여린 새순이었음을 기억해 주려
낮달은
잘려 나간 어느 세월 그 두께로 하늘에 있다
떠나므로 인해 남겨진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영원을 위로하듯
굳어가는 심장을 파 보이며
검붉은 옹이는 아직
절단의 진액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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