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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 문학에세이 ] 함께 꾸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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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2-05-1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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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더블트리 바이 힐튼 호텔에는 한인 여성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었다. ‘2022 세계 여성위원 컨퍼런스’라는 꽃장식을 한 핑크색 배너가 여기저기 세워져 있고 가슴에 커다란 명찰을 단 여성들은 밝은 모습으로 서로서로 안부를 챙기며 얼굴을 익히느라 바빴다. 봄 소풍이라도 나온 듯한 달뜬 목소리는 노래를 부르는 듯 한 옥타브 올라가 흥겨웠다. 이렇게 많은 여성이 모인 자리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것은 결코 소소한 일상이 아니었다. 출발지는 다르지만, 같은 이유로 모여든 소풍. 장소를 찾아가거나 사람을 찾아 나선 소풍이 아니라 마음을 보태고 뜻을 모으기 위해 모여든 우리였다. 우리가 모였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가슴 속에 한가지 생각만 담고 모였다. 

 

나도 3일간 일상을 미련없이 접었다. 두 달 전에 갑자기 잡힌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주최, 달라스 협의회가 주관하는 ‘2022 세계 여성위원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여성이 열어가는 새로운 한반도”를 주제로 4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2박 3일간의 컨퍼런스에는 미주 여성위원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아시아 태평양,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 총 80명의 여성 자문위원이 함께했다. 

달라스 협의회에서는 3명의 자문위원이 참석하게 됐다. 그중의 한 명으로 내가 참석하는 행운을 얻었다. 이런 자리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걱정되었지만, 배우고 교류하리라는 마음가짐으로 부담감을 줄일 수 있었다.

 

행사 두 주 전부터 사무처에서는 참가자 단체 카톡방을 개설해 행사를 위한 연락망이 가동되었고 총 8개분임으로 나뉘어 분임 별 톡방을 개설하고 토의가 시작되었다. 

내가 속한 곳은 2분임이었다. 2분임 위원으로는 토론토, 마이애미, 북유럽, 중미 카리브, 엘에이, 보스턴, 워싱턴, 휴스턴 그리고 나를 포함해 10명으로 정해졌다. 최우선으로 할 일은 분임장 선출이었다. 

다행히 토론토 협의회의 이정훈 위원이 최연장자임을 선언하고 자원해 쉽게 분임장을 결정을 할 수 있었다. 뭔가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시작부터 좋았다. 

 

 4월 29일 금요일 오후 5시, 오리엔테이션과 참석 자문위원들의 소개로 출발한 컨퍼런스는 정말 화려했다. 

그 자리가 아니었으면 생전 만날 수도 없었을 사람들. 낯설지가 않았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희망을 품은 동지라서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오늘만, 아니 그 순간만 사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열정은 도저히 나누어 쓸 수 없다는 듯이, 절대 분산해서 투자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열정이라는 듯 에너지가 넘쳤다. 

 

둘째 날은 아침 9시부터 이미경 여성부의장의 “평화의 한반도를 위한 여성 자문위원의 역할”을 주제로 한 기조강연으로 시작되었다.

 “혼자 꾸는 꿈은 꿈에 그치지만, 같이 꾸는 꿈은 우리의 미래”라는 말에 밑줄을 긋고 별표를 세 개 달았다. 

하지만, 한일협정이 1965년에 체결되면서 ‘여성에 가해졌던 무자비한 폭력, 약탈, 모욕’은 협상 테이블에 오르지 조차 못했다며 평화협상 테이블에 여성들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뼈에 새길 대목이라는 말에 몸이 세게 떨렸다. 

 

 “세계 여성위원 네트워크 구축 방안”과 “지역별 여성위원 주관 사업, 활동 공유” 그리고 “여성이 주도하는 평화통일 사업 아이디어”라는 주제로 두 차례에 걸친 분임 토의도 있었다. 조용히 함께하며 많이 배우겠다는 내 생각은 잘 들어맞았다. 

19기와 20기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막연하기만 했던 생각들이 조금씩 틀을 잡으며 색을 입혀가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특히 DMZ를 골프장으로 만들어 남북 골프대회를 개최하겠다는 등의 꿈 같은 스피치도 좋았지만, “일상에서 실천하는 평화 공공외교 사례”를 통해 실천적인 모델을 제시한 평화 스피치들에 감동을 하고 용기를 얻었다.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여성위원들의 활동 방향을 공유하고 공공외교 추진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네트워크 형성 방안에 대한 논의는 계속 이어지고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끝으로 “20기 여성 자문위원 역할 및 활동 결의문” 낭독과 모두 손을 맞잡고 “우리의 소원” 합창으로 2박 3일의 소풍은 끝이 났다. 

아쉬움은 여기저기서 서로를 응시하는 뜨거운 마음으로 또, 다시 만나자는 말들로 대신했다. 

아련하게 간직했던 희망을 공유하고 아주 당연한 꿈을 함께 꾸며 꿈은 함께 꾸면 미래라는 말을 공유한 사이가 되었다. 우리가 같이 있는 이유가 발전하고 세밀해지는 것을 느꼈고 하나의 이유가 거대해지고 증식되리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여성은 물이다.”라며 김원영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물의 리더쉽에 대해 언급했다. 물은 생명의 기원이다. 물은 생명을 키우고 재창조한다. 

물은 부드럽고 온화하지만, 때로는 강하고 날카롭다. 스며들고 채우면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세계 각지에서 물방울들이 모여 강물이 되는 것을 보았다. 

출렁이고 일렁이며 스미고 채워지는 것을 보았다. 

 

내 마음의 평화도 만들기 힘들어 가끔 아무 생각 없이 멍때리는 나와는 다른 사람들, 그들의 생각들을 엿보면서 내 기억의 상자를 조금 채울 수 있어 행복했다. 

별은 같이 바라보아야 더욱 빛난다고 한다. 꿈도 그렇다.

 

소녀상  / 김미희

 

이제야 앉았습니다


무릎 가지런히 세우고

버선발도 모았습니다


앙다문 어금니

풀리지 않는 주먹이지만

등을 세우고

허리를 폈습니다


뜯기었던 옷고름 다시 매고

단발머리도 가지런히 빗어 내렸습니다


검은 그림자는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햇빛 아래 앉았습니다


이제야


김미희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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