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만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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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겨울로 떠나려고 오늘도 수선을 떱니다. 날은 점점 더 일찍 어두워지고 무성해 그늘도 짙었던 앞마당의 물푸레나무는 서둘러 옷을 벗느라 찬바람을 자꾸 불러들입니다. 마당 가득 쌓인 낙엽은 그 바람에 어쩌지 못하고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며 마당만 어질러 놓고 맙니다.
다 저녁때 한국에 있는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얼굴 볼 날도 며칠 안 남았다며 내 스케줄을 다시 확인합니다. 한국행 비행기 표를 예약할 때만 해도 까마득했는데 벌써 떠날 날이 내일모레로 다가왔습니다. 두 주를 잡았지만, 오고 가는 날을 빼면 두 주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거기다 평통 미주지역회의 3박 4일과 1박 2일 건강검진을 빼면 겨우 일주일이 될까 말까 한 일정입니다. 친구는 남편이 휴가를 주었다며 금요일 오후 반차를 내고 올라와 나와 함께 주말을 보내겠다고 신이 났습니다. 그 친구는 항상 그랬습니다. 늘 기다려주고 함께해 주었습니다.
오늘도 전화해서 하는 첫 마디가 ‘미희야 우리는 꼭 만나야 하는 운명인가 봐.’ 같은 반이 아니었어도 하굣길에 늘 기다려 주었습니다. 가방을 오른손에 잡는 내 버릇으로 그 친구는 왼쪽 어깨가 내려앉았을 정도로 배려가 깊은 친구였습니다. 시간을 요리조리 쪼개서 써야 할 판이지만,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그러자고 선뜻 대답하고는 머리를 굴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며칠 더 묵으면서 여유를 가질 수도 없고, 잘못하다가는 고향에도 못 가고 돌아와야 할 것 같은 예감에 벌써 마음이 불편합니다. 가고 싶은 곳을 가기는커녕 보고 싶은 얼굴들도 못 볼 것 같아 아예 연락도 못 하는 상태입니다. 토요일마다 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해야 하고 한국에 가면 연극 두세 편은 꼭 봐야 하는데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연극을 하는 친구가 공연 스케줄을 알아본다고 했으니 두고 봐야겠습니다.
30년 만에 친구들을 만났던 2016년 겨울이 생각납니다. 그해 2월 ‘늙은 부부 이야기’ 연극 공연차 시애틀에 갔을 때였습니다. 새벽에 한국에서 걸려 온 전화, 모르는 번호라서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 받았는데 그게 바로 휴가 내서 올라온다는 친구였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YTN 뉴스 보는 게 일상이던 친구는 68세 이점순 할머니로 분장한 짧은 인터뷰 영상에서 나를 보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구글링해서 기사를 찾아내 기사에 실린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던 것이었습니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민 초기 몇 년은 열심히 편지도 쓰고 전화해서 가끔 목소리도 들으면서 지냈는데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바쁘게 살다 보니 어느 순간 연락이 끊어진 줄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정말 우연히 그것도 뉴스 채널에서 친구가 내 모습을 알아보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날부터 나는 잊고 살았던 세월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해 겨울 한국에 나간 나는 잊고 있었던 친구들과 재회했습니다. 내가 묵고 있는 좁은 호텔 방 좁은 침대에 네 명이 엉겨서 밤샘했고 또 다른 팀의 친구들은 여럿이어서 아예 친구 집에 모여 옛날이야기로 통밤을 새웠습니다.
한국에 갈 때마다 이상하게 꼭 부산 해운대는 다녀오곤 했습니다. 연고도 없는 데다 딱히 추억이 있던 것도 아닌데 혼자서라도 꼭 다녀오곤 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보고 싶은 친구가 그것도 요리조리 수소문해도 찾을 수 없었던 친구가 바로 해운대에 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해운대 모래사장에서 자석으로 나를 끊임없이 끌어당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연고도 추억도 없는 내가 그 먼 부산 해운대를 찾아가 돼지국밥에 소주 한잔으로 가슴을 데우고는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던 것이었습니다.
2016년, 그해 겨울 그 친구도 수소문 끝에 찾았습니다. 서울 숙소에 짐을 풀고 그 길로 마지막 열차에 올라 친구에게 카톡을 날렸습니다.
부산역에 내리니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30년이 지났건만 우리는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았습니다. 둥근 안경을 쓰고 활짝 웃는 모습이 예전 그대로였습니다. 우리는 옛날처럼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그 밤에 해운대를 향해 걸었습니다.
울다 웃으며 또 소리쳐 서로를 부르면 큰 소리로 대답하며 30년의 벽을 탕탕 허물었습니다. 24시간 영업하는 복집, 따뜻한 마루에 앉아 지난 세월을 풀어 넘치게 잔을 채우고 서로를 담아 마셨습니다. 출근길에 해장하러 온 손님들한테 떠밀려 나온 우리는 해운대 모래사장에 누워 푸른 하늘을 끌어안고 밝아오는 날을 맞이했습니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문예지에 실린 내시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확실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꼭 나일 거라 믿었다고 했습니다. 열심히 사는 나를 응원했다며 밤새 씩씩하던 친구는 소리 내 울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났다며 내가 한국에 오면 둘이서 꼭 마중 나오겠다고 30년 전에 온 친구의 마지막 편지에 그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내가 너무 늦게 오는 바람에 좋은 사람을 만날 기회를 영영 놓쳐 확인할 길이 없지만, 정말 많이 행복했다고 합니다. 30년 동안 그 친구는 좋은 사람과 결혼했고 딸과 아들, 두 아이를 낳았고 미국에 와서 잠시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부산에 터를 잡았답니다.
두 해 전에 암 투병 중에 영영 떠난 사람이 그 좋은 사람이 너무 그립다고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친구는 너무 오래 참았다고 말했습니다.
또 오래오래 참고 있을 눈물꼬를 터주러 가려고 합니다. 아직 내가 가고 있다는 말은 안 했지만, 초강력 자석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으니 그때처럼 부산행 마지막 열차에 올라 내가 가고 있다고 그 옛날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으라고 급전을 보내야겠습니다.
단 며칠이라 해도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은 내게 있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떠나는 시간이 길수록 미리 처리해야 하는 일도 많아 떠나기 전에 미리 지치고 맙니다. 가을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습니다.
가을비 / 김미희
조용히 내리는 비를 바라보다가
정말 멍청히 바라보다가
며칠 전에 노래방 갔던 일 생각이 났네
즐겨 부르던 노래라
부를 때마다 자신이 붙던 18번 나의 노래 듣고 싶다며
'마야의 진달래꽃'을 올려놓은 친구는
벌써부터 지긋이
자박자박 내리는 소리를 그려보고 있는 게 분명해
내 딴 최상의 목청이라 싶게 뽑았는데
이를 어쩌나
뒤집힌 목소리에 스탑! 스탑을 걸고 말았네
아직도 그늘 싱싱하고 창창한 젊음인 줄 알고
휘두른 붓이 뚝 부러지고
숨어 있던 부끄러움 '김수희의 너무합니다'를 히잡 삼아
얼굴 감싸고 나왔지
나도 가을이니까
조용히 가을비가 되어야 마땅해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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