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선물이 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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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할머니라니. 요즘 나는 할머니 노릇 하느라 바쁘다. 엊그제는 고모할머니 어제는 이모할머니 오늘은 작은할머니다.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는데 어느새 할머니 소리에 익숙해지고 말았다. 난 엄마 노릇도 제대로 못 하는 거 같아 ‘엄마’ 소리에도 어색해서 진정 엄마가 맞는 걸까 아직도 의심스러울 때가 종종 있는데. 언제 이렇게 된 걸까. 멋쩍고 또 어렵다. 행동거지도 부자연스럽다.
할머니 소리 듣다 보니 이렇게 늙어가는 건가 싶은 게 억울하기도 하고, 아~ 이젠 빼도 박도 못하는 세월이 내게도 왔구나 싶은 게 난감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다.
고모이고 이모이던 때가 좋았다. 그땐 세상의 모든 조카는 마냥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였으니까.
새해가 되면서 나를 이모라고 부르는 조카가 식구들을 데리고 인사차 들렸더라며 남편이 사과 상자를 들고 퇴근했다.
이모는 너무 바빠서 방해될까 싶어 이모부한테 들렸다고 한다. 해도 바뀌었으니 어른 노릇은 해야 할 것 같아 마음먹고 어제는 저녁을 같이했다. 조카는 막 고등학생이 된 아들과 아홉 살이 된 딸,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제 몫을 다하느라 어느새 둥글둥글한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안쓰러웠다.
부모와 함께 이민 길에 오르기 전, 우리 집에 와서 방학을 보낸 적이 있는 조카는 그때 일이 생각나서 남편한테 얘기했더니 “가자, 가서 얼굴 뵙고 오자.”며 남편이 앞장서는 바람에 이모부한테 들렸다고 한다.
그때도 나는 뭐라도 해줘야 하는 성격이었나 보다. 생각해보니 극성이었다. 방학 때 다니러 온 조카에게 운전면허증이라도 따게 하려고 다들 자는 한밤중에 조카를 끌고 나가 운전 연습시켰던 게 생각나나 보다. 처음 먹었던 멕시칸 음식도 생각나는지 그때가 좋았다며 자꾸 눈시울을 붉힌다.
그래서 첫 경험이 중요한 것 같다. 나를 작은 엄마라고 부르는 조카도 내가 막 결혼하고 미국으로 왔다가 일 년 뒤에 한국에 다니러 가며 선물로 줬던 미키마우스 잠옷이 기억난다고 했다.
벌써 40년이 지난 일인데, 아마 처음 가져본 잠옷이어서 그런 모양이다. 별로 잘해준 것도 없는데 좋은 기억들을 가지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잦은 출장으로 집을 비우는 조카사위는 많이 야위어 있었다.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고 고생한다고 생각하니 안쓰럽고 기특했다.
긴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을 보니 조카는 마냥 좋은가 보다. 좋아 죽겠다는 얼굴로 자리에 앉을 때부터 조잘조잘 말이 많다. 원래 말이 많지 않았던 거 같은데 중년이라 그런가 싶기도 한 게 짠하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내 편인 줄 알고 마냥 좋았을 때. 무슨 말을 해도 좋았을 때. 짜증내고 화내고 툴툴대고.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안 해주면 서운해서 화내고. 그냥 눈치로 다 알아차려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무언으로 요구하고 억지 부렸던 때. 왜 나랑 똑같은 생각을 못 할까 하는 생각에 미치도록 억울해서 자는 사람 억지로 깨워 앉혀놓고 하소연했던 때. 나랑 지문이 일치해야 할 것 같은 사람이 선뜻선뜻 낯설어질 때의 그 느낌. 나는 다 알기에 그 시간을 지나서 왔기에 보고 있으려니 코끝이 시큰해졌다.
작년 말에 한국 갔을 때의 일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인형 하나가 통통통 뛰어와서 안겼다.
두 둘이 막 지난 녀석은 나에게 ‘고모할머니’라고 부르는 유일한 녀석이다. 처음 보는 녀석이 쏙 들어와 안기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어미 아비를 쏙 빼닮은 녀석이 얼마나 예쁜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제 막 말문이 틔었다는데 과거와 현재를 구분해 말을 하는데 너무 황홀해서 나는 평소보다 두 음계쯤 높인 목소리로 아이를 응대했다.
어색한 내 행동을 혹시 아이가 알아차릴까 봐 얼굴을 붉히면서도 어디로 튈지 모를 아이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느라 온 정신을 팔았다. 그러다가 식어버린 나의 표현 능력이 새삼 떠올랐다. 첫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세상에는 표현 능력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도 있다는 걸 알았다.
아이를 보면 말하지 않아도 사랑은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표현하는 건지 알려주러 온 눈사람 같았다. 그냥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아이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땐 내 영혼에도 푸르름이 얼마만큼은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오늘은 작은할머니가 되는 날이다. 이상하게 아침부터 설렜다. 세상에 작은할머니가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온 아이들. 열 살, 열세 살 그리고 열다섯 살. 다 커서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작은할머니라고 부르려니 어색한 건 그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겨울방학 두 달 동안 ‘겨울방학 스쿨링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에서 이곳으로 온 것이다. 학교를 시작한 지 두 주일이 지났으니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그동안 아이들이 들려주는 학교생활이 무척 궁금했다.
식당에 들어서니 아이들은 벌써 와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는 어때? 학교 얘기 좀 해봐. 친구들은 많이 만들었어?”하고 자리에 앉기도 전에 물었더니 너무 좋다고 한다.
소신에 찬 어조 위에 얹어져 있는 저 눈망울들. 서로 먼저 얘기하겠다며 신바람이 섞여 자꾸만 올라가던 음계를 빌려 결론을 말하자면, 모든 학생과 선생님으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었나 보다. 사춘기인 큰아이는 다섯 시부터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한다는 조카의 달뜬 목소리를 들으니 덩달아 내 마음도 달이 뜬다.
전생에 어떤 인연이었기에 가족으로 온 것일까. 신물 나게 아름다운 선물이 되었을까.
명줄 / 김미희
재봉틀이 큰 소리를 내는 것은
그 안에 북집이 있어서다
그 심장 하나가
맞는 색으로, 두께로
명주실을 뽑듯 명줄을 뽑으며
늘 돌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내 목소리가 아직 높은음자리인 것도
너라는 심장 하나가
내 명줄을 그러쥐고 있기 때문이다
김미희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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