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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이 가을에 읽기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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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2-11-0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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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흑산,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이 신작 <하얼빈>을 들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에 사건의 전개나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더 없이 크고 감동적이어서 뭉클하고 울컥해지는 대목이 많다. 한국의 근대는 제국주의의 야욕과 폭력에 짓밟혔고, 청년 안중근은 그 폭력과 야만성에 홀로 맞서 ‘동양 평화’를 실현하고자 했다. 작가는 책 서두에 포수, 무직, 담배팔이 가 작품을 끝까지 쓰게 한 힘이라고 말했다. 포수와 무직은 안중근의 직업이었고, 함께 거사를 실행했던 우덕순은 자신을 담배팔이 라고 조서에 기재했다.

 

그들은 나라를 잃은 삼십대 청춘들이었다. 풍천노숙을 하며, 의용군, 독립군으로 활동을 하다 만난 사이였다. 임금도 자신의 나라를 버렸는데 그들은 그럴 수 없었다.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대의였고 의무였다. 황해도 해주 인근의 영향력 있는 문중의 아들로, 총을 잘 쏘았던 포수였고 세 아이의 아버지였던 안중근은 장차 문중을 이끌어 나가야했던 장손이었고 독실한 가톨릭집안에서 성장한 신자였다. 그와 그의 아들에게도 세례를 주었던 빌렘신부는 이런 안중근이 평범한 삶을 살기 원했지만, 그의 뜻이 다른데 있음을 진즉에 눈치 채고 그의 앞날을 위태롭게 여겼다. 중근이 사냥해온 노루고기로 술을 마시며 시대의 어둠을 침묵으로 말하고 있었던 그의 집안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역사에 기록된 그날, 하얼빈 역에는 세 사람이 세 곳의 다른 방향에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오고 있었다. 동아시아의 패권을 확인하려 여순, 봉천을 지나 대련에서 기차에 몸을 실은 이토 히로부미와, 수중에 단 돈 백루블과 총 한 자루를 지닌 채 블라디보스크에서 기차를 탄 안중근과 우덕순 그리고 안중근을 만나기 위해 아이 셋을 데리고 신의주에서 오고 있었던 안중근의 부인 김아려가 그들이었다. 특히 김아려의 탈향은 같은 여자로써 너무 가슴이 아픈 대목이었다. 그녀에겐 제국의 총독을 죽인 남편을 둔 가련한 여인의 험난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당시에도 기득권들은 그를 단순한 살인자로 취급 하며, 조선 천주교 주교였던 뮈텔 신부는 그에게 고해성사조차 주지 않으려 했다. 

 

작금의 한반도 정세를 생각하면 이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크다. 경제발전을 했다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은 강대국사이에 끼어 정치적으로 불안하다. 위로는 핵을 들고 위협하는 북한이 있고, 새정부가 들어서며 국내정세도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애국을 말로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국가가 위험에 처할 때 과연 자신을 바쳐 국가를 구하려는 사람은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물론 투사가 필요한 시대는 아니지만, 진정한 애국이 무엇인지를 생각게 하는 작품이다. 참고로 안중근과 우덕순은 거사 전날까지도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사진 한 장을 찍었을뿐 자신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선 서로 말이 없었다고 한다. 

 

<불편한 편의점>은 근래에 드물게 소설로는 70만부 이상이 팔린 작품이다. 세상이 갈수록 삭막해져서 그런지 요즘은 이렇게 따뜻한 이야기가 있는 소설이 각광을 받는다고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린 서울역 홈리스 출신 독고씨가 어느 날 편의점에서 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각종 에피소드가 이야기의 축을 이룬다. 야간알바를 하는 큰 덩치에 무표정해 보이는 곰 같은 독고씨는 매상을 올리는데는 관심이 없지만 편의점을 하루의 끝에 꼭 들리고 싶은 장소로 만든다. 그는 실의에 차서 편의점에 들른 손님들에게 맥주 한 캔을 나눠 주며, 때로는 기일이 지난 삼각김밥을 함께 먹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소설은 에스 앤 에스 상 친구는 많아도 실제로는 자신의 고민이나 외로움을 말 할 사람이 한 명도 없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가감없이 드러내는데, 참으로 공감이 간다. 작품의 주인공 독고씨는 이렇게 삶에 지친 현대인들이 가장 가지고 싶어하는 친구유형이 아닐 까 싶다. 어떤 이야기이든지 말없이 들어주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희망을 가지게 하는 사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배경으로 그를 판단하지 않고, 외양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그가 어떤 시를 좋아하는지, 어떤 음악을 즐겨 듣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우려 주는 사람, 실수하는 사람을 보면 말없이 와서 도와주며, 원 플러스 원은 2가 아니라 기쁨이라는 걸 알게 해주는 그런 친구 말이다. 

최근에 <불편한 편의점2>도 출간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점점 차가워지는 날씨에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줄 작품이어서 강추 하고 싶다.

 

늘 시로만 대하던 시인을 직접 마주하게 되면, 나는 시가 주는 이미지와 실제의 시인의 차이를 구별해 보는 버릇이 있는데, 이 시인은 시와 시인의 이미지가 거의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도>와 <오래된 농담> 등으로 유명한 이문재 시인을 지난 8월 출판기념회때 만났다. 그는 그의 시처럼 소탈하고 가난한 영혼의 소유자처럼 보였다. 손을 모으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라는 그의 시처럼 구도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번에 7년만에 시인의 새 시집<혼자의 넓이>가 출간되었다. 군중 사이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현대인들에게 나는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혼자가 가지고 있는 깊이와 넓이, 한계를 사유하게 만드는 시집이다. 또한 길을 잃은 현대인들의 상실과 본질을 담담한 언어로 성찰하게 하며, 별이 보이지 않는 지구걱정에 몸살을 앓는 시인의 마음도 엿볼 수 있다. 

 

혼자가 혼자를 잃어버린 가설무대 같은 밤이 지나면

우리 혼자는 밖으로 나가 어둠의 가장자리에서

제 그림자를 찾아오는 키 큰 나무를 바라보곤 한다.                                       

-혼자의 넓이- 중에서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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