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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박인애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 ‘소담 한꼬집’} 비상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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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2-10-1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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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 초청작이었던 ‘비상선언’을 벼르고 벼르다 오늘에서야 보았다. 언제부터 집에서 영화 한 편 보는 게 유일한 문화생활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혼자 나다닐 형편이 못 되다 보니 소파에 누워 볼 수 있는 나 홀로 영화관만으로도 감사하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크게 발전한 것 중 하나가 OTT(Over The Top) 사업일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TV 서비스인데 이용자가 많다 보니 넷플릭스, 애플, 디즈니 등 큰 회사들이 뛰어들었고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대부분 한 달 치 돈을 내고 못 보는 날이 더 많은데, 한국 넷플릭스는 일일 이용권까지 생겨 수요가 더 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필요할 때 하루에 몰아서 보면 되니 돈을 절약할 수 있게 된 거다. 

영화는 극장에서 팝콘을 먹으며 큰 스크린으로 봐야 제맛이라고 여겼던 사람들도 요즘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인터넷만 연결되면 TV뿐 아니라 PC, 태블릿, 핸드폰으로도 보는 게 가능한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다 어느 날 극장도 사라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칸 국제영화제에 직접 다녀온 지인이 카톡으로 공유해준 문화전문지에서 우리나라 영화의 현주소와 위상을 읽었다. 현지에 가서 출품된 영화를 보고 영화인들을 만나고 취재하여 기사를 쓰는 그녀가 부럽기도 했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전문가들에게 좋은 평을 받는 한국 영화와 영화인들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비상선언(Emergency Declaration)은 항공 운항에 있어서 비상계엄 선포와 같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항공기가 비행 중 연료 부족이나 기술적인 문제로 정상적인 운항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조종사는 비상선언을 선포하여 관제 당국에 상황의 위급함을 알리면 어떤 항공기보다 빨리 착륙할 수 있도록 우선권을 부여해 준다고 초기화면에 적혀 있었다. 

이 나이가 되어도 왜 이렇게 모르는 용어가 많은지 참으로 놀랍다. 항공사에서 일하는 지인이 있어서 비행기에 대한 상식은 꽤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빙산의 일각이었던 모양이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도 다 못 배우고 간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어쨌거나 새로운 지식을 하나둘 알게 될 때마다 뿌듯하다,

  

비상선언은 울림이 큰 항공 재난 영화였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지난 삼 년간 세상을 어떻게 지배했는지 보았기 때문에 종류는 달랐지만, 여러 부분에서 공감이 갔다. 

비행기 안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퍼뜨려 사람들이 유리관 속 실험 쥐처럼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것을 즐기고 싶었던 테러범으로 인해 승객을 비롯한 전원이 감염되었다. 기장은 비상선언을 선포했다. 그러나 항바이러스가 있다고 해도 자국민 보호를 위해 비상착륙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회항하여 우리나라로 돌아왔지만, 자국에서조차 그들의 착륙을 놓고 찬반이 갈리고 시위가 벌어졌다. 

생존자들은 자신들로 인해 가족과 또 다른 사람이 감염되는 게 두려워 비행기와 함께 최후를 맞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들이 무엇을 염려하는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양쪽의 입장을 모르는 건 아닌데. 내 마음은 비행기에 탄 사람들에게로 자꾸만 흘러갔다. 

비상선언이 비상선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냉정한 현실이 무서웠다. 영화는 한 사람의 살신성인으로 백신이 작용하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비상착륙하게 되고 일상으로 돌아간 모습을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졌던 초기에 실제로 있었던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혹여 감염될까 봐 이웃을 경계하고 내 부모 형제까지도 의심하고 경계했던 순간을 많은 사람이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한국에 치료받으러 갔을 때 미국에서 온 사람들은 어딜 가나 병균 덩어리 취급을 했다. 기침이라도 한번 했다간 사람들의 무서운 눈초리에 눌려 압사당할 지경이었다. 나와 같은 시기에 한국에 방문했던 지인은 친정 식구에게 문전박대를 당하는 서러움을 겪었다. 영화 속 사람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위드 코로나를 외치던 시기에 병원 방문차 한국에 갔다가 일정이 빨리 끝나서 비행기 표를 앞당겼다. 내 발로 병원에 가서 당당하게 코로나 검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왔는데, 아주 미세하지만 사멸된 균이 발견되었다며 출국을 막았다. 무조건 일주일 자가격리를 해야 비행기를 탈 수 있다고 했다. 

양성이면 공공장소에 있을 수 없으니 숙소를 옮기고 비행기 표를 연기해야 했다. 그때 나를 좋아한다고 믿었던 사람들의 진심을 보았다. 

나를 위해 목숨이라도 내어주겠다던 사람들을 믿었던 건 내 착각이었다. 지인이 내준 옥탑방에서 일주일을 지내며 나라면 어땠을까를 수도 없이 생각했다. 보건소와 동네의사는 약을 먹을 필요도 없고 감염시킬 위험성도 없다는데, 지인들은 핑계를 대며 피했다. 

영화를 보며 비행기 속 사람들의 절박한 마음에 동병상련을 느꼈던 건 아마도 그때의 일이 떠올라서였을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닌데 서운했던 마음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영화가 끝난 후 피할 수 없는 재난에 대해 생각했다. 하루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생. 주어진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선이 분명해졌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다르고 온도가 다르다. 가을이 온 듯하다. 사람이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열심히 살다가 하늘이 부를 때 떠나면 되는 거다. 누군가 내게 비상선언을 해올 때 나도 그 시인처럼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할 수 있을까? 

 

박인애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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