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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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한국 방문때 한강 유람선을 탄 적이 있다. 시월 말이니 제법 날씨가 쌀쌀했는데도 유람선 안은 발 디딜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친구는 요즘은 동창회등 크고 작은 모임을 칵테일 한 잔씩 들고 야경을 감상하며 하는게 유행이라며, 바뀐 모임풍경에 한참 열을 올렸다.
사실 난 친구의 자랑이 아니더라도 오래된 세느강 유람선보다는 한강 유람선이 더 낫다고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파리 1일 관광코스 중에 끼어있던 세느강 유람선은 그저 하루 종일 봤던 에펠탑과 노트르담 성당 첨탑등을 복습해서 보여주는 차원이었고, 배도 낡은데다 승객을 위한 별다른 배려는 보이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한강 유람선은 깔끔하고 배안에는 카페도 있을뿐더러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1시간의 유람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게다가 유람선에서 바라본 서울의 야경은 거대한 아파트숲이 빚어내는 찬란한 빛으로 인해 참으로 근사했다.
강물에 비치는 수많은 불빛들은 다름 아닌 21세기 인간들이 만들어낸 욕망의 빛이기도 했다. 언젠가 세계 도시의 야경을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평양과 뉴욕과 서울은 확실히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승선한 뒤에 보니 유람선 안에는 나름 여러 가지 공연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 대한민국의 교육열이 만든 예능 인재들은 얼마나 많은지, 몇 푼하지도 않는 유람선에서도 피아노연주뿐 아니라 마술, 국악공연등 각종 공연이 버라이어티하게 펼쳐졌다.
그 때 강가의 아파트촌을 어림짐작하며 저긴 어디쯤이라며 수다를 떨고 있는데, 귀에 익은 동요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대학생처럼 보이는 피아노 연주자가 승선한 어린이들과 함께 떼창을 하고 있었는데, 그 노래는 다름아닌 우리집안의 유일한 걸, 조카 소원이가 유치원때 걸핏하면 부르던 <멋쟁이 토마토> 란 곡이었다.
‘나는 야 쥬스 될거야, (꿀걱) 나는 야 케찹될 거야(찍), 나는야 춤을 출거야, (헤이)’ 하며 어린여자 애들만 낼 수 있는 대책없이 톤업된 목소리로 잠자기 전에도, 이를 닦다가도, 심심하면 불러대던 바로 그 노래였다... 그 기발한 가사 때문이었는지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도 난 그 노래를, 지금은 대학원생이 된 조카의 모습과 함께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치원생들에게 넌 커서 뭐가 될거야 하면 <멋쟁이토마토>처럼 아주 다양하고 예측 불가능한 답이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신의 성적표에 맞추어 꿈이 바뀐다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멋쟁이 토마토>의 꿈은 참으로 실용적이고 현실적이다.
토마토가 쥬스나 케찹이 된다는 건 실현가능성 백퍼에 가깝다.
춤을 춘다는 건 다소 이상적이긴 하지만, 인간으로 치면 소신대로 즐겁게 산다는 말이니 참으로 신이 나는 미래가 아닐 수 없다. 나이가 들고 보니, 다른 사람들 삶에 쥬스나 케찹같은 역할을 하며 사는 분들도 있고, 춤을 추며 주변인들을 기쁘게 하는 분들도 보인다.
어찌 되었던 간에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무엇이 되어야만 한다고 교육을 받아왔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가장 많이 듣던 말도, ‘커서 무엇이 되려고 저러는지’와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라는 등의 무엇이 될 것인지에 대한 우려와 기대에 관한 예측들이었다.
하여 어른이 되어 딱히 자신을 규정 할만한 존재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절망하거나 스스로를 비난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무엇을 하는가 보다, 무엇이 되었는가를 더 중요시 여기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On Being Human,<무엇이 인간을 만드는가>의 저자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 제롬 케이건에 의하면 인간을 만드는 필수적인 요소는 12가지 (언어, 지식, 배경, 사회적 지위, 유전자, 뇌, 가족, 경험, 교육, 예측, 감정, 도덕) 인데, 이 요소로 인하여 인간은 외모부터 성격이나 사고, 감정이 다른 개인이 만들어 지며, 그 개인은 가족과 사회를 만들고, 그 사회는 또 다른 인간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며 각기 다른 인간을 완성시켜 나간다고 한다.
또한 이 요소들은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공부하는 능력을 만들어내는데, 그는 이능력이야말로 인간완성의 가장 필수적인 덕목이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김광섭 시인의 시 <저녁에> 에 곡을 붙인 유심초 노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참으로 낭만적이다.
세속적인 기준을 떠나 옛친구를 그리워하는 시인의 심성이 무엇이 되었는가 보다는 무얼하며, 어떻게 사는지를 더 궁금해 하는 것 같다.
수많은 별같은 시간들 속에서 지금은 사라진 옛 별들, 무엇이 안 되어 있어도 좋다, 부디 건강하게 즐겁게만 살아있으라, 그대들은 존재자체만으로도 빛나는 별들이다,
살아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만날 날이 있을 것이란 가사가 더 없이 가슴에 와 닿는다.
봄바람이 차갑지만 오늘밤은 보고싶은 별들을 만나러 마당으로 나서야겠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유심초 노래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중에서 -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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