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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정크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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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3-01-2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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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프리웨이에서 내려 집으로 오는 길은 한적하다. 예전엔 농장 길이었던 듯 FM718 이란 사인이 붙어있는데, 이 길의 초입 왼쪽엔 인도사람이 운영하는 개스 스테이션이 하나 있고, 오른 쪽엔 최근에 지은 몇 층짜리 스토리지 빌딩이 위세당당하게 들어서있다. 

아주 한가한 교외지역이었는데 요즘은 주변에 집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며, 출퇴근 시간이면 메트로 폴리스 못지않게 복잡해졌다. 

그래도 FM 길에 들어서면 길 양쪽으로 오래된 관목이 동네 입구까지 쭉 들어서 있어 그나마 시골운치를 조금 느낄 수 있는데, 언젠가부터 나는 이 길에 아주 눈에 거슬리는 트레일러 한 채가 자리 잡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주변이 얼마나 지저분한지 쓰레기 하치장도 저 정도는 아닐 것 같단 생각이 들 정도로 온갖 잡동사니와 쓰레기가 트레일러 주변에 방치돼 있다. 일부러 어질러도 저렇게 까진 못 할 것 같은데, 사람이 안 사는 집인지 보통 때는 아무도 보이질 않다가 가끔 경찰차가 그 집 마당에 주차되어 있으면, 집주인처럼 보이는 젊은 백인남자가 어슬렁거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운전을 하며 지나가다 내심 며칠 이내로 저 정크 트레일러가 치워지겠구나 싶어 쾌재를 부르는데, 몇 달이 지나도 그 집은 보란 듯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가만 생각하니 그 청년이 경찰에게 한 제스츄어는 본인은  실제 트레일러 주인이 아니라고 한 것 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경찰은 주변 민원 때문에 몇 번 들르는 것 같더니 요즘은 숫제 아예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 

사실 이 농장길 주변에는 우리 동네 같은 새 주택단지가 개발되기 전부터 살았던 듯싶은 오래된 트레일러 몇 채가 길가 오른쪽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아마도 오래 전 땅값이 아주 쌌을 때 땅을 먼저 산 다음 트레일러를 끌고 와서 살았던 사람들인 것 같다. 그들은 길가에서 마당이 다 보이는 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세간을 다 드러내놓고, 염소나 양을 키우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한 이십년은 족히 모았을 것 같은 장식품으로 마당을 장식하고는 했다. 

밤이면 작은 전등을 켜놓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지 짝도 안 맞는 의자들이 여기저기 덩그러니 놓여있고 정크 카 한 두 대 정도는 장식처럼 항시 주차되어 있었다. 

어쩜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주택건설 바람이 불며 그들의 소박한 일상을 방해하는 건 외려 새 주택지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날마다 그 길을 지나야 하는 입장으로선, 원치 않는 폐허를 날마다 봐야 상황이어서 썩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하긴 요즘은 이런 집들이 얼마나 많은지, 미국이나 한국이나 할 것 없이 이런 집들을 해결해주는 프로그램을 자주 접하게 된다. 세칭 ‘정리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서서 집안의 물건들을 다 끄집어내 놓고, 딱 필요한 물건만 골라내어 집을 새로 리셋 해주는 직업인데, 버리는 쓰레기양을 보면 어마어마하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각기 사연이 있는 물건이어서 쉽게 정리를 못하고 어정쩡하게 하나 둘 가지고 있다가 물건이 공간을 다 점령한 경우인데, 정리가 된 후 단장된 집을 보면 주인은 물론이요, 시청자입장에서도 속이 다 시원해진다. 

세상에 뭔 필요한 물건들은 그렇게도 많은지, 단순하게 살수록 행복하다는데, 우리는 자본주의 상술에 속아 날마다 무언가를 사고, 모으고 쟁여두고 산다. 

외로움을, 고독을 물건으로 대치하고 쌓아두어야만 불안이 가시는 가장 불쌍한 세대가 된 것이다. 인터넷 샤핑몰에서는 초단위로 시간을 보여주며, 지금 사지 않으면 손해라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고, 신문기사 한 줄을 읽어도 광고가 몇 개는 따라 다니며, 검색만 해도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캐치해서 그 상품에 대한 정보와 가격이 수시로 휴대폰에 뜬다. 

이젠 법정스님의 <무소유>나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 헬렌 니어링부부의 <조화로운 삶>에서 추구하는 삶은 지극히 시대착오적인 삶처럼 비쳐진다. 

우리는 끊임없이 소비하는 인간, ‘호모 콘수무스(Homo Consumus)’가 된 것이다. 소비하는 행위가 단지 필요한 재화를 구매하는 행위를 너머 자신의 의지와 신념을 반영하여 자신의 존재자체를 인식하는 ‘의식’의 수준에 이르렀다. 

이제 마케팅은 거듭 진화를 해서 ‘뉴로 마케팅’에 까지 도달했다. 이는 소비자의 뇌 반응을 측정해서 소비자 심리 및 행동의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이를 마케팅에 응용하는 방법인데, 어쩌다보니 우리는 우리의 무의식까지도 상술에 내어준 신세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이 버린 크고 작은 쓰레기인 스페이스 정크(space-junk)보다는 지구에 남겨둔 인류의 찌꺼기인 정크 스페이스 (junk-space) 라고 건축가 렘 콜하스는 주장한다. 

인류는 해를 거듭하며 크고 작은 건축물이나 도시를 수없이 부수고 새로 만들거나 하는데, 결국은 그 공간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정크 스페이스가 된다는 것이다. 

어쨌든 쓰레기는 아무 쓸모없고, 해가 되거나, 치워야하는 어떤 상황이나 상태를 말하는데, 원인이 어디에 있던 문제는 우리가 인류의 미래에 심히 위협이 되는 정크를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현명한 소비를 해도,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쓰레기를 버려야하는 처지에, 지구가 언제까지 우리를 참아줄지, 심히 불안한 이즈음이다. 하여 작심삼일이 될지언정 새해부터는 몸과 마음의 정크부터 주변의 불필요한 정크까지 깨끗하게 정리하고 치우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오늘은 지나가면서 보니 정크 하우스는 이제 스페이스 정크에서 정크 스페이스로 돌변했다. 

누가 불을 질렀는지, 그냥 불이 났는지 트레일러는 불에 타고 주변엔 기둥과 잿더미만 가득하다. 바야흐로 봄으로의 긴 여로가 시작되길 바랄뿐이다. 폐허위에서도 바람은 불고, 새는 노래하고 꽃은 필 것이다. 

예년 같지 않게 따뜻한 겨울날씨에 감기환자가 속출하고, 계절은 나름 계획을 가지고 해방일지를 열심히 쓰고 있다. 눈치 없는 나무는 벌써 버들가지 같은 새움을 틔우고 우리 집 강아지는 겨울잠에 흠뻑 빠져있다. 멀리 있는 전희진 시인이 보내준 시집 <나는 낯선 풍경 속으로 밀려가지 않는다>을 읽기에 더 없이 좋은 1월 오후가 더 없이 반가울 따름이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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