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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 가족이 무엇이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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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3-02-1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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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이면 남편은 자명종처럼 나를 깨웁니다. 전에는 한 주 내내 고생했으니 일요일만은 실컷 퍼져보라고 커피 냄새도 피우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한국에서 조카네가 온 뒤부터 바뀌었습니다. 

미국에 30년을 넘게 살면서 가족이라고는 시부모님 세 번 다녀가시고 누님의 아들, 조카가 다녀간 것뿐이었으니 얼마나 좋을까요. 부모님이 다녀가실 때만 해도 한창 일할 때여서 이것저것 신경 못 써 드린 게 아직도 맘에 걸려있나 봅니다. 주중에는 일을 하니 앞으로 두 번 남은 일요일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일주일 내내 생각하고 계획을 세웁니다. 

미리 깨어 있었지만, 자는 척 능청을 부리고 있는데 남편이 들어와 커피잔을 코 앞에 들이대며 되지도 않는 애교를 부립니다. 11시까지 오기로 했다며 대충 아침 챙겨 먹고 준비하자고 서두릅니다. 이 취임식과 신년 하례식에 참석하느라 한 열흘 만나지 못하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으니 서두르는 것도 당연합니다. 

 

조카가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 때문에 일주일간 한국에 다니러 간 사이 아이들과 형님은 생전 처음 맞는 윈터 스톰으로 집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윈터 스톰 경보가 울리면서 남편은 조카가 연락이 안 된다며 정신이 반쯤 나간 사람처럼 걱정하는데, 그런 모습은 또 처음이었습니다. 

아마 작년 윈터 스톰이 떠올라서 그랬던 모양입니다. 알고 보니 한국에 나가 있는 상황이어서 연결이 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여차하면 달려갈 위기였는데, 상황이 나빠지기 전에 형님이 아이들을 무사히 학교에서 데리고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안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시래기 된장국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때우고 나니 조카가 식구들을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윈터 스톰이 지난 다음이라 그런지 햇살이 더욱 좋습니다. 하늘은 밤새 봄을 불러다 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치미를 떼고 있습니다. 오늘의 일정은 서울 거리와는 전혀 다른 달라스 다운타운을 보여주겠다고 합니다. 달라스에 살면서 다운타운은 손님이나 와야 모시고 가는 곳이지 평상시는 갈 일이 없는 곳이라 갈 때마다 새롭습니다. 일단 아트 스트리트에 차를 세우고 걷기로 했습니다. 

미술관에 들러 조각 특별 전시 작품들도 보고 다운타운 한가운데에 있는 클라이드 워런 공원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한적한 다운타운에서 한가롭게 걸어 보기는 처음입니다. 

쏟아져 나온 인파들로 공원은 꽉 차 있었습니다. 윈터 스톰이 막 지나갔다고 보기에는 너무 가벼운 모습입니다. 일단 허기진 배부터 달래기로 하고 멕시칸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연인들도 많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이들의 모습이 더 많아 보입니다. 

 

3대가 둘러앉아 누군가를 축하해주는 모습도 심심찮게 눈에 들어옵니다. 한국 갔을 때, 지인한테 들었다며 친구가 들여주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아마 내가 며느리를 본다고 하니 들려줬던 것 같습니다. 

결혼식을 막 마친 아들이 찾아와 한다는 말이 “엄마, 사랑해요.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요?” 하면서 당분간 집에 오지 않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엄마 되는 분이 “왜? 왜 그래야 하는데?” 했더니 한다는 말이 결혼했으니 가정을 지키기 위해 오지 않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한 여자의 남편이 되었으니 형제, 자식 노릇은 당분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엄마 되는 분은 너무 황당해서 “그래서 어른 되는 게 어려운 거야. 일단 결혼하면 역할이 많아지거든. 앞으로 자식을 낳으면 더 많은 역할이 생길 것이고. 그때마다 한 사람을 위한다고 다른 역할은 미루고 또 포기하겠다고? 그게 모든 이의 인생이었다면 지금의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그 엄마 되는 분이 너무 기가 막혀서 그렇다면 나도 너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도 오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물었습니다. 어쩜 그 엄마 되는 분이 잘못한 게 있지 않을까 하고요. 그랬더니 친구가 하는 말이 며느리 될 아이가 결혼하기 전날까지 시부모님께 “어머님, 아버님” 소리를 안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엄마 되는 분이 “너는 시집올 준비가 아직 안 되었나 보다. 어머니 아버지 소리가 안 나오는 것 보니까.” 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서운했으면 그랬을까요. 

그렇지요. 아들과 결혼해서 잘 살겠다고 하는 처자가 시부모를 우습게 본다면, 과연 그 사랑이 진정한 사랑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은 아마 나도 두 아들을 가진 엄마라서일까요. 언젠가는 그들 사이에도 자식이 생겨 그들도 부모가 되겠지요. 어떤 부모가 되어 어떤 모습으로 그 자식에게 무엇을 보여주며 살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언제 올지 모를 아들을 마냥 기다리는 일은 나도 못 할 것 같습니다. 기다림 자체를 없애는 게 차라리 덜 아프지 않을까 하는 슬픈 생각을 해봅니다.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도 오지 말라며 전화까지 차단했다는 그 엄마의 심정이 바로 그것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남편은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은가 봅니다. 여기저기에 세워놓고 셔터를 누르느라 바쁩니다.  

잊고 있었던 작은아버지, 작은할아버지와 시동생 역할을 공들여 수행하는 모습이 마냥 행복해 보입니다. 분수대에서 물놀이하는 아이들. 물줄기를 요리조리 피해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 모두 자기 역할에 충실한 사람들의 모습은 평화로워 보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별스럽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추억을 쌓고 서로 위로하며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겠지요. 그러면서 가족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게 되고 사랑을 배워가겠지요. 

 

스펀지는 습하기 위해 존재한다     / 김미희

 

밤 뒤척이더니 

새벽에 겨우 잠이 든 것으로 아는가 봐  

일 나가야 하는데 못 일어날까 봐서

나보다 더 잘 사는 자명종 품위로 쇳소리를 또 그렇게 뚫어야 하는

그래서 잠들지 않은 밤 그대로 깔고 누웠다가 

잠옷까지 몽땅 적시고 마는 거야 

 

전혀 맞아 떨어지지 않는 그대로 침묵해야 하는 무게가 

척척 해서 젖은 만큼 무거워진 현실이 당혹했던 거라고 

그 속으로 바닥을 깐 것을 알아야 해

 

전생에 지은 게 무슨 죄였느냐고 

그 업보로 이렇게 무거운 현실을 위해 젖어야 하는 거냐고 

그러다 보니 전생이 될 수 없어 현실이 늘어나는 것이라

다 내가 못난 탓이고 내 잘못이라는 생각에

아침 댓바람부터 눈물 고를 트고 만 거야

 

어쨌든 살아있으니 살아야지

안 그래?

가끔 내가 맘에 드는 나를 조금씩 놔주는

왜 그런 날 있잖아

내가 나도 모르는데

그 누구를 알아서 판단하겠냐는 그 말 말이야

눈물 꾹 짜내고 순하게 낯설지 않은 모습으로

오늘을 살밖에 없는 거야

 

김미희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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