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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박인애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 한국에 울려 퍼진 미국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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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3-04-2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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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합창단 마스터 시리즈는 국내외 유능한 지휘자와 서울시립합창단 협업으로 최상의

공연을 선보이는 레퍼토리 공연이다. 지난 13일, 미국 합창 음악의 거장 안드레 토마스(Andre

J. Thomas)와 서울시립합창단이 협연한 공연을 관람하게 되었다. 지휘자는 지휘자대로

합창단은 합창단대로 오랜 세월 각자의 자리에서 많은 공연을 해왔을 터인데, 그들이 함께하는

연주를 한자리에서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병원 방문차 한국에 올 때마다 문학 행사는 더러 갔어도 음악 공연에 간 적은 별로 없다. 이번

공연에 갈 수 있도록 티켓을 사주고 동행했던 지인의 공연에 갔던 게 아마도 전부였을 것이다.

체임버홀에 가기 위해 세종문화회관 앞 돌계단에 올라서니 오랜 세월 잊고 살았던, 그러나 한때

소중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사람들은 떠나고

없어도 공간은 시간의 흔적들을 끌어안은 채 존재하고 있었다. 그 계단을 오르내렸던 사람 중에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었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들었다. 없지 싶다. 내 기억도 옅은

파스텔톤 수채화처럼 그저 밝기만 하다. 그 누구도 선명하지 않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지웠는지도 모르겠다.

세종문화회관에 연주회나 공연을 보러 간 적도 있지만, 돌계단 앞은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그 계단에 앉아 친구를 기다리며 책을 읽기도 하고, 때론 바람을 맞기도 했다. 핸드폰도 없는데

어떻게 그 많은 약속을 하고 만났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신기하다. 장소와 공간이 주는

그리움은 이슬비처럼 잠시 왔다가 이내 말랐다. 아주 사라져 버린 공간의 추억 또한 그러했다.

 

“흑인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만나는 미국 현대 합창”이라는 타이틀의 공연은 울림이 컸다.

들어본 곡도 있고, 처음 듣는 곡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아프리카 미국인들의 음악을 접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었다.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여서 울림이 크다. 특히나 흑인들의 노래에는 노예로

살았던 그들의 아픈 역사가 담겨서 깊은 쏘울(soul)이 느껴졌다. 특히 1, 2부에 연주된 곡들이

그랬다.

프로그램을 보니 지휘자 안드레 토마스는 미국합창지휘자협회 회장이며,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명예교수였다. 몰랐던 분을 알게 될 때마다 부자가 된 듯하다. 최선을 다해 지휘하는 모습이

너무나 멋지고 카리스마 있었다. 미국 교회에 다니다 보니 여러 나라 합창곡을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국에서 듣게 되니 감회가 남달랐다. 합창은 영어로 했고 무대 앞면에 한국어로

자막을 띄워 관객들의 이해를 도와주었다. 중간쯤 가니 조는 분도 계셨다. 위에 계신 분이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 모양이다. 언어가 달라도 음악이 주는 힘은 강한 건데 안타까웠다.

 

1부에서는 서울시립합창단 상임 피아니스트인 지인이 반주를 하여 의미 있었다. 피아노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숨을 죽이고 보았다. 무반주곡을 합창할 때는 피아노로 첫 음만

눌러주고 합창 소리를 경청하며 악보를 넘겼는데, 그 몸짓조차도 음악이었다. 연습실에서도

보고 작은 공연에서도 보았는데, 큰 무대에서 연주하니 다른 사람 같았다. 1, 2부는 클래식

3부는 흑인 영가 4부는 가스펠을 연주했다. 특히 3부에서 연주한 흑인 영가들은 노예의 힘든

삶을 위로해 주던 음악이었다. 오래전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았던 그들의 고통과 핍박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었던 그 음악의 선율은 단순하지만, 삶의 애환이 담겨 듣는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선율이어서 편곡자들의 손을 거쳐 높은 예술로 승화되었다고

한다. 4부에서는 어깨가 들썩여지는 가스펠을 연주하여 연주자와 관객이 손뼉을 치며 하나가

되었다. 코로나의 긴 터널을 지나며 공연문화는 한동안 겨울왕국처럼 얼어붙었고 활동이

원활하지 못했다. 이제 마스크를 안 써도 되는 세상이 되었다. 바이러스가 사라진 게 아니어서

그런지 갇힌 공간에서는 대부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쓴다. 아직도 약국이나 병원은 무조건

써야 한다. 합창으로 하나 되는 걸 보면서 왠지 모를 자유로움과 서울 시민의 활기가 느껴졌다.

나 역시 오랜만에 느껴보는 문화 샤워로 지친 마음에 활력소를 채웠다.

 

서울시립합창단에는 연배가 꽤 있어 보이는 분도 계셨다. 한번 들어가면 절대 안 나가서 누가

죽기 전에는 자리가 안 생긴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내가 다니는 프레스톤 우드 교회

성가대에도 노인들이 많다. 사실 각자의 목소리를 내면 잘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합창은

목소리가 모여 하나의 소리를 만들고 하모니를 이룰 때 완벽한 소리를 된다. 자신의 소리를

낮추고 상대방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하나의 목소리가 되는 것이다. 흑인들의 음악은

공동체가 함께 공유하고 함께 이겨 나가야 했던 대상이었다. 이를 음악으로 표현하는데 합창이

최고의 매체였다. 서로 어우러지는 목소리에서 오는 위로를 만끽했던 것이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마음에서 온다. 우리 모두 하나 되어 하모니를 이루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인애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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