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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나고야 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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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3-10-0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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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 고모는 아직까지 살아 계실까.... 얼마 전 난 한가위 보름달을 바라보며, 일본에 계신 유일한 아버지의 혈육인 고모 생각이 문득 났다. 

아버지 형제 4남 1녀중 고모는 맨 막내였다. 해방 후 모든 형제들이 한국으로 나왔는데, 유일하게 고모만이 고모부와 일본에 남게 되어 그곳에서 쭉 뿌리를 내리고 사셨다. 

한국이 경제발전을 하기 전인 1970년대 무렵부터 80년대 중반까지 고모는 수시로 한국을 방문했는데, 보통은 재일교포자격으로, 어느 해인가는 그 지역 재일교포 거류민단장 자격으로 방문을 했다. 

당시는 가까운 일본이라도 왕래가 지금처럼 쉬운 시절은 아니어서, 고모의 방문은 참 우리들을 설레 이게 했던 기억이 난다.

고모는 혼자 올 때도 있었고 일본사람처럼 생긴, 한국말이 몹시 서툰 고모부를 대동하고 나타날 때도 있었는데, 어찌 되었건 고모는 한국을 방문 할 때마다 거의 두 달 정도를 머물다 가셨다. 

그런데 고모가 머물다 가는 데는 어떤 패턴이 있었다. 고모가 맨 먼저 가서 머무는 집은 주로 강진 큰댁이었다. 

그러다 차차 서울과 가까운 친지네로 이동을 했는데, 우리 집은 가장 마지막 순서인 경우가 많았다. 그건 고모의 바로 위 오빠였던 아버지가 안 계신 탓도 있었지만, 일단 전라도와 가장 멀었기 때문에 고모는 주로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한 주를 서울 변두리에 위치한 우리 집에서 머물렀다.

아버지의 오 형제 중 강진 큰댁은 넷째인 아버지, 바로 위 셋째 형님댁 이었다. 

고모는 해방 전까지 일본에서 셋째 큰어머니와 한 집에서 살았는데, 어린 막내 시누였던 고모를 올케인 큰어머니가 친동생처럼 무척 예뻐해서 고모는 그 올케를 가장 따랐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고모는 그 큰어머니를 행님, 행님 하고 부르면서 가져온 선물 중 제일 값나가고 귀한 것을 드렸다. 

당시는 일제물건이 흔치 않아서 친척들은 고모가 일제 선물을 주면 몹시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한 번은 엄마가 고모에게 슬리퍼 한 켤레를 얻어 온 적이 있는데, 나는 고무신만 보다가 하늘색 바탕에 꽃무늬가 수 놓인 그 슬리퍼가 몹시 예뻐 보여 내 발보다 훨씬 큰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며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곤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어쩌다 보니, 나도 이민을 와서 낯선 타국에 정착을 하고 결혼을 해서 살게 되었다. 

처음엔 형편이 되지 않아 고국 나들이가 잦지는 않았다. 그러나 해를 거듭 할수록 한국을 나가게 되면 나고야고모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자식들이 잘 크고 있는데도 마음 한 구석이 허전 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건 미국정부나 재외 국민을 열심히 생각해주는 재외 동포청 담당자가 책임을 져줄 수 있는 그런 부분이 아니었다. 그건 뭔가 타국 땅을 내딛고 사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허공에 뜬 구름을 밟고 사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한국엘 자주 나갈수록 드는 생각은 경제발전을 이룬 것만큼, 모든 것이 너무 빠른 속도로 변해 있어서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자본주의의 맹아 미국을 닮아가고 있는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늘어난 소득수준과 함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미국사람들 보다 한 술 더 했음 더했지 결코 뒤지지 않는 다는 걸 겪게 된다. 

친척들은 모두 도시로 나와 시간이 없고, 형제들은 그럴싸한 식당에서 밥 한 끼 함께 하며, 얼굴 보면 그만이다. 모두들 너무 바빠 이제는 직계가족들조차 자주 만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20년 전 난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 엘 갔다가,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본에 있는 나고야 고모집에서 2주 정도를 머문 적이 있다. 고모는 나고야에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교외지역에 살고 있었다. 

고모는 집 한 켠을 커피와 샌드위치를 파는 카페로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는데, 가끔 내가 가게에 나가 커피를 마실 때면 가급적 한국말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이유를 묻자, 동네주민인 일본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난 거의 생애 대부분을 일본에서 보낸 고모가 그간 얼마나 보이지 않은 차별을 받고 살았는지를 느꼈다. 그런데도 고모는 일본인으로 귀화를 하지 않고 한국인 성씨를 고수하며 사셨다.

그 후 일 년에 한 두 차례 고모와 전화로 연락을 하며 지냈는데 오 년 전쯤 부터 연락이 되지 않았다. 

마지막 통화를 할 때 고모는 귀가 많이 어두워져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는데, 후에 한국말이 서툰 사촌오빠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고모와 고모부는 그 뒤 요양원으로 가셨다고 한다. 그 당시 두 분 다 구순이 넘었으니 지금 살아 계신다면 백세가 가까워 온다. 

사촌오빠는 고모가 살았던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고, 전화번호도 바뀌어 연락처를 알 수가 없다. 

난 이 과정을 지켜보며 잊혀가는 이민자들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어떤 이유로 고향을 떠났던지, 이민자들의 삶은 상실과 애수의 기록이다. 

그들은 실향의 아픔을 지닌 채 자손들을 남기고 떠나지만, 그들의 삶은 차차 조국에서도, 친지들 사이에서도 쉽게 잊혀 지기 마련이다.

그들은 소설 <파친코>의 그 유명한 대사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우리는 상관없다’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라는 정신으로 차별과 멸시 속에서도 내가 선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자 애쓰며 사신 분들이다.

요즈음은 일교차가 심해 밤이 되면 언제 더웠냐는 듯이 선선한 바람이 불고, 억새는 훌쩍 자라서 산들거린다. 

명절이 되면 이제는 고인이 된 부모님 뿐만 아니라, 친척어른들 얼굴도 자주 떠오른다. 특히 항상 단정한 원피스차림으로, 큰 가방을 두 세 개씩 끌고 김포공항을 걸어 나오던 나고야고모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국을 나갈 때마다 오래 전 고모의 모습과 내 모습이 겹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나 역시 고향을 두고 떠나온 노마드, 이민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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