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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비오는 날의 캔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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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3-11-17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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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맛있게 먹고 나오는 중이었습니다. 흐 흐흥 흐 흐흥~ 흐 흐응 흐 흐응~~. 멕시코 음악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역시 나는 딴따라 기질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넓은 호텔 바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조상 어디쯤엔가 멕시코 종족의 피가 흐르고 있는 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자, 양다리는 이미 음악을 타고 있었고 내 두 팔은 언제부턴가 이미 거기에 있었다는 듯 음악에 맞춰 허공을 젓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나의 조상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으로 착각했던 걸까요. 한 번도 밟아보지 않았던 스텝을 밟으며 보란 듯이 두 팔이 날개라도 되는 양 음악을 타고 있었습니다. 

몸치라고 늘 생각했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리에 없던 힘이 들어가고 내게 없던 엉덩이가 나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흥에 겨워 삼삼오오 짝을 지어 춤을 추고 있는 멕시코 사람들 틈에 조그마한 동양 여자들이 어깨를 흔들고 끼어드니 반가웠던 모양입니다. 사람들은 둥글게 자리를 넓히면서 우리를 기꺼이 받아주는 것이었습니다. 

음악은 나라가 공인한 마약이란 말이 생각났습니다. 역시 그랬습니다. 세상의 모든 인류가 음악 앞에서는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부인할 수 없는 진리였습니다. 음악 앞에서는 피부색도 언어도 상관없습니다.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해석이, 설명이 필요치 않은 것이 바로 음악입니다. 오로지 느낌으로 하나가 될 수 있지요.

“나 잡아 봐~~라!” 닭살 돋는 드라마 속 장면을 나도 한번 재연해 보리라 생각하고 무작정 아무 생각 없이 따라온 여행이었습니다. 

물이 무섭고 여전히 수영은 할 줄 모르지만, 더 늦기 전에 비키니도 한번 입어보리라 마음먹고 부랴부랴 준비했습니다. 언제 어떻게 어디서 며칠을 묵는 줄도 모르고 친구의 전화 한 통에 크레딧 카드를 건네주고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4개월 전쯤의 일이었습니다. 친구들끼리 뭉쳐서 여행 한 번 하자는  친구의 제안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덥석 동의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 이젠 우리도 그럴 때가 되었어.” 싶었습니다. 이민 생활에 거의 30년 지기이면 소꿉친구나 다름없습니다. 흉허물 이럴 것도 없이 볼 거 다 본 사이가 되고 보니 이렇게 함께 늙어가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도착시간도  늦었지만, 호텔 체크인하는데 시간이 많이 지체되는 통에 호텔의 모든 식당이 문을 닫아 할 수 없어 룸서비스로 저녁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함께 왔으니, 저녁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모두의 염원에 각자 방으로 이동하기 전에 한 방에 모여 앉았습니다. 좀 일찍 도착한 1팀과 모두 같이 모이니 열세 명이 되었습니다. 

처음 꾸렸던 멤버 몇 명이 빠지고 생각도 안 했던 다른 친구들이 조인하면서 오히려 여행에 탄력이 붙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습니다. 3박 4일 동안 함께 추억을 만들고 공유하게 될 사이라서 그런지 낯선 것보다 반가움이 앞섰습니다. 첫눈에 정을 주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말로만 듣던 캔쿤의 아침은 화려하게 열리고 나는 파랗게 펼쳐진 바다에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번스의 말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3일 내내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대로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마치 태풍이라도 몰려올 기세로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아침부터 사정없이 내리는 비에 해변을 거닐다 쫓겨 들어오며 하늘도 무심하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호캉스로 그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와 함께 올 인쿨루시브의 정수를 느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마가리다와 모이또를 마시면서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어울리지 않게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낮술로 하루를 보내기엔 하고 싶은 것은 너무 많고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았습니다. 역시 우리는 모두 비를 맞아도 좋다는 데 합의했습니다. 

1불씩 내고 버스에 오른 우리는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Puerto Maya 정글 투어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야 의식을 시작으로 잠깐이지만 마야문명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출렁다리를 아슬아슬하게 건너간 우리는 두 사람 혹은 네 사람이 짝이 되어 5대의 스피드 보트에 올라탔습니다. 키를 잡는 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끝나자 가이드를 선두로 줄을 지어 출발한 보트들이 카리브해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할 틈도 없이 생전 처음 스피드 보트에 오른 나는 겁이 덜컥 났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얗게 꼬리를 그리며 달리는 보트를 바라보는데 지나온 나의 발자취가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천천히 숨을 고르던 때도 있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 페달에 힘이 들어갔을 때도 있었습니다. 

가끔 반 박자가 빨라 급정거가 필요했을 때도 있었고, 박자를 놓치고 당황하던 때도 많았습니다. 오늘을 사는 일에 정석이 없음을 새롭게 기억하기로 했습니다. 

비 맞기를 각오한 덕이었을까요. 하늘이 절대 무심하지는 않았습니다. 종일 인내심을 가지고 참고 있었던 비는 우리가 무사히 호텔에 도착하자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한 체험으로 아슬아슬하게 하루를 넘긴 우리는 만찬을 즐기며 남은 하루를 위해 함께 건배했습니다. 

마지막이라는 말에는 늘 힘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특별한 날이 되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여전히 비에 대한 불안을 접을 수 없던 터라 미리 야외 활동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유리로 된 배를 타고 바닷속 여행을 하는 걸로 이번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하고 다시 한번 우리들의 운을 하늘에 맡겨 보기로 했습니다. 이른 점심을 먹고 버스로 이동했습니다. 바닷속 여행은 생각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만난 것으로 보아 오늘도 하늘은 여전히 우리 편이었음에 감사하기로 했습니다. 

수학여행 온 사람들처럼 들뜨고 행복했던 여행이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추억을 공유했다는 건 말할 수 없는 큰 기쁨입니다. 

우리를 멋진 여행자로 만들어 준 친구의 건배사가 빛나는 여행이었습니다. “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청바지!”

 

김미희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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