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박인애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 ]전쟁과 평화
페이지 정보
본문
오랜만에 지인이 출연하는 방송을 듣기 위해 ‘라디오 코리아’ 앱을 열었다. 처음엔 열심히 찾아 들었는데, 매번 방송 시간에 맞춰 듣는 것도 일이다 보니 점점 일상 뒤로 묻혔다. 그가 전화하지 않았다면 방송 날짜를 옮긴 것도 몰랐을 것이다. 일을 줄이려고 애써 보았지만, 자꾸 늘었다. 거절 못 하는 게 중병이라는 걸 알면서도 고치지 못한다. 늘 일에 치여서 살다 보니 다른 곳에 마음 쓸 여력이 없다. 소통이 없으면 관계도 소원해지는 모양이다. 그런 상황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서운해서 돌아서는 사람도 있다.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어폰을 사용하면 손이 자유로우니 점심을 차려 먹는 동안 들으면 될 것 같았다. 방송 시작 전이라 뉴스가 흘러나왔다. 이스라엘 지지자들이 LA 그랜드팍에서 선보였던 설치 예술 행위에 관한 것이었다. 내용을 다 기억할 순 없지만, 하마스가 처음 이스라엘을 기습했던 날, 노바 음악 축제 현장 모습을 재현한 것인데, 참가자들은 부상자와 사망자, 인질 역할을 연출하며 이번 전쟁에 감정적인 큰 고통을 느꼈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서 가자 지구 공격 중단을 요구하는 평화 시위가 있었다는 뉴스를 듣다가 마음이 무거워서 라디오를 껐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 뉴스를 텔레비전으로 접할 때마다 실전이 아니라 영화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전쟁이라는 말만 들어도 공포가 느껴진다. 폭탄이 떨어지는 도시에 남은 시민은 얼마나 두려울까. 뉴스를 100% 신뢰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사견을 적는 것이 조심스러우나 어서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화 ‘알라모’는 2004년에 개봉했던 존 리 핸콕(John Lee Jancock) 감독 버전과 그에 앞서 1960년에 개봉했던 죤웨인 감독 버전이 있다. 둘 다 알라모 전쟁이라는 주제를 다루었음에도 인물들의 성격이나 서사가 다르게 느껴졌다. 물론 영화와 실제는 차이가 있다. 내가 텍사스에 살지 않았다면 그 영화를 보았을까. 아마도 모르고 지나갔을 확률이 높다.
한국을 떠나 처음 정착한 곳이 텍사스였다. 오랜 세월 살았으니, 제2의 고향인 셈이다. 텍사스에서 아이를 기르며 텍사스 역사를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수없이 많은 주변국의 침략과 전쟁이 있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크고 작은 전쟁은 수없이 일어났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텍사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이웨이를 운전하다 보면 끝없이 펼쳐지는 평야가 평화로워 보이나 이면에는 그 광활한 땅을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쳐 싸웠던 이들의 희생이 깔려 있다. 우리가 누리는 오늘과 자유는 결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알라모에 처음 간 건 17년 전이었다. 함께 갔던 지인이 알라모라고 알려줘서 어떤 곳인지도 모른 채 외관만 보고 지나쳤다. 지인의 가족 여행에 초대받고 갑자기 따라간 거라 씨월드가 있다는 이외에 아는 정보가 없었다. 다시 가보고 싶었으나 기회가 오지 않았다.
드디어 올가을 지인들과 일박 이일 여행을 가게 되었다.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 결정한 곳이 샌안토니오와 어스틴이었다. 한 친구가 운전을 도맡아주어서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여자 셋이 가니 얼마나 편하던지, 쌓였던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았다. 가는 곳마다 시간을 충분히 주고 배려해 준 덕분에 사진도 찍고 글 쓸 자료도 수집할 수 있었다. 여행은 마음이 맞는 사람과 가야 좋은 것 같다.
이번엔 알라모를 제대로 보았다. 교회 건물 입장료는 없으나 표를 사서 입장해야 한다. 역사적 장소에 들어서니 숙연해졌다. 그곳을 사수하다 죽어간 이들과 텍사스를 지키려던 이들의 모습이 차례로 떠올랐다. 교회는 예배 장소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박물관처럼 건물 원형만 유지하고 있었다. 영화에서는 포탄을 맞아 앞쪽 건물 외벽이 무너졌는데 공사를 했는지 천정도 있고 안도 잘 정리돼 있었다.
알라모는 원래 1718년에 스페인 선교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가톨릭 전도소였다. 한 세기 이상 종교적 목적으로 무장 충돌이 자행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알라모 전쟁은 1836년 그 전도소를 요새 삼아 산타 안나가 이끄는 멕시코 군대와 텍사스를 차지하려는 미국 민병수비대가 싸운 전쟁이었다. 민병수비대는 189명이었고 멕시코 군은 6천여 명이 넘어서 애초에 숫자로 보아도 상대가 안되는 싸움이었다. 그곳에서 13일을 싸우다 민병대의 아내와 딸 대령의 노예만 살고 모두 전사했다고 나오지만 실제는 그와 다르다는 자료를 읽었다.
그곳엔 말 발굽소리, 드럼소리, 나팔소리는 사라지고 총칼을 든 군인대신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관광지가 된 그곳엔 당시 사용했던 칼을 전시하는 코너도 있고 당시 군인들이 썼던 모자를 만드는 코너도 있고 천으로 만든 텐트와 대포도 전시돼 있었다.
영화는 샘 휴스턴 장군이 전쟁에서 진 산타 안나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텍사스와 멕시코의 모든 권리를 양도한다는 서류에 서명을 받아내고 “알라모가 무너진 9년 후 1845년 텍사스는 미연방의 28번째 주로 편입이 되었다.”라는 자막이 올라가며 끝난다.
사람들은 왜 많은 것을 잃어가며 전쟁을 하는 것일까? 정치, 종교, 영토 확장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욕심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서로를 보듬고 평화롭게 살아갈 방법은 없는 것인지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다.
박인애
시인, 수필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