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영어 때문에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3-08-04 10:23

본문

버지니아 의과대학에서 일할 때였다. 대학 병원 응급실에서 급한 연락을 받았는데 한국 환자가 교통사고를 당해 왔는데 한국어 통역을 맡을 사람이 없어서 그러니 도와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가보니 응급실 구급 침대 위에 얼굴과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환자가 누워있었다. 

괜찮으세요? 하고 묻는 나에게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이었다. 잠시 뒤 사고 경위를 묻기 위해 온 경찰이 환자에게 물었다. 

하우 아 유 두잉 (How are you doing?) 그러자 이 환자가 하는 말 아임 파인 땡큐, 엔드 유? 아마 본인 생각으로는 통역 없이도 영어를 잘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학생 때 열심히 외웠던 영어 문장을 ‘엔드 유?’에 악센트까지 주면서 말하는 것 같았다. 

피 흘리던 환자의 모습과 괜찮다는 환자를 보고 어리둥절한 경찰의 모습을 떠올리며 집에 가서도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혹시 나도 교과서에서 공부했던 영어 때문에 이곳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영어를 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면서 같은 대학의 한국 동료들이나 교환교수로 온 사람들과 우리가 영어 때문에 격은 우스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영상의학과에 방문 교수로 온 분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미국에 와보니 한국에서 영어 공부한 것이 말짱 헛것이었다. 

말은 그럭저럭하겠는데 상대방의 영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보통은 웃으면서 고개나 끄떡이며 알아듣는 체했는데 너무 빨리 이야기해 알아들을 수 없었다. 과 교수회의 때 모인 사람들에게 심각하게 고백했다. “I have hearing problem.” (나 히어링이 잘 안되요) 그랬더니 모두 이제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는데 그다음부터는 그 교수에게 크게 고함을 지르며 이야기하더란다. 

“말을 천천히 해달라고 히어링이 잘 안된다고 했는데, 왜 소리를 버럭버럭 지릅니까?” “귀가 잘 안 들린다고 했으니까 그런 거지요.”라고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참 한국에선 ‘히어링’이라고 배웠지요? 여기선 ‘히어링’은 귀가 잘 안 들린다는 말입니다. 앞으로는 그냥 천천히 말해달라고 하세요.” 

한 달이 뒤 학과 과장이랑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같이 걸어오는데 과장이 자기 사무실 앞에서 좀 뒤에 보자 그러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란다. 

뭐 더 말할 것이 있나 보다 하고 문 앞에서 오래 기다려도 안 나왔단다. 금방 보자고 그러더니 말이다. 삼십 분 정도 기다리니 그제야 나오면서 문 앞에 서 있는 이 교수를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아니 당신이 “See you soon”이라고 하지 않았냐고 “soon”이라고 해서 금방 나올 줄 알고 기다렸노라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다음부터 과장이 “So long”이라고 인사를 하더란다. “long”에 악센트를 넣으며 말이다. 

텍사스 대학에서 학기를 끝내면서 한국 학생들과 교수들이 모여 종강 파티하는 자리에서였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영어 때문에 당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데 한 학생이 ‘세븐일레븐’이란 잡화상에서 일하다가 경험했던 일을 말하였다. 

미국에선 술을 팔 때는 반드시 신분증을 보고 나이가 21세가 넘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팔 수 있는데 중학생 정도의 아이가 맥주 여섯 깡통을 들고 와 계산대에 놓더라는 것이다. 

“신분증 볼 수 있습니까?”라고 했더니 이 아이의 눈이 돌아가면서 “아니 루트비어(root beer)를 사는데 왜 신분증을 보여야 하는데?”라고 우기더라는 것이다. 

자기는 그때 루트비어가 콜라 같은 소다수인 줄 모르고 “ 술을 사려면 반드시 신분증을 확인해야 합니다. 

여기 비어(beer)라고 쓰인 것 안 보이세요?”라고 우겼다는 것이다. 결국 손님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돌아갔는데 나중에야 루트비어가 술이 아닌 것을 알고 무척 당황했었다고 말해 웃었다. 

그러자 이 대학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방문 교수가 자기도 영어 때문에 당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미국에 도착하면 초청하는 학과의 과장이 비행장에 와서 자기를 데리고 숙소를 찾아주기로 했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아무도 마중 나온 사람이 없었다. 

짐을 찾고 나서 마중 오기로 한 교수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어떤 부인이 전화를 받더라는 것이다. 교수 부인이구나 생각하고 “남편을 바꿔주십시오”라고 말하려고 “Change your husband”이라고 말했더니 받는 쪽에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가만 있더라는 것이다. 

얼른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니 자기가 너무 예절도 지키지 않고 말한 것 같아 다시 전화를 걸어 “Change your husband, please”라고 했다는 것이다. 

“남편을 바꿔주세요”하는 말을 “남편을 갈아치워” 아니면 “제발 남편을 갈아치우세요.”라고 말했으니 받는 사람이 얼마나 놀랐을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여기선 그럴 때 뭐라고 하지요?”라고 우리에게 물어왔다. 전화로 딴사람을 바꿔 달라는 말을 영어로 무어라 말하느냐는 물음이었다. 

앞에 있던 여자 교수 한 분이 “Thank you very much라고 하지요”라고 대답해서 한바탕 웃었다. “남편 갈아치워”라고 하면 뭐라고 대답하느냐는 물음으로 듣고 이렇게 대답하라는 말이었다.

 

고대진 작가

 

◈ 제주 출신

◈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 에세이집 <순대와 생맥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친구가 전화를 끊지 않았다.절친했던 친구가 갑자기 차갑게 대하는데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많이 의지했던 친구였다며 가슴 아파했다.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짐작이 안 됐다.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 말고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오랜 시간 정을…
    문학 2023-08-04 
    버지니아 의과대학에서 일할 때였다. 대학 병원 응급실에서 급한 연락을 받았는데 한국 환자가 교통사고를 당해 왔는데 한국어 통역을 맡을 사람이 없어서 그러니 도와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가보니 응급실 구급 침대 위에 얼굴과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환자가 누워있었다.괜…
    문학 2023-08-04 
    척추측만증이란 척추가 어떤 원인에 의해서 한쪽 측면으로 휘어지는 증상을 말합니다. 척추측만증은 그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선천적이거나 유전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와 후천적으로 사고나 뼈의 질병이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척추측만증…
    리빙 2023-08-04 
    연준 위원들이 연방기금 기준금리를 지난 22년동안 최고인 5.5%로 책정하였다. 지난 주간에 열린 연준 회의에서 0.25% 인상하였고 추가 긴축 가능성도 열어 두었다. 2022년 3월 이후로 단행된 11번째 인상으로 이번 결정은 만장일치로 결정 되었다고 한다.연방공개시…
    회계 2023-08-04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은 유럽에 무기를 팔고 금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전쟁이 끝났을 때 전 세계 중앙은행이 보유한 금의 3분의 2를 미국이 보유하게 되었다.미국은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엄청난 비용을 지출하는 바람에 달러를 많이 찍어내게 되었다.미국은 195…
    부동산 2023-08-04 
    아름다운 산과 계곡,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여러 물줄기들이 하나로 모여 커다란 호수를 이루고 나면 그곳에 머문 자연의 신비함은 나를 지나치며 홀로 걷고 있는 내게 말을 걸고 있습니다.오자크 마운틴의 진한 초록빛을 머금은 나무들이 서둘러 찾아온 한 여름 같은 더위에…
    문학 2023-08-04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오늘은 단체급식이나 캠핑장에 가면 꼭 등장하는 친숙한 음식. 카레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조리 방법에 있어서 라면만큼이나 심플한 카레라는 음식은 카레 혹은 커리로 불리우고 있는데요. 집에서 먹을때는 ‘카레’, 인도음식 전문점 같은곳에서 먹…
    문학 2023-08-04 
    달라스를 출발하여 목적지에 이르는 동안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조그만 풍경조차도 놓치지 싫어 카메라 렌즈에 담으랴 여행을 위해 손수 선정한 음악을 들으랴 지루할 시간조차 없이 8시간의 먼 길을 달려 미조리의 조그만 소도시 브랜손(Branson)에 도착하였습니다.브랜…
    문학 2023-07-28 
    많은 한인들이 경영하는 세탁소와 얼터레이션 또는 슈리페어비지니스들이 있다.이들 비지니스는 일종의 서비스 업종으로 다른 업종과 달리 이들 사업체에는 많은 고객들의 의류와 구두등을 맡아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특히 근래에는 비교적 큰 금액의 시설 투자가 요구되는 코인 …
    리빙 2023-07-28 
    지난 화요일 Internal Revenue Service 수장인 Mr. Werfel이 회계사들이 모인 Atlanta Forum에서 지금 신문, 방송, 우편 등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ERC(Employee Retention Credit)에 대한 경고를 했다.…
    회계 2023-07-28 
    원래는 둘이 가는 길이었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5일 전에 추가되었고 또다시 마지막 순간에 두 사람이 더해지면서 당황했다.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의 동행은 그리 쉽게 받아들이고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둘이 이용할 차편에 갑자기 다섯 명이 타고 장장 너덧 시간…
    문학 2023-07-28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더운 무더위 잘 이기고 계신지요. 오늘은 여름철 별미 메밀 소바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소바(そば)라는 말은 일본식으로 조리된 메밀국수를 말합니다.한국과 일본에서는 우동과 함께 대중적인 면요리로서 차갑게 찍어먹는 냉모밀(자루소바) 외에…
    문학 2023-07-28 
    어느 누군가가 ‘산다는 것은 기다림과 여행의 연속이다’ 라고 했던 말이 생각이 납니다.흩어지는 모래알의 피할 수 없는 운명 속에서 자연의 한 부분을 인생을 여행하며 기다림 속에서 얻어지는 작은 일들을 통해 기뻐하는 일들이 우리에겐 너무 행복한 일들일 것입니다.그러한 삶…
    문학 2023-07-21 
    디스인플레이션은 현재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인플레이션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통화가 증발하는 것을 막고 재정과 금융 긴축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조정정책이다.인플레이션에 의한 통화팽창으로 물가가 상승했을 때, 그 시점의 통화량과 물가수준을 유지한 채 안정을 찾기 위한 대책…
    회계 2023-07-21 
    뒷집 지붕 공사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깼다.한 시간만 자려고 알람을 맞춰 놓았는데 잠결에 꺼버렸나 보다. 그 소리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보통 때는 쪽잠을 자도 오 분 간격으로 알람을 설정해 놓는데, 오늘은 그조차도 하지 않았다. 오지게 피곤했거나 일어날 수 있다…
    문학 2023-07-21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