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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함께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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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3-07-2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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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둘이 가는 길이었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5일 전에 추가되었고 또다시 마지막 순간에 두 사람이 더해지면서 당황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의 동행은 그리 쉽게 받아들이고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둘이 이용할 차편에 갑자기 다섯 명이 타고 장장 너덧 시간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미리 알았더라면, 마음에 준비라도 했을 테고 아니면 차라리 나는 빠지고 말 일이었다. 렌터카를 몰고 늦게 도착한 친구도 심하게 당황한 눈치였다. 

친구는 책임지고 운전해야 하는 입장이고 보니 선뜻 받아들이는 게 힘든 모양이었다.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상황을 마무리하고 바로 출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정해진 시간 안에 도착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둘이 오붓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다녀오겠다던 처음의 계획은 어차피 수포가 되었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작은 세단에서 중형 에스유비로 렌터카가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예약된 세단에 오르기 전 불량한 타이어 상태를 확인한 친구의 세심함 때문이었다. 부랴부랴 다른 차로 바꾸느라 시간은 조금 지체되었지만, 그 덕에 차가 교체되어 예상치도 못했던 일행과 함께하는데 별 무리는 없었던 것이었다. 

큰 언니뻘 되는 어른 셋은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가는 내내 수다가 끊이지 않았다. 듣다 보니 매일 얼굴 보는 아주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았다. 

앞 좌석에 앉은 우리는 한동안 할 말을 잃은 째 입을 다물고 들려오는 수다에 귀만 기울였다. 어색함이 조금 풀어지자, 언니들은 시장하지 않느냐며 싸 온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가래떡을 꺼내 먹이더니 곧바로 깎아 온 과일들을 이야기처럼 풀어놓았다. 

코마트에서 만나니 떠나기 전에 김밥이랑 단팥빵이라도 사서 요기하며 가리라던 애초의 생각은 더해진 일행으로 인해 까맣게 잊고 그냥 출발하고 말았으니 나는 빈손이었다. 

출발 전에 당황해서 서운하게 행동했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두 시간쯤 달려가다가 휴게소에서 잠시 멈췄을 때였다. 친구도 못내 미안했는지 일일이 언니들께 사과하며 함께 오니 오히려 즐겁다고도 했다. 

그 말을 들은 언니들도 그렇게 말해주니 조금 서운했던 마음이 풀어졌다며 고맙다고 답례하는 것이었다. 

마음속에 미안함이 있더라도 그것을 바로 말로 표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아주 보기 좋았다. 그 덕에 불편했던 상황이 종료된 것 같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주최, 휴스턴 협의회가 주관하는 ‘2023 미주지역 여성통일리더십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 3일간의 일탈의 길은 삐거덕거리며 그렇게 시작된 것이었다. 

언제부턴가 집을 나서는 일이 부쩍 귀찮아졌다. 떠나기 며칠 전부터 일도 미리 마무리해야 하고 무엇보다 짐을 꾸리는 일이 만만치 않다. 정장 두어 벌에 맞춰 신발도 챙겨야 하고, 그러니 그냥 훌쩍 떠나는 여행보다 신경 쓸 것이 많아 더 귀찮다. 

작년 달라스에서 치러졌던 ‘세계여성위원 컨퍼런스’ 참석은 집에서 다녔기 때문에 짐을 쌀 일이 없어 편했다는 생각을 하며 잠시 참석에 응했던 것이 후회가 되기도 했다. 

휴스턴 쉐라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늦은 점심을 먹고 나니 바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생각보다 참석자가 적은 걸 보고 조금 놀라긴 했지만, 작년에 만났던 얼굴들도 더러 있어 반가웠다. 2박 3일간의 세미나는 내게 정말 뜻깊은 행사가 되었다. 

세 분의 특강도 좋았지만, 김남희 위원이 이끈 분임토의 시간은 정말 뜨거웠다. 특히 내가 분임토의 발표자가 되어 마무리를 잘하고 나니 나 자신이 조금은 발전한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졌다. 막연하기만 했던 생각들에 틀이 잡히고 색을 입히는 것 같아 이제는 덜 조바심 내도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같은 생각, 같은 마음으로 함께하는 자리는 늘 뜨겁기 마련이다. 같이 있을 때 우리가 같이 가는 이유가 자란다. 견고해지고 넓어진다. 

희망은 꿈꾸는 것이 아니라 마주 앉아 나누는 것이다. 나누는 사이 아주 당연한 물음을 다시 묻게 되고 시든 생각에 이유를 불어넣어 다시 차오르게 하는 것이다. 

가끔은 답을 찾기 위해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잊지 않기 위해 묻기도 한다. 이번 세미나 역시 그랬다. 잊지 않기 위해, 계속 나아가기 위해 모여야 했다. 

평화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나누고 발전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함이었다. 함께하길 참 잘 했다.

늘 돌아오는 길은 몸은 무겁지만, 마음은 가볍다. 뒷좌석에 앉은 세 언니는 이제 나를 ‘우리 이쁜이’라고 부른다. 

나도 그 언니들 이름 뒤에 언니라는 호칭을 넣어 부르게 되었다. 그 언니들 가방은 요술 가방이었다. 

내가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감기에 걸려들었다며 감기약을 꺼내 주었고 속이 이상하다고 하면 활명수가 나왔다. 호텔 방이 추워 잠을 설쳤다고 하니 쌍화탕 뚜껑을 열어 입에 물려주었다. 

나는 응석받이 막내둥이처럼 의심도 없이 주는 대로 다 받아먹은 것이다. 다 받아먹으며 요술 가방이냐고 묻는 나에게 칠 남매 중에 맏이인 친구는 그게 바로 큰 언니라는 것이었다. 

꺼내도 꺼내도 비지 않는 요술 가방을 가진 언니들과 함께한 주말은 잊지 못할 낯설고 훈훈한 주말이었다. 

 

별에서 온 선물 


태양을 안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


눈사람처럼 녹아

물 한 방울 되는 일을 위해

줄줄이 접히는 세월로  

바스러질 때까지 쥐어짜는 몸

그 심장의 풀무질을 

한순간도 멈춰본 일이 없는 사람 


떨어져 나가 

새끼별을 치는 너에게 

이제는 이별이라 말하지 않을게


가슴 조이던 한때 

그 상흔을 향해 건너오는 걸음걸이를 보며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조용히 이는 이 흥얼거림은

따뜻한 눈으로 내리는 기억


부딪는 눈빛 소리 

화려하게 섞이는 뜨락 너희 별들이 뛰어드는 나의 꿈

한층 익어가고 있다


김미희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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