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박인애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 ] 믿고 사는 세상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4-02-09 16:56

본문

지인이 페이스북에 캡처한 사진과 함께 스미싱을 조심하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아는 이의 핸드폰 번호로 문자가 왔는데, 짧게 요약하자면 자기가 재혼을 하게 되었으니 와서 축하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진짜인 줄 알고 하마터면 첨부한 주소 링크를 누를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읽어보니 속아 넘어가기 딱 좋은 문구였다. 만일 아는 사람이 그런 문자를 보냈다면 의심의 여지없이 나도 눌렀을 것이다. 스미싱(Smishing)이란 말이 생소해서 검색해 보았다. “문자메시지(SMS)와 피싱(Phishing)의 합성어로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피싱”이라고 적혀 있었다. 믿을 만한 사람의 전화 번호로 경조사 초대장 등을 주소 링크와 함께 보내는데, 링크를 누르는 순간 악성 코드에 감염되어 금융정보나 금전피해를 당하는 신종 사기 수법이었다. 

한동안 자녀의 전화번호를 이용해 부모에게 문자를 보내서 금융사기를 치는 보이스 피싱이 극성이었다. 

가까운 지인이 당했는데, 마이너스 통장까지 탈탈 털려 큰 피해를 입었다. 그분은 충격으로 대인 기피증이 생겼고 어리석게 속은 자신이 싫어서 식음을 전폐하고 한동안 앓아 누웠다. 

자식 앞에서 약해지는 게 부모라는 걸 이용해 나쁜 짓을 일삼는 무리들 때문에 피해자가 속출하는데, 근절이 어렵다는 게 현실이다. 그분도 평소에 보이스피싱 같은 걸 왜 당하냐, 딱 보면 모르겠냐고 큰소리쳤던 사람이다. 당하고 싶어 당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자기도 모르게 말려드니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오래전 이메일 사기가 한창일 때 사촌동생 이름으로 다급한 이메일이 온 적 있다. 중동에 억류되어 있으니 돈을 보내 달라던 동생은 집에 잘 있었다. 

속한 곳이 많다 보니 생활비 중에서 경조사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결혼식, 장례식, 졸업식, 출판기념회 등 다양하다. 대부분 문자로 오는데, 게 중에는 몇 년 동안 연락 한 번 안 하다가 경조사 생길 때만 연락하는 얌체족이 끼어 있다. 

몇 년 전까지 만해도 양심 없는 인사라고 구시렁거리면서도 일일이 챙겨주었는데, 코로나라는 최악의 터널을 지난 후 생각이 좀 달라졌다. 

전 세계가 거리두기를 하며 공포에 떨던 시기에 큰 수술을 하고 철저히 격리된 곳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그런지 마음문이 좀 닫혔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안부 한 번 묻지 않았던 사람이 경조사 문자를 보내면 달갑지 않은 것이다. 

인터넷 뉴스를 보니 보이스피싱도 날로 진화하여 수법이 다양해졌다. 부고장, 초대장, 건강관리공단, 택배 등을 사칭한 것들이 많은데 잘못 눌러 앱이 깔리면 개인정보가 빠져나가 피해를 보게 되는데 연간 피해액이 억 단위라 하니 억 소리가 절로 나온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그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일순간에 다 털리고 빈 껍데기만 남은 사람의 심정은 얼마나 참담할까. 그런 문자를 받으면 확인을 먼저 하여 피해를 줄이는 게 최선인 것 같다. 

단체장으로 봉사하다 보니 문의 전화가 오기도 해서 처음엔 저장 안 한 번호도 받았는데 스팸이 너무 많아서 요즘은 안 받는다. 보이스피싱 기사를 읽고 나니 겁이 나서 문자메시지 여는 것도 무섭다. 

어제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보통은 하다 마는데 계속 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시해 버렸다. 일하다 보니 메시지가 올라왔다. 이곳에 살다 알칸사로 이사한 지인의 아들이었다. 깜짝 놀라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영사관에 볼일이 있어서 온 길에 보고 가려고 걸었던 거였다. 늘 지인과 통화를 해서 아이 전화번호는 몰랐다. 당일치기로 온 거라 시간이 없다고 해서 머리도 못 감고 튀어 나갔다. 먹고 싶었다는 짜장면을 사주고, 먹는 동안 투고해 갈 순대와 족발도 주문했다. 그곳에는 그런 게 귀하다. 주머니 털어 용돈을 줬더니 자기도 돈 번다며 손사래를 쳤다. 

지인의 아이들은 나를 앤 이모라고 부른다.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 없으면 앤 이모 집으로 가면 된다고 굳세게 믿었다. 그러던 아이들이 자라 큰딸은 결혼했고, 둘째는 대학 졸업 후 약국에서 일하고, 셋째 딸은 대학교 1학년이고, 막내딸은 초등학교 4학년이다. 셋째는 우리 부부가 산 바라지를 해 주었다. 지인은 우리 딸내미 베이비씨터였다. 그런 인연으로 만나 이십 년 넘게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지인에겐 내가 친정 언니인 셈이다.

 처음 만났을 때 기저귀 차고 우유병을 빨던 아기가 23살 청년이 되어 내 앞에 있는데, 내 눈엔 아직도 아이 같아 보였다. 

말수 적은 녀석이 반가운지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이제는 약국에서 주사도 놓는다며 배시시 웃었다. 잘 커 주어서 너무나 고마웠다. 꼭 피가 섞여야 가족이 되는 건 아니다. 언제 어느 때 오든 맨발로 뛰어나가 안아줄 생각이다. 나는 앤 이모니까. 

먼 데서 왔는데 하마터면 스팸인 줄 알고 안 받아서 못 보고 갈 뻔했다.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험해져서 전화도 마음대로 못 받는 세상이 되었을까. 의심하고,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는 세상이 참으로 불편하다. 

믿고 살아도 되는 세상은 어디 있을까. 

대문을 안 잠그고 자도 아무 일 없었던 시절로 이사 가고 싶다.

 

박인애

시인, 수필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우리들 대부분의 부엌 찬장에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즉석요리의 대명사. 라면에 대해 평소 몰랐던 이야기들을 해 보겠습니다.우선 라면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요.라멘이라는 일본어에서 라면이라는 말이 시작된것은 맞지만, 라멘이라는 이름은 중국에서 …
    문학 2024-02-23 
    아들이 나왔다.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서 쏟아져 나오는 백인 아이들 틈에서 까만 머리 동그란 얼굴의 아들은 멀리서도 잘 보였다.무거운 백팩을 맨 한쪽 어깨가 오늘따라 더 처져 보였다.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차로 곧장 걸어왔다. 낯빛이 어두웠다. 마음에 물둘레가 이는 것 같…
    문학 2024-02-23 
    딜러에서 자동차를 구입하면 자동차 보험증서 제시를 요청받게 된다. 그러므로 새 자동차를 구입한 사람은 자동차를 위하여 개인용 자동차 보험을 구입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비즈니스에 사용하기 위해 자동차를 구입했을 때는 어떻게 다른가?상업용 자동차를 개인용 자동차 보험으로…
    리빙 2024-02-23 
    요즘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국하는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미국 입국하는데 예전과는 다르게 조사가 심하다고 한다. 미국에 입국하는 목적이 불분명하거나 미국 내 거주 주소가 확실하지 않을 때는 입국을 불허하는 일까지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이것은 작년, 2023년 11월 정치인…
    회계 2024-02-23 
    미국의 동부나 서부를 여행할 때면 항상 등대를 찾아가곤 합니다. 그곳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해안과 동화 속에 나올법한 빨간색의 예쁜 등대가 있고 수 백 만년을 지켜온 이름 모를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가 좋고 빛과 희망이라는 인생의 등대를 그곳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학 2024-02-16 
    일각의 연방은행 관계자는 경제가 예상대로 전개된다면 연준위원들이 올해 후반에 금리 인하에 대한 자신감이 생길 전망을 예상하면서 금리 인하를 서두를 생각이 없음을 시사하고 있어 보인다.인플레이션이 2% 목표를 향한 경로에 있다는 충분한 증거가 없이 금리를 너무 이르게 또…
    회계 2024-02-16 
    하루가 어떻게 저무는지도 모르고 동동거렸다. 평생을 올빼미처럼 살다 보니 아침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큰일이 아닐 수 없다.자명종 소리에 놀라 6시에 눈을 떴으니 정말 긴 하루였다.오늘은 7시부터 한인 문화센터에서 모여 샌드위치를 만들어 코펠 경찰국과 소방서에 감사 인사…
    문학 2024-02-16 
    결과가 말해주는 명문대 입시 전문 버클리 아카데미 원장www.Berkeley2Academy.com문의 : b2agateway@gmail.com요즘 AI 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겁니다.삶의 모든 영역에 이미 들어와서 사람이 하는 일을 대체하고 있는 인공지능을 AI 라고 합…
    교육 2024-02-16 
    팬데믹을 겪으면서 전 세계는 암흑기를 맞았다. 투자는 물론 취업이며 사업까지 녹록치 않은 환경에 처하게 되었다. 금리 때문에 무릎 꿇은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 시장의 경색과 부동산 침체 앞에 자책하고 좌절했다. 하지만 이제는 ‘필승 전략’을 펼쳐야 할 때다. 언제…
    부동산 2024-02-16 
    금문교를 살짝 비켜 알카트레즈 섬(Alcatraz Island)이 보일 듯 말듯 살포시 내려 있는 샌프란시스코 겨울의 차가운 아침 안개는 잠시 먼 곳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이를 먹고 자라는 샌프란시스코 자연의 풍성함을 느끼게 합니다.도시의 80…
    문학 2024-02-09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즐거운 한주 보내셨는지요. 오늘은 요리에 들어가면 마법의 맛을 낸다는 MSG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MSG는 Monosodium glutamate의 약어로서 1907년 일본 도쿄대 키쿠나에 이케다 물리화학과 교수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
    문학 2024-02-09 
    집보험에 가입하면서 또는 가입후에 라도 집보험의 보상혜택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동차보험은 장기적으로 볼 때 사고와 클레임을 한번쯤은 경험하게 되므로 보험 혜택의 내용을 그래도 좀 아는 편이지만 집보험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그러다 보니 집 보험 가입…
    리빙 2024-02-09 
    세금보고가 지난 1월 29일부터 순조롭게 시작됐다. 그동안 IRS가 공언했던 데로 첫날부터 큰 무리 없이 IRS 시스템이 잘 작동되고 있다.세금 환불도 이미 받으신 분들이 있을 정도로 예년에 비해 빨리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전국에 있는 250군데의 IRS의 Taxp…
    회계 2024-02-09 
    지인이 페이스북에 캡처한 사진과 함께 스미싱을 조심하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아는 이의 핸드폰 번호로 문자가 왔는데, 짧게 요약하자면 자기가 재혼을 하게 되었으니 와서 축하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진짜인 줄 알고 하마터면 첨부한 주소 링크를 누를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문학 2024-02-09 
    지난 밤 하늘에서 내려보았던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야경을 뒤로한 채로 어느 도시보다 일찍 찾아온 라스베가스의 아침은 사막 한 가운에 피어 오르는 거대한 태양의 그림자를 길게 품은 채로 거칠 것 없는 대지의 위대함을 뽐내고 있습니다. 마치 거대한 태양의 빛을 대지가 …
    문학 2024-02-02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