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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위협받는 텍사스 전력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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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 잦은 폭풍이 텍사스를 강타하면서 급변하는 기후로 인해 주 전력망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지난달 28일(화) 북텍사스 지역에 허리케인급 폭풍이 몰아쳐 곳곳의 전력 시설을 파괴하면서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다.
이번 폭풍으로 북텍사스의 총 105만 가구가 정전 영향을 받았으며 그 영향은 이번주까지 지속됐다.
또한 지난달 17일(금)에는 휴스턴 일대에 강풍이 불어 최소 7명이 숨지고 100만 가구가 정전됐다. 이것이 바로 지난 몇 주 동안 텍사스에서 발생한 일이며, 파괴적인 극한 기후로 인해 노후화된 주 전력망이 무너지면서 이러한 종류의 정전이 더 자주 발생하고 있다.
◈ 기후에 영향받는 전력 시스템
비영리 연구 그룹인 클라이메이트 센트럴(Climate Central)의 분석에 따르면 2000년~23년까지 미국의 모든 주요 정전 중 80%는 날씨로 인해 발생했다.
또한 2014년~23년까지 기상과 관련한 정전 횟수는 금세기 초의 정전 횟수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났다.
산업화 사회 이래로 전력 인프라는 사회 시스템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극한의 기후 상황 속에서 최소한의 전력 공급이 중단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의 발전, 송전 및 배전은 전력망, 상호 연결된 일련의 발전소, 전력선 및 변전소에서 발생한다.
연방 에너지부에 따르면 미국 전력망의 인프라는 빠르게 노후화되고 있으며 현대적인 전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전력망의 대부분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건설됐으며 전력 시스템의 첫 번째 부분 중 일부는 1900년대 초반에 만들어졌다.
전문가들은 미국 송전선의 70%가 50~80년의 수명 주기가 끝나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지구 온난화로 인해 극한의 날씨가 자주 발생하면서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텍사스 대학(University of Texas)의 마이클 웨버(Michael Webber) 교수는 “우리의 (전력) 인프라는 과거의 날씨에 맞춰 구축된 것”이라며 “미래의 날씨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미 기후 변화는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전력망 내의 모든 요소가 극한의 날씨에 취약하다고 부연했다.
웨버 교수는 “전력은 대형 송전탑에서 더 작고 풍부한 전주까지 지상 전력선을 통해 주로 분배된다. 대부분의 정전은 전력선과 기둥의 고장으로 인해 발생하며 전체 시스템의 “큰 약점이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클라이메이트 센트럴에 따르면 천둥번개, 강풍, 폭우, 토네이도로 정의되는 악천후가 기상 관련 대규모 정전의 주요 원인으로 단연 58%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는 노출된 전력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송전선과 전봇대가 맹렬할 바람에 쓰러지고 무거운 얼음에 부러질 수 있다.
웨버 교수는 “전력 인프라가 극한의 날씨를 견딜 수 없으면 전력 공급이 중단될 뿐만 아니라 자체적인 재난도 발생한다”라며 올해 초 오래된 전봇대가 강풍으로 쓰러지면서 생긴 불꽃이 촉발한 대규모 산불(스모크하우스 크릭 화재)을 거론했다.
또한 극한 기후의 영향을 받는 것은 전력선과 전신주만이 아니다.
지난 2021년 겨울에 발생했던 정전 대란은 매서운 추위로 인해 필요한 전력 장비가 얼어붙어 수요를 따라잡을 수 없으면서 발생했다. 그로 인한 정전은 혹독한 추위 속에서 막대하고 치명적이었다.
그 외 폭염도 전기 수요를 급증시킨다. 전력 수요가 충족되지 않으면 정전 및 절전이 발생하며, 기온이 너무 높아지면 장비가 과열되어 작동하지 않는 위험이 있다.
◈ 텍사스 전력망, 이대로 괜찮나?
미국의 전력망은 크게 동부와 서부, 텍사스로 서로 분리돼 운영되고 있다.
그나마 동부와 서부는 전력시스템이 서로 연결돼 있는데 텍사스는 고립(isolation)돼 있는 형태이다.
텍사스 전력망 고립은1935년 주 의회가 소비자 비용을 낮추기 위해 에너지 독점을 타겟으로 한 공익사업지주회사법(Public Utility Holding Company Act)을 통과시키면서 시작됐다.
전력 회사들은 연방 규제를 피하고 독점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주와의 연결을 끊었고, 이는 텍사스주의 크기와 풍부한 천연 자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후 1970년 텍사스 주의 전력망과 도매 에너지 시장을 관리하기 위해 텍사스전기신뢰성위원회(ERCOT)가 설립됐다. 오늘날 ERCOT은 텍사스 공익사업위원회(Public Utility Commission of Texas)에 의해 규제되며 주 전체 에너지 수요의 약 90%를 충당하는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21년 닥친 텍사스 대한파(Winter Storm Uri)의 대규모 정전은 텍사스 전력망 시스템의 취약점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또 2022년~23년 역대급의 여름 폭염에 연일 사상 최고치의 전력 사용을 보이면서 기존 텍사스 전력망의 한계가 지적됐다.
전문가들은 텍사스 전력망이 두 개의 국가 전력망과 연결된다며, 기후 재난이 닥쳤을 때 더 충분한 안전장치와 예비 에너지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 예로 엘파소 시는 전력 공유가 제공하는 보호를 보여주고 있다. 엘파소 시는 ERCOT 네트워크가 아닌 서부 상호 연결(Western Interconnection)의 일부여서 지난 2021년 이 도시는 휴스턴이나 달라스보다 훨씬 더 나은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고립된 전력망은 악천후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우에도 지속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텍사스의 8월 현물 도매 전기 가격(wholesale electricity prices)은 메가와트시당 175달러로 전년동월의 90.18달러에서 크게 인상됐다.
이러한 가격 상승은 미국 전역에서 일관되지 않다. 캘리포니아의 8월 도매 전력 가격은 메가와트시당 80달러로, 지난해 평균보다 30% 낮다.
결국 이러한 문제가 지속되면 텍사스 주민들은 증가하는 비용 부담을 계속 떠안게 될 것이다.
어스틴 기반의 그렉 카이사르(Greg Casar) 주 하원 의원은 최근 ERCOT가 인근 전력 네트워크와 상호 연결되고 해당 기관을 연방 에너지 규제 위원회의 감독을 받도록 요구하는 “전력망 연결법”을 제출했다.
다만 이 법안은 텍사스의 주정부 관리 그리드를 자체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연방 시스템으로 가져올 것이라는 이유로 공화당의 상당한 반대는 이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
결국 미 동부나 서부 전력 시스템으로의 상호 연결이 여전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ERCOT은 제안된 ‘그리드 연결법’(Connect the Grid Act)에 대해 “ERCOT과 인접한 전력망 간의 추가 연결을 검토할 때, 전송 비용, 신뢰성 및 경제적 영향, 시장 설계에 미치는 영향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 연방 정부 나서 노후 전력망 현대화
조 바이든 정부는 새로운 전력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지난 100년 동안 구축된 미국의 노후화된 전력망의 현대화에 속도를 낸다.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에 전력망을 연결하고, 잇따르는 정전을 줄이기 위한 결정이다.
백악관은 지난달 28일(화) 연방정부와 21개 주(州) 정부가 에너지 공급에 필요한 전력망 현대화를 위해 협력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노후화된 전력망이 청정에너지 공급과 기후위기 대응에 큰 걸림돌로 부상하는 가운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범정부적인 노력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최근 들어 IRA(인플레이션감축법), 칩스법 등을 통한 리쇼어링과 전기차 보급, 인공지능(AI)의 확산, 데이터센터 건설 등이 겹치며 전력난이 심화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20년가량 큰 변화가 없던 미국의 전력 수요는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
에너지 컨설팅 기업 그리드 스트래티지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미국 내 여름철 피크 전력 수요가 2028년까지 추가로 38GW(기가와트)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이든 정부의 무탄소 에너지 확산, 유리한 입지 조건 등으로 태양광과 풍력 발전 등 전력 생산 기반은 늘고 있지만, 전력망이 노후화되고 부족한 탓에 불균형 상태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직 전력망에 연결되기를 기다리는 발전 설비 규모가 현재 전력망에 연결된 설비보다도 많다”며 “미국은 더 현대적인 고압 송전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정부는 우선 기존 송전선을 고압선으로 교체해 새 송전선을 건설하지 않아도 더 많은 양의 전력을 실어 나를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기존 송전선을 업그레이드하는 경우에는 환경영향 평가 부담을 완화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백악관은 2021년 이후 10개의 대규모 송전선 건설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송전선 건설 사업에 대한 연방 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 완공 시 거의 20GW의 발전량이 전력망에 연결될 것으로 기대한다.
박은영 기자 ⓒ K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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