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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칼/럼] 싫어도 이별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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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박사 박우람
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석사
미국 Johns Hopkins 대학 기계공학 박사
UT Dallas 기계공학과 교수
재미한인과학기술다 협회 북텍사스 지부장
2020년 갑작스레 닥친 코로나 사태로 수 개월간 사무실에 가지 못하고 재택근무를 하던 어느 날이었다. 강의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 부득이 사무실에 들렀는데, 몇 달 동안 내 책상 위에 있던 열지 않은 생수병이 눈에 띄었다. 너무 오래되어 마실 생각은 없었으나 호기심에 살짝 맛을 보았다. 화학 약품을 연상시키는 플라스틱 냄새가 심하게 났다. 그 냄새 때문에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생수를 마실 때마다 조금씩 플라스틱 성분을 마셨던 걸까.
인체에 대한 플라스틱의 영향은 의학계의 오랜 걱정거리였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여러 연구 그룹이 플라스틱 입자가 체내에 얼마나 쌓이는지 관찰해왔다. 올해 초 네이처 메디신 (Nature Medicine) 논문집에 실린 논문 “Bioaccumulation of microplastics in decedent human brains”에서 연구자들은 주목할만한 관찰 결과를 보고하였다. 사망자들의 뇌, 간, 신장 조직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되었는데, 특히 뇌 조직에서 폴리에틸렌이 높은 비율로 검출되었다. 또 2016년 사망자 그룹과 비교했을 때, 2024년의 사망자 그룹에서 더 많은 미세 플라스틱이 나왔고, 치매 환자 사망자의 뇌 조직에서 치매를 앓지 않은 사망자의 뇌 조직보다 미세플라스틱 농도가 높게 관찰되었다. 플라스틱이 체내에서 발견되었다고 해서 당장 플라스틱을 만병의 근원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인공적으로 만든 플라스틱에 인류가 노출된 것이 불과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우리의 몸은 플라스틱에 적응할 수 있는 진화의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2019년 호주의 뉴캐슬 대학의 연구팀은 한 보고서에서 현대인은 1주일에 신용카드 한 장 무게에 해당하는 5그람 정도의 플라스틱을 음식, 물, 공기 등을 통해 섭취한다고 추정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환경과 생활 습관에 따라 플라스틱 섭취량은 개인차가 크겠지만, 미세 플라스틱의 체내 축적이 계속 확인되고 있는 지금, 인체에 미치는 플라스틱의 영향을 더 이상 무시할 수는 없다.
플라스틱의 시초는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당구공은 코끼리 상아로 만들었는데 당구공 수요가 늘면서 상아가 귀해졌다. 당구 장비 공급업체였던 필런 앤 콜렌더는 상금을 걸고 상아를 대체할 물질을 공모하였다. 이에 미국의 발명가 존 하이어트가 첫 천연수지 플라스틱인 셀룰로이드를 만들었는데, 잘 부서지는 단점이 있어서 당구공에는 사용하지 못했고 대신 장난감, 만년필, 단추 등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 후 화학자 베이클랜드가 페놀과 포름알데하이드를 반응시켜 베이클라이트라는 새로운 물질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인류가 만든 첫 합성수지 플라스틱이다. 이 플라스틱은 가열하면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기 쉬웠고, 전기가 통하지 않아 전기 절연체로 사용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플라스틱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자연보호연맹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매년 약 3억 톤의 플라스틱 제품이 만들어지고, 그중 약 1,400만 톤은 바다로 흘러들어 간다. 이 플라스틱 쓰레기가 해양 쓰레기의 8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몇백 년이 지나도 분해되지 않는 플라스틱은 자연에 남아서 인류를 포함한 다양한 생명체에게 영향을 미친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특히 우려를 자아내는 것이 미세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은 다이옥신 같은 독성 물질과 결합할 수 있다. 만약 바다로 흘러간 독성 물질이 바다에 떠다니는 미세 플라스틱과 만나면 플라스틱은 독성 물질을 운반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독성 물질과 결합한 미세 플라스틱을 바다 생물이 흡수하고, 결국 먹이 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는 듯하다. 플라스틱의 생산과 소비를 줄이는 적극적인 방법과 몸속으로 들어가는 플라스틱을 줄이는 소극적인 방법이 있다.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면 플라스틱 생산량을 줄일 수 있다. 재활용이 쉽도록 플라스틱 제품에는 삼각형 모양의 재활용 안내 표시가 있다. 하지만 플라스틱 재활용은 그 과정이 매우 까다로워서 미국의 플라스틱 재활용 비율은 10 퍼센트를 넘지 않고, 한국은 27 퍼센트 정도로 알려져있다. 재활용 쓰레기를 분류하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할 정도로 까다로운 규정을 시행하고 있는 한국에서조차도 플라스틱 재활용 비율은 한계가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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